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광주시

광주...남한산성 개원사 석불좌상

임병기(선과) 2013. 5. 28. 07:36
728x90
728x90

 

 

수도권 답사는 인내심을 시험하는 여정인듯 하다. 무슨 차가 그렇게 많은지, 통행료 징수 구간은 비일비재 하고.에혀 우리 같은 촌놈에게는 거의 지옥이었다. 남한산성 개원사지 길도 오십보백보였다. 주차 공간마져 부족하고 한 끼 때우기가 왜 그리 힘들든지. 우리카페 수도권님들이 존경스럽다.

 

상가의 번잡함과 달리 잠시 벗어난 개원사는 적막강산이었다. 우리의 휴식 문화의 단면이겠지만 잠시라도 나홀로 일주문으로향하는 산길을 걷는 호사를 누렸다. 외진 산골 홀로 답사가 몸에 배였지만 그 즐거움을 다시 한번 느끼게된 계기가 되었다.

 

 

문닫힌 천왕문. 활짝 열려 있기를 기대해본다.

 

개원사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 198-5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다. 장경사, 망월사와 더불어 국가문화재 사적 5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남한산성 안에 위치하고 있다. 인조 때 임진왜란으로 파손된 남한산성을 새롭게 보수는 일이 있었다. 이때 인조는 선종 지도자 벽암 각성을 팔도 도총섭으로 임명하고 승군을 모아 남한산성을 보수하게 했다. 남한산성은 전적으로 승군에 의해 보수되게 되었고, 산성의 보수 및 방어의 역할 역시 승군에게 주어졌다. 이를 계기로 1624년에 개원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후 남한산성 안에는 승군이 주둔할 7개의 사찰을 더 창건하게 되었고, 이 모든 승군의 본영 사찰로 개원사가 활용되었다. 이로써 개원사는 한양을 지키는 호국사찰의 중심이 되었고, 폐사되기 이전까지 조선불교의 중심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894년에 들어와 승번제도가 폐지되면서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는 1907년에 들어와 일제가 남한산성 안에 위치한 사찰들이 화약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사찰들을 철저히 파괴하였다. 장경사에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개원사는 이때 폐사가 된 듯하며, 1909년에 개원사의 루를 장경사로 이건했다고 한다...전통사찰관광정보

 

 

천왕문을 통과하여 우측에 모셔진 부도. 조선시대 석종형부도로 승려의 법명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남한산성 보수 당시 개원사지에 주석했던 분이 주인공일 것이다.

 

 

개원사를 답사한 목적은 석불 3기, 부도, 3층탑,석등부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입구부터 최근에 조성한 불상이 맞이하여 법당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석불 3기 중의 한 분 일까? 불두와 불신이 다른 부재로 보인다. 불신만 내가 보고팠던  석불중 한 분인 듯하다. 조성시기는 고려 초기?

 

 

역시 최근에 조성한 불상

 

 

1624년 창건 당시의 부재와 복원재의 혼합?

 

 

여러자료에는 창건 당시 석탑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의문이 든다

 

 

 

 

 

대각전 중정을 돌아보는 내내 나를 경계하며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개원사를 찾은 참배객들이 저지른 과오 때문에 사찰측에서도 어쩔수 없는 불가피한 조치겠지만 기분이 영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나혼자 밖에 없는 절집에서 일대일로 감시당하는 느낌을.  두 분의 불상은 다음에 인연 짓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할듯하여 산문을 나와버렸다. 아래  두 장의 사진은 우리카페 시나브로님의 작품이다. 님들 답사시에 참고하길 바란다.

 

불유각 석불입상.조선시대 개원사 창건시 불상으로 전한다.

 

불유각 전각은 일반적으로 우물에 붙이는명칭인데 사뭇 궁금하다.

 

 

 

화현전 약사여래좌상.조선시대 불상으로 전한다.

 

근대작?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2013.04.07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