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영광군

영광...죽사리 당간지주

임병기(선과) 2012. 5. 2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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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읍 죽산리 명산마을 도로변에 위치한다. 도로 확장 공사로 본래 자리에서 약간 이동하여 세워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발행의 문화유적 총람에는 석주로 명기하였고, 문화재청 발간 한국사지총람에는 당간지주로 표현하였다. '석주'? 참으로 무책임한 표현이다. 민간에서 조성했다면 성황당. 입석. 솟대.남근석이었을 것이고, 사찰 소속이라면 당연 당간지주인데, 관에서 조성했다면 이정표?

 

당간지주라고 생각하고 접근을 해보았다. 죽사리의 마을명을 조사해보니 "현재 장동마을은 당초에 신탑, 탑동, 장동 등 3개 마을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3개 마을을 합해 장동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분명 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백수읍 죽사리의 죽사산(竹寺山)에는 대절사 터가 있었다."라는 자료도 보인다. 대절사는 큰 절을 의미한다.

 

영광 사람들에게 전하는 ‘팔괴(八怪)’ 중에서 ‘화미(火米)’의 전설이 이 암자에서 유래한다. 즉 "백수읍 죽사산(일명: 대절산) 중턱의 돌구명 탄 쌀이 나오는데, 절에 손님이 오면 손님이 온만큼 밖에 쌀이 나오지 않아 음식 공양을 하던 상좌가 신경질이 나 불이 탄 부지갱이로 쌀구멍을 쑤셔버린 뒤부터는 쌀이 시커멓게 탄채로 나왔다. 상좌중은 그 후 쌀구멍을 깨끗이 청소하고 좋은 쌀이 나오기를 기다렷으나 지금까지 검은 쌀이 나온다고 한다." 대절사 옛터에는 만경암이 들어섰다고 한다. 또한 가까운 곳에 귀경사도 있다고 한다.

 

사적이 없으니 분명하게 단언키 어렵지만 위에서 열거한 절집  당간지주가 아닐까? 보편적인 당간지주 처럼 2기 지주가 한쌍을 이루는 형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 기로 조성하였을 것이다.

 

 

방형 지대석 위에 한 개 부재로 면석을 놓고 위에 갑석을 올려 마치 석탑 기단부 처럼 보인다. 갑석은 두텁고 물매는 얕으며 우동이 뚜렷하다. 상부에 홈을 내어 지주를 끼워 고정시켰다. 지주는 사각이며 모죽임을 하였다. 상부는 잘려나갔다.조성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한다.

 

 

이런 생각도 든다. 명산 마을 뒷산 풍수형국이 장군대좌형국이라고 한다. 장군대좌 형국이 완전하게 자리를 잡을려면 장군깃발에 해당하는 자리가 있거나 병졸들이 있어야 한다. 천안 병천 아우네 장터는 그런 형국의 비보책으로 병졸을 상징하여 장터를 만들었다고 전해온다. 혹여 죽사리 석주도 장군형국의 비보책으로 조성한  "장군깃대"는 아닌가? 또한 야간 행사시에 불을 밝혔던 노주석으로도 생각할 수 있겠다. 봄 날에는 꿈도 자주 꾸어야 한다. 아주 자유롭게.

 

201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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