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영광군

영광...일명산 연흥사

임병기(선과) 2012. 5. 25.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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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흥사는 일명산(日明山)에 자리잡은 대한 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이다. 연흥사에는 내려오는 사적기가 없어 확실한 창건내역을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각진국사(覺眞國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후 정유재란(1579년)때 병화를 입은 후 1667년(현종 8년)에 부운(浮雲)스님이 화주가 되어 중창한 후 여러 차례 중창을 하였다고 한다. 최초의 기록은 18세기의 사서인 『여지도서(輿地圖書)』등에 나타난다.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유물은 석탑으로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미 고려 초에 사찰의 존재를 알려주고 있다. 목조불상과 불상의 복장품으로 전해지고 있는 묘법연화경으로 보아 연흥사는 17세기 전반기에 다시 중창되었다고 본다...한국 전통관광사찰정보 

 

보제루

 

연흥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지만 답답한 느낌이 들지않고 오히려  아늑한 분위기다. 대웅전 중정에는 여느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수령 500년의 넘은 키 작은 배롱나무와 동백꽃이 눈길을 끌었다. 전란과 불사를 극복하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강한 생명력이 경외롭다. 내치지 않은 절집 사람들의 마음도 고마웁고.

 

대웅전

 

근자에 불사를 마친 듯한 대웅전은 정.측면 3칸,겹처마, 다포계, 팔작지붕이다. 예전에는 불갑사가 작은 집. 연흥사가 큰 집이었다고 전해온다. 500년을 동고동락한 동백 할배와 배롱 할매는 아시겠지?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은 문제가 있었다. 전통관광 사찰정보에는 연흥사 목조 삼존불이 효정당에 봉안되었다는 기록이 보여 문화재청.영광군청.영광문화원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았지만 효정당에 있다는 특별한 기록을 발견하지 못했다. 삼존불 설명과 대웅전 삼존불 모습은 일치하였지만 효정당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여 못내 안타깝다.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쓴소리 한 마디 해야겠다. 삼존불은 석가모니불.약사여래.아미타불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삼계불임에도 불구하고 위에 언급한 기관 모든자료에는 삼세불로 표기되어 있다. 더욱 아쉬운 점은 영광문화원 문화재 검색 모든 화면에는 '경북 경산 하양의 환성사 대웅전' 사진이 올라와 있으며 문화재에 대한 설명이 없다. 영광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문화재 검색 창에는 '국가지정" 초기화면만 나오고 도지정은 크릭이 안되어 군남면 홈페이지에서 검색할 수 밖에 없었다. 아래의 삼계불 설명은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왔다.

 

 

영광군 연흥사에 모셔져 있는 3구의 목조여래좌상이다. 중앙의 석가여래좌상은 매우 안정되고 삼매경에 빠진 듯한 고요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자그마하게 솟아있고, 머리 중간에는 반월형의 계주가 있다. 사각형의 얼굴에 눈, 코, 입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선명하다.

 

양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U자형 주름이 선명하고 트인 가슴 사이로는 一자형 띠주름이 보이는데, 양쪽의 불상과는 달리 연꽃무늬로 장식되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을 취하였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아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무릎을 덮은 옷자락은 양쪽으로 부채살 모양이 표현되었으며, 앉은 자세는 오른발이 왼발 위로 올라오는 길상좌를 취하고 있다.

왼쪽의 약사여래좌상은 머리 모양, 얼굴의 분위기, 앉은 자세, 옷무늬의 세부적인 기법 등에서 석가여래와 같은 양식이다. 다만 다른 것은 앞가슴에 나타난 一자형의 띠주름이다. 손모양은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아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왼손은 어깨 위로 세워 역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오른쪽의 아미타여래좌상은 석가여래좌상 및 약사여래좌상과 세부적인 표현기법이 거의 동일하다. 다만 손모양만이 다를 뿐인데, 오른손은 어깨 위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고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아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이 연흥사 불상은 복장물에서 나온 『묘법연화경』(전남유형문화재 제175호)과 건물 상량문을 통하여 1628년부터 1667년 사이 즉, 17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기 이상 석탑 부재의 조합이다. 한층 더 올렸다. 기단은 2중 기단으로 하층의 면석 2매가 유실되었고, 상·하 갑석은 몇 군데 깨져 있다.  1층 탑신석은 1매, 우주와 탱주를 표현하였다. 옥개석은 두툼한 편으로 낙수면의 물매가 급하고, 층급받침은 4단이며, 우동의 합각은 예리하다.

 

상·하기단 갑석은 몇 군데 깨져 있다. 하층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는 모각하지 않고 3개의 안상을 표현하였다. 하층갑석은 1매의 판석을 만들었으며 서쪽부분의 훼손이 심하며 상부에 기단면석괴임을 두었다. 상층면석은 4매로 결구하였고, 우주와 탱주를 새겼다.

 

1층까지의 비례로 보아 3층 석탑으로 추정된다. 1층 옥개석 위의 부재는 다른 석탑 부재로 생각된다. 조성시기는 고려시대이다.

 

사찰 좌측 편 언덕을 넘어 홀로 외롭게 서있다. 부도의 주인공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지만, 원구형 부도로 조선시대 연흥사에서 한 살림 차리신 스님의 부도일 것이다.

 

 

기단은 상·중·하대석을 각각 1석이다. 

 

 

탑신은 구형인데 상·하를 평평하게 다듬었고, 옥개석은 사각형으로 두툼하며 낙수면 물매는 깊고은 경사가 심하고, 우동이 뚜렷하다. 상륜부의 부재는 보주일까?.

 

 

마애불 가는 길은 어디에도 표시가 없었다. 보살님에게 물어  위치 확인 후 산길을 뛰었더니 땀이 흥건하다. 정상부 팔각정을 지나니 연흥사 보살님이 안내해 준대로 멀리 시선을 붙잡는 바위가 보인다.

 

 

문화유적 총람, 문화재청의 한국사지 총람에는 북쪽과 동쪽면에 새겨진 마애불로 표기 되었고, 전통관광사찰 정보에는 남쪽과 동쪽면으로 명기되어 혼란 스럽다. 아래 마애불 관련 글은 단순히 주관적인 판단이며 정확한 자료가 있으면 알려주면 수정하겠다.

 

 

사방불?

 

동.약사, 서.아미타, 남.석가, 북 미륵

 

 

좌향을 가늠하지 못하겠다. 선각여래좌상으로 추정된다. 일부 자료에는 약사여래 좌상으로도 표기했다. 소발, 온화한 얼굴에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미소가 희미하게 보인다.  어깨는 좁고 두광, 삼도를 표현했다.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결가부좌한 여래상이다.

 

문화유적 총람에는 " 함평군 손불면 북성리 사기봉 정상"에 위치한다고 명기했다."해발 357m의 사기봉 정상에 2구의 마애불이 있다. 군유산의 지봉인 사기봉은 북성리 사기 마을에서 약 1시간 정도 오르는 거리이다. 이 마애불은 15×5m 정도의 자연 암반의 편평한 면에 동쪽과 남쪽면을 이용하여 새겨 놓았다. 사기봉의 마애불은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사기 마을 인근에 있는 옛 옥선사에 속한 미륵암에서 조성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마애불의 위치는 오히려 현 영광에 속한 연흥사에 가까운 곳이며 또 연흥사에 고려 초기에 속한 삼층탑재가 있는 것을 감안해 보면 이같은 마애불도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광군 홈에서는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

 

 

마애불 앞. 숫기와에 새겨 놓은 고운 님의 글.

 

천년

천년을 기다려

님이 손짓해도

그저

미소 지을 뿐

 

천년

천년

무심한 바람결에

그 미소가

사라진다

 

 

선각마애여래 입상? 미완성불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의 한국사지 총람에는 함평군 손불면 북성리 사기봉마애여래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존상에 대한 설명이 없어 역시 애매모호하다. 여래불은 연흥사 방향을 향하고 있다.

 

 

좌상 보다 훨씬 마모가 심하며 삼도가 희미하게 보인다. 내눈에는 얼굴도 보이는데 우리님들도 보이나요?

 

 

보살님 말씀에 의하면 바위에는 3분의 불상을 새겼으나 한 분은 망실되었고, 다른 방향에는 자리가 없어 이 바위를 승상으로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연흥사에 전해 온다고 했다. 즉 사방불로 모셨던 단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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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흥사로 되돌아 오는 길에 바라 본 서해.  마애여래좌상불이 향하는 방향이다. 그렇다면 마애불은 서해를 항해하는 선박과 어민을 보호하는 수호신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왕건과 관련성이 있다는 자료도 보인다. 그런데 왜 금어는 마애불을 미완성으로 남겨 두었을까?

201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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