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영광군

영광...단주리 당간지주.월평사지 석탑.연성리 미륵불

임병기(선과) 2009. 8. 18.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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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작사지라고 했다. 당간의 위상으로 추측하면 거대 가람이었을 폐사지에는 여름이 짙다.  당간이 휘날렸던 날에는 곱게 단장한 동네 아낙과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성스럽게 준비한 공양물을 들고 총총걸음으로 들어서며 삼배를 올렸었다. 이제는 영화도, 뼈아픈 상처도 모두 묻어버리고 봄날의 농부가, 가을 들녘 풍년가에 익숙해졌고 이따금 찾아오는 님이 고맙기만 하다. 그렇게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당간지주는 전국에 산재하지만 온건하게 석당간이 남이 있는 곳은 나주 동문 석당간 외에는 찾기 힘들다. 더구나 나주는 사찰 당간이 아니라 담양읍의 풍수 비보책으로 조성되었다고 알려져 있어 사찰 석당간은 단주리 당간이 유일하다.

 

 

단주리 당간지주. 1945년 7월 태풍 피해를 입기전에는 높이가 약 12.12m에 달했다고 한다. 하부가 땅에 묻힌 당간지주는 풍화가 심하지만 문양없이 소박한 형태로 끝은 둥글게 모죽임하였다.  지주에는 상단에 둥근 구멍을 뚫어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주를 꽂도록 하였고, 아래는 양 지주와 당간을 관통하는 간공도 보인다.

 

당간도 전체적으로 간결하며,  4각의 모서리를 약간씩 죽여 8각이라고 하지만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당간은 철제로 둥글게 띠를 돌린 곳부터 폭이 줄었다.

 

 

고려말기에 세운 당간지주로 추정한다. 영광군에서도 조금만 노력을 기울여 주변을 매입하였으면 좋겠다. 이름없이 영광군에 속해 있는 당간보다는 전국적으로 홍보하여 영광의 다른 축제와 연계하여 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빈번하면 좋지 않겠는가? 

 

 

월평사지 석탑.답사 동선에 포함되었던 탑의 위치을 단주리 당간지주 안내문에서 발견하고 급히 주변을 살펴 도로 건너 폐가 옆에서 찾았다.  단주리 당간지주와 함께 천작사 탑으로 내심 믿었지만  월평사지 탑이라고 한다.

 

월평마을에 유존하여 월평리 사지라고 하지 않았을가? 화강암의 재질과 두 옛님의, 양식 등을 감안하면 당간지주와 더불어 천작사에 조성되었던 탑이었을 개연성도 충분하다고 보지만 증빙은 내몫이 아니다.

 

 

현재 옥개석이 3개이나 4개 몸돌로 미루어 5층이라고 추측했는데  구전에 의하면 원래 7충이었다고 한다. 2기단, 기단 면석은 4매로 이루어 졌으나 2매는 유실되었다.

 

기단과 몸돌에는 양우주를 새겼고, 풍화가 심한 갑석에는 우동마루와  높은 몸돌 받침이 보인다.  옥개 받침은 4단이며 맨위 옥개석 상부에는 찰주공 흔적이 남아 있다. 상륜은 멸실 되었다.

 

 

불분명한 안태고향, 사이비 외과의사의 성형, 몰지각한 얼치기들의 폭력으로 인한 장애로 민증발급이 되지 않은 탓에 주거부정으로 몰려 이정표도 안내문도 세워주지 않는 현실이 서럽고 서럽지만 이제는 지친다. 공허한 메아리로 남거나, 조치예정 또는 예산 타령의 진부하고 천편일률적인 답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영광읍 연성리 연동 마을 미륵불이다. 여러 마을을 전전 후 동네 어구를 지나 마을로 진입 골목길에서 어르신에게 여쭈어 찾았다. 미륵불이라고 했지만 얼굴 형태는만 남아 있다. 처음부터 명확하게 조각하지 않은 듯 하다.

다른 지방 처럼 입석 형태의  마을맥이 장승으로 조성되었을 것이다.

 

 

입석처럼 긴 장방형에 둥글고 아주 작은 얼굴 만 보인다. 희미하게 남은 귀는 짧지만 유난히 목이길고, 머리 위에는 둥근 삿갓이 올려져 미륵임을 암시하고 있다. 비지정 자료에 의하면 연동마을에는 미륵불외에도 입석이 있었다고 했지만 찾아 보지 못했다.

 

 

재미있는 것은 미륵불이 바라보는 방향은 마을이다. 일반적으로 좌향은 마을밖을 향하거나 마을 입구에서 두쌍이 서로 맞보고 서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정황에 근거하면 이 미륵은 할아버지 미륵으로 마을 어딘가에 할머니 미륵이 모셔져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지만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비슷한 사례로는 경북 구미 도중리에 현존한다.

 

연동마을 미륵은 고창읍의 오거리 당산과 같은 상징으로 마을을 비보하고 벽사,안녕, 풍요를 가져다 주는 우리 전통 마을 민속물이다.

 

200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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