경상남도/거창군

거창...감악사지 부도

임병기(선과) 2012. 2. 1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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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의 안산이며 매년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산이 감악산이라고 한다. 서설이 군무를 이루는 고개를 넘어 감악산 동편 연수사 입구에 도착하니 길을 막고 서 있던 화물차 운전기사 분이 어제 내린 눈으로 길이 빙판이 되었다며 돌아가기를 권유하였다. 또 인연이 아닐까? 감악사지부도를 향해 달리면서도 조바심이 전신을 휘감았다. 눈이 얕게 깔렸지만 다행히 운행에는 큰무리가 없어 사전에 인지한 흰돌기도원 팻말을 따라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고개를 넘어서니 멀리 부도가 보인다.

 

신원면 구사리 산8 윗감악마을, 윗상감악마을은 신원면 가정리  번덕마을에서 흰돌 기도원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2km 가량 따라 가면 나타난다.  풍수의 십승지 처럼 전란도 피해 갈듯한 오지에 위치한 감악사는 분명 선종 사찰이 아니었을까? 절집 자리에 기도원이 속절없이 차지하고 있지만 엄습했던 두려움이 해소되어 그마져도 싫지 않더라.

 

  

감악산 중턱에 위치했던 신라시대 감악사 옛터의 부도를  “흰돌기도원 ”이 세워진 이후 1987년에 감악마을 주민에 의해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부도 옆에는 두부가 결실된 석조불상이 옛영화를 나지막히 속삭이 듯 조신한 자세로 앉아 있다. 신라후대 선종의 도입과 더불어 출현한 팔각원당형 부도의 변형된 형태로 전형에 비해 시대가 뒤떨어진 고려시대에 조성된 부도로 판단된다. 기단부와 탑신부만 남아 있고 상륜부는 결실되었다.

 

 

팔각 탑신석, 옥개석에는 귀꽃이 만개해 있다. 전체적인 균형이 맞지 않아 이건 과정에서 발생한 상흔이 아니라면 여러 기 부도의 조합으로 보여지기도 하다.

 

방형의 지대석, 팔각 하대석에는 안상이 보이고, 중대석괴임에는 운룡문을 새겼다. 중대석은 팔각이며 상대석에는 3단의 받침을 조출하고 복련이 곱게 피어있다.

 

 눈쌓인 길을 달려온 내가 너무 적적할까봐 나투시지는 않았는지. 이심전심으로 부처님의 염화시중의 미소를 그리며 주변을 맴돌아 보지만 한가로움과 무소불위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여겻는지 기도원 멍보살의 악다구니가 너무도 요란스러워 잠든 천년사지를 깨울듯 하다.

 

신원면은 산골 오지인 탓에 전란을 피해갔고,조선시대에도 사화를 피해 많은 선비 들이 몸을 숨긴 은둔처로 여겨왔었다. 하지만 근대사의 민족비극인 한국동란시 좌우익의 갈등 속에 공비 소탕작전의 일환으로 전개된 무차별하게 양민 학살이 자행된 슬픈 역사를 품고 있는 지역이다.

 

한은 용서해야만 풀리다고 하지만 기념공원 조성만으로 후손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이후의 배상 과정을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감악사지의 불두 없는 불상과 희생당한 영혼들이 오버랩되어 애잔한 마음 가눌 길 없었다.

 

 

감악사는 사적이 전해오지 않아 부도의 주인공 역시 모르고 있다. 어쩌면 알려지지 않아 오히려 다행 아닐까? 모두가 떠난 빈자리를 홀로 채우고 있으면,  텅빈 사지와의 부조화로 인해 여백의 미를 상쇄시키고  지금의 모습보다 아름답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면 견강부회의 억측일까? 백설이 얕게 쌓인 사지는 말이 없건만 멍보살 만큼이나 나의 잡념도 요란스럽다.

 

2012.02.04

 

*본문의 글은 그대로 두고 내용을 수정합니다.

감악사지 부도는 탑신석, 중대석이 바뀌어져 있고, 상대석이 뒤집혀져 있습니다(201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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