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광주시

광주...연산군 아들 돈수 태비

임병기(선과) 2020. 7. 2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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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아들 돈수 태실비

퇴촌면 원당리 산 30. 원당리 마을 회관 맞은편 태봉

태실 흔적은 남아 있지 않으며, 태비는 30여 미터 아래에 굴러 떨어져 있습니다

원당리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앞쪽이어서 앞 태봉으로 부르며, 회관 뒤에 자리한 성종 왕녀 태봉은 뒷 태봉으로 칭한다고 합니다.

 

왕자 돈수 아지씨 태실(王子 敦壽 阿只氏胎室)

전면은 명문이 확인되나, 뒷면은 들리지 않았으며, 국립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태지석에 의하면 홍치 십팔년 이월십구일 해시 장)弘治十八年二月十九日亥時藏)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태지석 명문

황명 홍치 십사년 이월초사일 미시 생 왕자 돈수 아지씨(皇明弘治十四年二月初四日未時生王子敦壽阿只氏)

홍치십팔년이월십구일해시장(弘治 十八年 二月十九日 亥時 藏)

1,501년(연산군 7년) 출생

1,505년(연산군 11년) 장태

 

비 좌, 비신 머릿돌이 일석입니다.

 

 

왕자 돈수 아지씨 태실(王子 敦壽 阿只氏胎室)

 

왕자 돈수(王子 敦壽 )

 

아지씨 태실(阿只氏胎室)

 

왕자 돈수王子 敦壽 (1,501~1,506년)

연산군의 막내아들로, 어머니가 누군지 전하지 않으며, 5살에 사사된 불행한 왕자이었습니다

 

중종반정 후 5살에 우봉(牛峯)으로 유배되었으며, 20여 일 후 사사되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 9월 5일 신사 5번째 기사 1506년 명 정덕(正德) 1년  

 

박원종 등이 아뢰기를,

"폐세자 및 창녕(昌寧)·양평(陽平) 등이 성밖 가까이에 있어서는 온당하지 못하니, 외진 군읍을 골라 안치하고 관에서 먹는 것을 주며, 잡인 출입을 금하소서."

하니, ‘그리하라.’ 전교하였다. 모두 아뢰기를,

"이황(李?)정선(旌善), 이인(李仁)수안(遂安), 이성(李誠)제천(堤川), 이돈수(李敦壽)우봉(牛峯)에 보내어 모두 관가 근처에 안치하되, 그 담을 높직이 쌓고 항상 문을 잠그게 하소서. 그리고 옷과 먹는 물품의 출납은 관인(官人)으로 하여금 감독 관장하게 하고 그 공급은 소재처 관창(官倉)의 쌀로 하되, 관노비(官奴婢)를 시켜 음식을 마련하며, 또 군사로 하여금 수직(守直)하게 하고, 일이 있건 없건 수령은 매월 월말에 관찰사에 보고하게 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 전교하였다.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 9월 24일 경자 3번째기사 1506년 명 정덕(正德) 1년    

 

영의정 유순·좌의정 김수동·우의정 박원종·청천 부원군 유순정·무령 부원군 유자광·능천 부원군 구수영 및 여러 재추(宰樞) 1품 이상이 빈청에 모여, 의논하여 아뢰기를,

"폐세자 이황(李?)·창녕 대군 이성(李誠)·양평군 이인(李仁)이돈수(李敦壽) 등을 오래 두어서는 안 되니, 모름지기 일찍 처단하소서. 또 연산군의 폐비 신씨가 지금 정청궁(貞淸宮)에 있는데 선왕의 후궁과 함께 거처하는 것은 옳지 않으니, 동대문광평 대군(廣平大君) 집에 옮겨 안치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 등은 나이가 모두 어리고 연약하니, 차마 처단하지 못하겠다. 폐비는 스스로 허물이 없는데, 문밖으로 내쳐 보내기가 정의상 몹시 가련하니, 성안에 옮겨 안치한다고 무슨 안 될 일이 있겠는가?"

하였다.

정승들이 다시 아뢰기를,

" 등의 일을 전하께서 측은한 마음으로 차마 결단하지 못하고 계시지만 그 형세가 오래 보존되지 못할 것이니, 혹 뜻밖의 일이 있어서 재앙이 죄 없는 이에게까지 미치면 참으로 작은 일이 아닙니다.

지금 비록 인심이 이미 정하여졌으나, 원대한 염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니 모름지기 대의(大義)로써 결단하여 뭇사람의 마음에 응답하소서. 폐비는 신승선의 집을 수리해서 옮겨 두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폐비는 그렇게 하고, 등은 나이 연약하고 형세가 고단하니, 비록 있은들 무슨 방해가 되겠는가?"

하였다. 정승들이 다시 아뢰기를,

"이는 국가의 큰일이니, 차마 못하는 마음으로써 대체(大體)에 누가 있게 하여서는 안 됩니다. 모름지기 대의로써 결단하여야 합니다. 이는 신 등의 뜻일 뿐만 아니라 곧 일국 신민의 뜻입니다. 신 등이 전하께서 차마 못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뜻이 이와 같으므로 마지못하여 감히 품달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 등의 일은 차마 처단하지 못하겠으나, 정승이 종사에 관계되는 일이라 하므로 과감히 좇겠다."

하였다. 명하여 ···돈수를 아울러 사사(賜死)하였다.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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