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왕사지에서 나와 망덕사지로 방향을 잡았다. 그렇게 자주 들리고서도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아 골목길 동선에 포함하였었다. 우리님들이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망덕사지는 당나라를 기만하고저 창건한 사찰이다. (멀리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이 요즘 카페에 가입하여 자주 글을 올리는 중학교 2학년 김나신 군이다)
망덕사는 삼국사기 에 의하면 망덕사는 685년(신문왕 5) 4월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당나라가 두 번이나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자 당 고종이 당시 김인문을 따라 당에 가서 옥에 갇혀 있던 신라의 한림랑 박문준을 불러 “대병을 두 번이나 일으켰는데도 살아 돌아온 자가 없으니 너희 나라에 무슨 밀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
박문준이 “신은 상국에 온 지 10년이나 되어 본국의 일을 알수 없으나 듣건대 상국의 은혜로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으니 그 은덕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낭산의 남쪽에 사천왕사를 창건, 황제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법석을 열고 있다는 것 뿐이라 합니다”하였다. 고종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예부시랑 악붕구를 신라에 보내어 그 절을 알아 보도록 하였다. 왕이 미리 이 말을 전해 듣고 사천왕사를 보이는 것이 마땅치 않으므로 새로 한 절을 그 남쪽에 지어 놓고 기다렸다 당(홈)의 사신은 황제의 축수(祝壽) 자리인 사천왕사를 먼저 참배하여 분향을 올리겠다고 하였다
곧 새로 지은 절로 인도하자, 사신은 그 문전에 서서 말하기를 ‘이것은 사천왕사가 아니고 망덕요산望德逢山의 절 이라’ 하며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국인 이 그 사신에게 은 1 천냥을 주었더니 사신이 돌아가서 아뢰기를, 신라는 천왕사 를 세우고 새 절에서 황제의 장수를 축원하고 있을 뿐이라고 보고하였다 당나라 사신의 말에 따라서 그 절의 이름을 망덕사라 하였다고 한다.
발굴로 밝혀진 망덕사의 가람구조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1금당 쌍탑 구조의 가람배치였다고 한다. 즉 금당앞 좌우의 목탑, 남쪽에는 중문지와 계단, 북쪽의 강당지, 회랑지, 당간지주가 배치된 구조로 알려져 있다.
망덕사지 당간지주. 가장 온건하게 남아 있는 유물이다.
당간지주는 민묘 옆에 서 있다. 표면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소박한 모습이다. 사천왕사지 당간지주와 달라 고정공이 없으며 안쪽 윗면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을 두었다. .표면 모서리는 사각으로 모죽임을 하였고 아랫쪽에는 치석되지 않은 상태로 노출되었지만 본래는 묻힌 부분으로도 생각된다. 비록 조각은 없으나 소박하고 웅장한 기풍을 나타내고 있는데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망덕사는 통일신라 신문왕 5년(685)에 창건된 사찰이므로 당간지주도 동시대에 조성되었을 것이다.
서탑지 주초
서탑지 심초석
금당지
동탑지
멀리 사천왕사지가 보인다.
2013.01.19 ================================================================================================
망덕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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