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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평창군

평창...하리 석조 관음보살 입상

by 임병기(선과) 2012.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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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신대리 석탑 답사후 평창에 거주하는 도리천 님과 통화를 하였다. 이번 강원도 답사 동선을 디테일하게 수립해준 분으로 덕분에 일사천리로 답사를 할 수 있었다.. 평창에서 만난 님의 첫인상?  나의 인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도리천님이 화를 내실까? 하리 보살상부터 평창 답사는 도리천님과 동행하여 많은 시간을 절약 은 물론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거듭 감사드린다.

 

평창강 건너편에 보이는 전경이 하리관음보살이 있는 산길 입구 반대편 평창문화예술회관으로 혼자였다면 찾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다음에 이곳을 들릴 님들은 사전에 장소를 인지하고 떠나야 할 것이다.평창읍에서 영월방향 1KM(?)의 도로변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지만 주차도 힘들고 산으로 향하는 입구를 찾는 일도 만만치 않으며, 외지인에게 결코 답사가 용이하지 않아 보인다.

 

 

평창읍 하리 산 58-2. 인터넷 불국정토와 여러 자료에는 약사여래 입상이라고 했다. "높이 105cm, 너비 42.5cm의 불상으로 연꽃이 조각된 판석형의 좌대 위에 서 있다. 머리 부분이 결실되고 풍화가 심해 옷주름 등이 선명하게 남아 있지 않다. 법의는 통견이며, 오른손은 들고 왼손에는 약호를 들고 있다. 마을에서는 미륵불이라고 전해지나 영락장식이 없고 약호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입상으로 추측된다."

 

영락이 없다고 하여 약사여래라고 했지만 지물은 약합보다는 오히려 정병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오히려 관음보살 입상일텐데 보살상을 단독으로 모시는 경우도 흔치 않아 존명에 대해서는 확신이 가지 않는다. 문화재로 지정 되기 전까지는 관음보살로 보고 싶다.

 

관음보살을 여기에 조성한 목적은 무엇일까?

우선. 평창 네방위중 허결처에 대한 비보책, 두번째로는 평창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무사한 운항 기원. 마지막으로 보살상 뒤에 위치한 민묘를 주목할 필요가 있겠지만 조심스러워 표현은 자제하겠다.

 

유동리 오층석탑

 

보살상의 안태 고향은 어디일까?

처음부터 이자리에 있었을까? 위의 목적으로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면 어디일까? 이곳과 지근에 있는 유동리 5층탑과의 개연성은 없을가? 오층탑 뒤에는 금당터가 있어 폐사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탑도 고려시대에 조성된 탑이며 관음보살상도 편년이 더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다.

 

 

우리카페 도리천님의 주민들에게 채록한 이야기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전에는 불두도 있는 완전한 입상이었다고 한다. 근자에 무속인들에 의해 훼손되어 평창강가에 방기하여 주민들이 다시 수습하여 원위치에 두었으나 현재는 행방이 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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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보살상 앞 평창강과 평창읍 전경. 여기에 서면 보살상 조성 목적이 분명해 보이는데, 민묘 때문에 확신을 가질 수 없다. 민묘와 보살상 과연 먼저 이 자리를 차지한 주인공은 누구었을까?

 

201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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