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원도/평창군

평창...대관령 성황사.산신당 / 강릉 단오제

by 임병기(선과) 2012. 9. 10.
728x90
728x90

 

 

대관령면 횡계리 대관령 정상에서 북쪽으로 약 1㎞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강릉 단오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매년 음력 4월 15일에 민정관이 이곳에 와서 제향을 올리는 공간이다. 대관령 국사서낭당(國師城隍堂), 산신당(山神堂)의 여러 신은 영동지방의 가뭄, 홍수, 폭풍, 질병, 풍작, 풍어 등을 보살펴 주는 영험한 신으로 믿어오고 있다. 대관령 국사서낭은 이곳 출신의 승려인 범일국사로 전해지고 있으며, 집의 구조는 목조기와집으로 맞배집이다. 벽면에 서낭신상이 채색화로 그려져 있다. 

 

대관령 성황사와 산신에 관하여서는 강릉 단오제 살펴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디지털 강릉 문화대전 자료를 가져왔다.

 

 

강릉단오제는 농경사회 때 씨 뿌리기를 끝낸 후 한 해의 풍요로운 결실을 기원하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의식에서 시작되었는데 후대에 놀이가 가미되면서 축제로 승화되었다.단오는 원래 하늘을 주신으로 섬겼으나 오늘날에는 강릉 지방 출신 실존인물인 범일국사(梵日國師), 정씨가 여인(鄭氏家 女人)신라김유신(金庾信)장군을 주신으로 모신다. 이들은 모두 죽은 다음 신격화되어 대관령국사성황신, 대관령국사여성황신, 대관령 산신으로 등장하여 지방민을 보호해주고 있다.

해마다 봄이 무르녹을 무렵이면 꽃구경에 취했던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이 강릉으로 모인다. 강릉단오제의 계절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강릉단오제라고 하면 음력 5월 5일인 단오를 전후로 한 며칠간의 행사만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릉단오제는 실상 그 한 달 전인 음력 4월 5일에 시작해서 다음 달인 5월 7일에 끝난다.

음력 4월 5일이면 단오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신주(神酒)를 정성스레 빚는다. 음력 4월 15일에 있는 산신제 때 쓸 술을 빚는 것인데, 신주근양(神酒謹釀)이라 불리는 이 행사가 바로 단오제의 시작이다. 음력 5월 7일은 한 달 이상 이어지던 행사가 신을 다시 돌려보내는 송신제로 마무리되는 날이다. 대관령국사성황신과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을 모시고 지역 주민들이 한 해 동안의 소원을 빌며 여러 가지 축제 행사를 벌인다. 신을 위로하는 한편 주민들 간의 화목도 다지는 자리다. 강릉단오제에 수반되는 각종 행사들은 우리 민속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서 문화사적으로도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천의식의 유풍과 세시풍습의 원형이 살아있는 강릉단오제는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받았고, 2005년 11월 25일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그뿐 아니라 ‘제의 부문’, ‘굿 부문’, ‘관노가면극 부문’에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그야말로 한국 전통문화의 ‘보고(寶庫)’인 강릉단오제는 오늘날에 와서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유구한 전통을 가진 축제다. 남효온『추강집』『고려사(高麗史)』, 『강릉지』, 허균『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임영지(臨瀛志)』 등에 단오제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도 강릉단오제의 중요성에 눈을 돌려, 일본인 오청『조선의 연중행사』, 추엽융『조선민속지』, 『부락제』(조선총독부조사 자료44집), 조사자료집 『강릉군』 등의 자료가 남아 있을 정도다.

강릉단오제는 세 신, 즉 대관령국사성황신, 대관령국사여성황신, 대관령 산신을 모셔와 축제를 치르고 다시 이 신들을 돌려보내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축제의 중심이 되는 이 세 신들은 각각 어떤 존재들일까. 독특하게도 강릉단오제의 중심이 되는 세 신들은 실존 인물이라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대관령국사성황신은 범일,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은 정씨가 여인, 대관령 산신은 김유신 장군이 각각 신격화된 존재인 것이다. 이들이 신이 된 내력 또한 범상치 않아서 살펴보자면 과연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사성황지신...범일국사

 

먼저 대관령국사 성황신이 된 범일의 경우를 살펴보자. 옛날 학산에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침에 우물가에 가서 바가지로 물을 뜨니 바가지 속에 해가 떠 있었다 한다. 별 생각 없이 그대로 물을 마신 처녀의 몸에는 이상이 생기고 마침내 달이 차서 14개월 만에 사내아이를 낳았다. ‘맹물 먹고 아이가 선’ 처녀는 부모님의 노여움이 두려워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뒷산 학바위에 갖다 버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식을 버렸지만 마음이 편했을 리 없는 처녀는 사흘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 학바위로 올라갔다. 보니 갓난아기는 포대기에 싸인 채 고이 잠을 자고 있었고, 잠시 후 학이 날아와 날개로 아이를 감싸고 단실 3개를 먹여주곤 날아갔다. 범상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 처녀는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키웠다. 이 아이가 곧 범일이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 놀림을 받으며 자라던 범일은 7세가 되어 어머니에게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듣고 난 후 경주로 공부하러 떠났다. 공부를 하여 국사의 직위까지 올랐으나 영화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굴산사를 짓고 포교를 하였다. 이때 왜구가 쳐들어왔는데 범일이 술법을 써서 왜구를 물리쳤다. 도력으로 강릉을 지켜낸 범일은 죽은 다음 대관령국사성황신이 되어서 이 지역을 돌보게 되었다.

범일(810년 신라 헌덕왕 3-889년 진성여왕 3)은 신라 때 강릉 지역의 지배세력이던 강릉김씨술원(述元)의 손이고, 어머니는 문씨다. 술원은 명주도독겸평찰(溟州都督兼平察)을 역임한 강릉의 토호였고, 범일의 외가는 여러 대를 강릉 지방에서 살아온 호족이다. 범일은 15세 때 승려가 되어 흥덕왕 4년(829)에 경주에 가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나라에 가서 제안대사(濟安大師)에게 사사하며 6년 동안 수도하고 귀국했다. 귀국하여서 고향 강릉으로 돌아 굴산사에서 40여년을 보내는 동안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으로부터 국사가 되어달라는 청을 받았지만 응하지 않고 굴산사에 머물며 선문에 매진했다.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은 정씨가 여인이 신격화된 존재다. 옛날 경방초계정씨가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에 과년한 딸이 있었다. 보름달이 뜬 어느 저녁 딸이 노란 저고리에 치마를 입고 툇마루에 앉아 있다가, 대관령 서낭님이 보낸 호랑이에게 붙잡혀갔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가 딸의 방에 가 보니 딸이 보이질 않았다. 집 주위를 살펴도 보이지 않아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간밤에 호랑이가 업고 가더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버지는 얼마 전 꾼 꿈이 생각났다. 아버지의 꿈에 대관령 서낭신이 나타나 딸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버지는 서낭신을 사위로 삼을 생각이 없다고 거절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급히 대관령 서낭당에 가 보니 딸이 서낭신과 함께 있는데 벌써 비석처럼 굳어 있었다. 화공을 불러 그림을 그려 세우니 시신이 떨어졌다. 국사서낭과 처녀가 혼배한 날이 4월 15일이다. 그 뒤로 정씨 집안의 딸은 여성황신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정씨 여인초계정씨의 시조인 정배걸(鄭倍傑)의 21대 손 정완주(鄭完柱)[조선 숙종 때 사람]와 어머니 안동권씨의 외동딸로, 정현덕(鄭顯德)의 5대조 고모가 된다. 정현덕대원군 때 동래부사를 지낸 분으로 정씨 여인이 호랑이에게 잡혀갔다는 집의 주인이다. 정씨 여인은 창원 사람 황수징(黃壽徵)과 혼례를 올리고 난 후 시댁이 멀리 있어 알묘를 하지 못한 채 친정 경방(經方)에 머물고 있었는데 5월 단오날 집에서 국사 성황행차를 구경하다가 호랑이에게 업혀갔다. 가족들이 대관령 국사성황당에 찾아가니 이미 시신이 되어 있었다. 시신을 수습하여 친정어머니 산소 앞에 안장했는데 지금도 정씨 여인의 묘가 강릉교도소 서쪽 산 능선(맴소)에 있다. 정씨 여인은 사후에 국사성황과 혼배를 하고, 국사여성황으로 추앙되었다.

 

 

산식각은 서낭당에서 약 50m 지점 동북쪽에 있는 목조기와집으로 맞배집이며, 이곳에 모신 산신은 김유신장군이라고 전한다. 당내에는 ‘대관령산신지위’(大關嶺山神之位)라는 위패가 있고, 전면 두 기둥에는 주련(柱聯)이 있고 좌우에 각각 ‘강인간지오복’(降人間地五福)과 ‘응천상지삼광’(應天上地三光)이라 쓰여 있다.

 

독특하게도 김유신 장군은 역사적인 위인으로서 산신의 대우를 받게 된 경우다. 김유신이 어려서 명주에 유학을 왔는데 그 재주가 특출해서 검술을 산신에게 가르쳤을 정도였다. 김유신이 가진 칼은 명주 남쪽 선지사에서 90일 만에 만들었는데 광채가 달빛을 능가했다. 장군은 이 칼로 생전에 말갈족을 평정하고 죽어서는 대관령 산신이 되었다. 김유신(595~673)은 가야국 김수로왕의 후손이다. 어려서 화랑이 되어 심신을 수련했고, 장수가 되어 강릉 지역에 주둔하면서 말갈족을 물리치고 흥덕왕 10년(835)에 흥무대왕에 추존되었다.

 

김유신 장군

 

이 세 신이 주존이 되는 강릉단오제는 신주 빚기로 시작해, 대관령 산신제, 대관령 국사서낭제, 구산서낭제, 학산서낭제, 봉안제, 영신제, 조전제, 국사서낭행차, 송신제, 강문진또배기제, 무격굿 등이 신사축제로 이어진다. 행사와 함께 벌어지는 축제에는 관노가면극, 농악, 민요(학산오독떼기), 그네, 씨름, 줄다리기 등이 있다. 먼저 신사축제의 절차와 내용을 보자.

신사축제에서는 복식과 홀기, 축문을 갖춘 헌관과 집사들이 산신제·성황제·영신제·봉안제·조전제·송신제를 거행한다. 제의는 유교식 제의와 민간신앙적 무속제의가 혼재된 의식인데,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초헌관·아헌관·종헌관, 제관과 무격이 주축이 되어 올리고 제례 때 쓰는 제물은 도가에서 마련한다.

음력 4월 5일에는 신주를 빚는다. 신주근양은 신에게 바칠 술을 빚는 의례인데 옛 관아인 칠사당에서 거행된다. 술을 빚기 7일 전부터 대문 앞에 금줄을 치고 붉은 흙을 뿌린다. 강릉시장으로부터 쌀, 누룩, 솔잎을 받아 술을 빚는데 무격이 부정굿을 쳐 주위를 깨끗하게 하고 술을 빚어서 술 단지를 한지로 덮는다. 신주는 4월 15일 산신제 때 쓴다.

4월 보름에 거행되는 산신제는 대관령 산신당에서 대관령 산신 김유신 장군을 섬기는 제례다. 산신제의 초헌관은 동부지방 산림관리청 청장이 맡는다. 산신제를 지낸 다음에는 대관령 국사성황사에서 대관령국사성황신에게 대관령 국사서낭제를 올린다. 제례가 끝나면 국사성황신을 신목에 내리게 해 대관령 국사여성황사로 모시고 간다. 대관령 국사서낭제의 초헌관은 강릉시 시장이 맡는다.

국사성황신을 국사여성황사로 모시고 가기 전 성산면 구산리 서낭당에서 구산서낭제를 지낸다. 구산서낭은 대관령국사 성황과 대관령국사 여성황 사이에서 태어난 큰아들이라 하고, 작은 아들은 굴면이 서낭이라고 한다. 그 다음의 제례가 학산 서낭제다. 학산서낭제는 국사성황신을 모시고 구정면 학산리(재궁말) 서낭에서 올리는 제례다. 학산은 국사성황신 범일국사의 생가가 있던 마을로, 이곳에는 범일의 어머니가 샘물을 마셨던 석천(石泉), 범일이 버려졌던 학바위, 범일국사가 머물던 굴산사지가 있다.

여기까지 다 치르고 나면 봉안제(奉安祭)의 순서다. 대관령국사성황신을 홍제동에 있는 대관령국사여성황사에 모시는 제례가 봉안제다. 부부인 두 신은 이곳에서 5월 3일 영신제 때까지 같이 있다가 단오제장으로 간다. 봉안제의 초헌관은 강릉시의회 의장이 맡는다.

이날 밤, 즉 음력 4월 15일 자정에는 강문(江門) 서낭당에서 강문 진또배기제가 열린다. 강문어촌계의 주관으로 지내는 제례인데, 마을의 삼재(물, 바람, 불)를 막고 풍어를 기원하는 의미의 행사다.

음력 5월 3일이 되면 본격적으로 단오제를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대관령 국사여성황사에서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을 모시고 단오제장으로 가기 위한 제례를 지내는데, 이것이 영신제(迎神祭)다. 영신제의 초헌관은 단오제위원장이 맡는다.

영신제를 지내고 단오제장으로 가기 전에 대관령국사성황신위와 대관령국사여성황신위를 모시고 대관령국사여성황인 정씨 여인의 생가가 있는 경방에서 또 제례를 지내는데 이것이 정씨가 제례다. 이렇게 두 신위는 단오제장에 모셔지고 단오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영신제 다음날인 5월 4일부터 단오가 끝날 때까지 매일 아침 단오제장에 마련된 제단에서는 조전제(朝奠祭)를 모신다. 강릉지역의 기관장들이 돌아가면서 초헌관을 맡는다.

단오가 끝나면 두 신위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데 이때도 제례가 빠질 수는 없다. 영신제의 상대가 되는 제례이니 송신제(送神祭)다. 이 제의가 끝나면 신목, 굿을 할 때 쓰던 등, 종이꽃등(지화등, 紙花燈), 기타 장식품을 모두 태운다. 강릉단오제가 모두 끝나는 순간이다. 송신제의 초헌관은 강릉단오제보존회 회장이 맡는다.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을 모셔놓았으니 신을 위로하는 잔치마당이 당연히 펼쳐지게 마련이다. 이 행사축제에는 가면극, 농악, 민요, 단오굿, 그네, 씨름 들이 있다.

유명한 「강릉관노가면극」이 바로 단오의 대표적인 행사다. 「관노가면극」은 단오 때 대성황사에서 연희되던 서낭계의 탈놀이로 해학과 신앙성이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춤과 동작이 위주가 된 무언극(무극)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관노들에 의해 공연되었다고 해서 명칭이 「관노가면극」인데, 가면극 특유의 갈등 양상이나 저항의식을 찾아보기는 어렵고 관노들의 이중적인 신분에서 오는 갈등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어서 특이하다. 전문놀이꾼인 광대가 아닌 관노들에 의해 연희되는 터라 전문성과 기교,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신분의 귀천을 초월하여 어울리는 마당이 펼쳐진다.

지역사람들의 풍요와 안녕, 벽사진경을 목적으로 하는 「관노가면극」의 등장인물은 모두 6명이다. 양반광대 1명, 소매각시 1명, 시시딱딱이 2명, 장자마리 2명이 그 등장인물이고, 이 외에 악기(꽹과리, 북, 장고, 징)를 다루는 악사가 10여 명이 된다. 등장인물에서 양반광대는 국사서낭님을, 소매각시는 국사여서낭님을, 시시딱따기는 벽사기능을 가진 여역지신을, 생산의 기능을 가진 장자마리는 김유신 장군(창해역사)을 상징한다고 한다.

연희마당은 모두 다섯 마당이다. 첫째 마당은 장자마리 개시 마당으로, 두 명의 장자마리가 놀이마당의 좌우에서 등장하여 서로 어울려서 춤을 춘다. 둘째 마당은 양반광대와 소매각시의 사랑 마당인데 양반이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양반걸음으로 등장, 소매각시에게 사랑을 구한다. 시시딱딱이의 훼방 마당인 셋째 마당에서는 시시딱딱이 2명이 놀이마당 양쪽에서 등장하여 회돌이칼 춤을 추며 마당을 한 바퀴 돌면서 양반과 소매각시의 사랑을 방해한다. 넷째 마당은 소매각시의 자살소동 마당인데 소매각시가 시시딱딱이와 어울렸다고 양반광대가 오해한다. 소매각시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양반이 믿어 주지 않자 양반의 긴 수염으로 자살을 시도한다. 다섯째 마당은 양반광대와 소매각시의 화해 마당. 소매각시의 결백을 믿은 양반은 서낭목에 가서 소매각시의 소생을 기원하고, 소생한 소매각시와 화해를 한다.

음악 없는 축제를 상상할 수 없듯이, 강릉단오제 역시 음악이 큰 역할을 한다. 농악과 민요는 강릉단오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성요소.

강릉농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라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두레 형태의 농악으로 빠르고 경쾌한 12채 가락이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지신밟기, 걸립굿, 질먹기, 마당굿, 농사풀이, 개인놀이, 뒷굿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국에서 향토색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락은 1채부터 4채까지 다양하고 리듬은 빠르면서 단조롭다. 최근 들어 길놀이를 행진곡풍으로 재생산한 것이 이색적이다. 남자 쾌자들이 머리에 쓴 고깔에는 40송이나 되는 꽃들이 달렸는데 이 수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이라고 한다. 상쇠를 비롯하여 징, 장고, 북, 태평소 등의 풍물 10여 명과 법고, 소고, 무동 등 40여 명으로 구성되는데, 여자로 분장한 무동의 놀이와 춤사위가 보는 이들의 흥을 돋운다.

강릉의 민요는 집단노동요가 많다. 지역 사람들의 심성과 정서가 잘 나타나 있는, 한없이 느린 곡조에 끊일 듯 말 듯 가락이 유장하게 이어지는 메나리조가 특징이다. 그렇지만 타작소리처럼 삶의 역동성이 살아 있는 힘찬 가락도 보인다. 오독떼기, 자진 아라리, 싸대, 사리랑, 잡가 등의 민요가 구전되고 있는데, 강릉 지역의 농요는 가창방식에서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대관령국사성황신과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의 위패를 모셔놓고 치르는 종교의례인 「단오굿」은 강릉단오제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행사다. 굿은 단순히 오락과 여가로서의 기능만 갖는 것이 아니다. 서낭신을 통해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와 지역 주민들의 안녕과 풍요, 번영이라는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신앙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릉단오굿」은 그 형식과 내용이 잘 갖춰져 있기로 전국에서도 손꼽힌다.

굿마당은 먼저 「부정굿」으로 열린다. 굿당에 신을 모셔오기에 앞서 굿당과 주변에 있는 모든 부정을 가시게 하는 굿이 「부정굿」이다. 무녀가 물과 불로 굿당을 깨끗이 정화하고, 굿에 참가하는 사람들 개개인의 부정도 가시게 하며 신이 내려와 앉을 수 있도록 공간을 깨끗하게 한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화회굿」. 모든 신들이 서로 화해하고 한 자리에 앉아 굿을 받으라고 드리는 굿이다. 특히 남녀 신 간의 화합을 이루도록 한다.

「조상굿」은 가정에서 조상님을 모셔 자손의 만복을 빌고, 집안의 태평을 기원하는 굿이며, 「세존굿」「당금아기 설화」를 노래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굿이다. 당금아기가 부모 몰래 세존과 정을 맺고 임신하여 가족들의 따돌림을 받다가, 마침내 갖은 고생 끝에 세존과 만나는 서사구조를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산신의 정기를 빌어 가정이 화목하고 자손들이 장성해서 번창하기를 비는 「산신굿」과 집안에 있는 가신 중에서 어른인 성주를 위로하고 가족의 길흉화복을 비는 「성주굿」이 있다. 「성주굿」에서는 솔씨를 뿌려 가꾸어 큰 재목으로 키워서 베어 집을 짓고 세간을 들여 놓고 다복하게 사는 과정을 노래한다.

「축원굿」은 대관령국사 성황신과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을 모셔 놓고 신을 위로하는 굿이다. 칠성굿은 북두칠성에게 올리는 굿인데, 북두칠성은 사람의 수명을 주관하고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만능의 영역이 미치게 한다고 전한다.

나라와 마을을 지켜준 장군들을 위로하고 전사한 영혼을 위로하는 「군웅굿」「놋동이굿」이라고도 불린다. 이 굿대목에서 무녀가 커다란 놋동이를 입에 물어 올리는 묘기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심청전」을 구송하면서 진행되는 「심청굿」은 어부들의 눈을 밝게 하여 풍어가 오기를 비는 굿이다. 무녀가 창호지를 가늘게 썰어 늘어뜨린 신대를 메고 굿을 하는데, 사람들이 이 창호지로 눈을 씻고 복전을 걸면 눈이 밝아진다고 전한다.

「손님굿」은 손님 즉 마마를 위로하여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하는 굿이다. 마마에 걸리지 않게 해달라고 또 마마에 설혹 걸리더라고 얼굴에 흉터를 남기지 않고 곱게 지나기를 비는 굿이다. 「제면굿」제면할머니가 단골네 집을 찾아다니면서 걸립하는 굿을 말한다. 제면은 무당의 조상으로, 무당의 단골 구역을 뜻하기도 한다.

다음 차례에서 무녀들은 굿당에 모셨던 꽃을 하나씩 들고 나와 노래하고 춤을 추며 굿을 한다. 이 대목이 「꽃노래굿」인데, 영혼들이 서천 꽃밭 즉 저승으로 편안히 잘 가라는 뜻에서 하는 굿이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뱃노래굿」이다. 이 굿은 영혼들이 저 세상으로 갈 때 배를 타고 평안히 가라는 뜻에서 하는 굿인데 굿당 천장에 매달아 두었던 용선을 내려 무녀들이 배 젓는 흉내를 내고 뱃노래를 하면서 춤을 춘다. 마지막으로 펼쳐지는 것이 바로 「등노래굿」으로, 호개등을 들고 하는 굿이다. 원래는 영혼들이 저승에 가는 길을 밝혀주는 의미였는데, 「강릉단오굿」에서는 대관령국사서낭님이 편히 잘 가시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근대 이전 우리나라 곳곳에서 이런 행사가 있었을 것임은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다른 전통 행사와 축제들이 사라진 현대에 와서도 유독 강릉단오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릉단오제가 오랫동안 전통의 모습을 잃지 않고 그 생명력을 온전하게 이어온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혹자는 강릉단오제의 난전에서 그 비밀을 찾고자 한다.

난전은 비지정 장소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하는데 강릉단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이루고 있다. 단오제가 오랜 세월 동안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것은 열린 공간인 난전 덕분이다. 난전은 특정계층을 위한 닫힌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인 신분, 성별, 나이를 초월한 공간이다.

축제는 제사를 지내는 신판과 한바탕 먹고 마시며 노는 난장판이라는 이중구조로 이뤄져 있다. 신판의 중요성은 일찍부터 인식되어 왔지만 난장판의 중요성은 도외시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강릉단오제에서 난전을 도외시하고는 단오의 본질에 접근하기 어렵다. 단오제에 많은 인파가 몰리는 것은 난전이 가진 엄청난 흡인력 덕분이다. 난장판은 흔히 쓰이는 말 그대로의 난장판이 아니라 그 나름의 규칙과 질서가 있다. 난전은 물건을 사고 파는 공간이고, 만나서 마시고 대화하는 사귐의 공간이기도 하다. 열린 공간으로서 사람들이 만나서 마시고 대화하는 사귐의 기능과 물건을 사고파는 경제적 기능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특유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단오는 양의 기운이 절정에 이르는 절기다. 씨를 뿌리고 난 후 농작물들은 싹을 틔우고 무성한 여름을 향해 자라난다. 보릿고개는 끝나고 산과 들에 먹을 것이 넘친다. 흐드러진 봄꽃들이 한바탕 자태를 과시하고 난 후 자연은 나날이 푸르러진다. 세계적으로도 봄에 열리는 축제들은 생명을 찬양하면서 번식과 풍요를 기원한다. 강릉단오제 역시 그런 봄의 축제를 대표하는 성격을 잘 보여준다. 명목은 지역을 지켜주는 서낭신들을 모시고 위로하면서 공동체의 번영을 기원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한바탕 ‘난장판’을 벌이면서 활기차게 어우러지는 시공간이 단오제다. 전국의 수많은 단오제들이 사라지거나 간신히 명맥만 이어가는 현대에 강릉단오제가 오늘날도 번성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모로 의미가 깊은 일이다.

옛 축제들을 현대에 어떻게 살릴 것인가. 어떻게 보존하며 어떻게 현대적인 요소와 병행하게 할 것인가. 상업주의나 지방자치제와 축제가 어떤 역학관계에 놓이도록 할 것인가. 강릉단오제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사실 적지 않다. 그런데도 해마다 봄이 오면 사람들의 가슴은 설렌다. 음력 오월, 단오제의 계절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2012.07.30

 

728x90
728x90

'강원도 > 평창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창...오대산 월정사  (0) 2012.09.12
평창...오대산 상원사  (0) 2012.09.11
평창...수항리사지석탑  (0) 2012.09.09
평창...방림리사지 석불좌상  (0) 2012.09.08
평창...하리 석조 관음보살 입상  (0) 2012.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