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김제시

김제...성모암 고시례전高氏禮殿

임병기(선과) 2012. 4. 26.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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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암.만경읍 화포리 388번지. 하루해도 지친 몸을 이끌고 만경평야 지평선 너머로 뉘엿뉘엿 길을 재촉하고 있다. 객에게는 집, 가족, 어머니가 그리운 시간에 성모암을 들렸으니 일반적인 여수보다 진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388번지는 나의 본적 지번과 일치하여 묘한 느낌이 전신을 휘감아돌았다. 마침 중정으로 나온 스님에게 여쭈었더니 현재의 석불좌상 외에도 석조지장보살상이 있었으나 도난당했다는 말씀과 더불어 고시례전을 알려주었다.

 

고시례전과 진묵대사 어머니 묘

 

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의 창건설화를 가져왔다. 조선 명종 임술년(1562년)에 진묵대사는 불거촌(전북 김제시 만경면 화포리)서 태어났다. 어머니 묘소가 이곳 유양산에 있으며 '무자손 천년향화지지(無子孫 千年香火之地)인 이곳은 진묵대사의 소점지라 일컬어 우리나라 민속제전처라 칭송하여 내려오는 곳이라 한다. 진묵대사의 사후 3백여년의 긴 세월을 겪어 어머니의 묘소가 퇴락될 즈음 917년 5월에 고 이순덕화 부인께서 당시 계룡산 신도안에 있다가 고향인 임실 땅으로 길을 나섰다가 이곳 인근 부락에 유숙하게 되었다. 그날 밤 꿈에 서편 하늘로부터 흰가마가 내려오더니 한 스님께서 이르시되 이 가마를 타라 하시기에 가마안에 앉으니 그 가마가 공중으로 날아 어느 묘소에 내려서 쉬어가라 하시기에 꿈을 깨어보니 불현 듯 심신이 발로되어 집 주인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더니 이곳에 진묵대사 어머니의 묘소가 있다하였다.

 

 부인이 영험의 놀라움에 기의하여 묘소에 정성껏 사초를 모시는 십여성상을 거쳐 시묘를 하는동안 지방유지 및 인근의 불자 신도들이 진묵대사의 약력과 이순덕화 부인의 공덕 비문을 세우고 묘 아래 재각을 건립하고 삼존불을 위시하여 진묵대사 모자 분의 영정을 봉양하고 기사년(己巳年 서기1989년) 9월에 새로이 중창하게 되었다. 극락보전이나 산신각, 종각 등 대다수의 전각이 2003년에 준공하였다.

 

 

고시례전(高氏禮殿). 진묵대사 어머니를 위해 지은 독특한 전각이다. 대사의 어머니 관향 제주고씨 에서 유래된 전각이라는설과 우리전통의 '고시래'에 어원을 두는 두가지 설이 있다.

 

고시래의 유래..불교문화

야외에 나가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조금 떼어 주변에 뿌리면서 ‘고수레’라고 하는 전통풍속이 있다. 고시래, 고스레, 혹은 고씨네라고도 하는데 부르는 이름은 각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도 신들을 위로하고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의미는 동일하다. 고수레란 말이 여기에만 쓰인 것은 아니다. 쌀로 떡을 찔 때 골고루 잘 섞이도록 물을 뿌리는 것도 고수레라고 하였고, 갈아엎은 논흙이 물에 잘 풀어지도록 하는 것도 고수레라 하였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왕세자의 가례에서도 세자빈이 올린 술을 왕세자가 받을 때 고수레를 하였으며 조선 후기 문신 백호 윤휴의 <백호전서>에 실린 ‘내칙(內則)’의 독서기(讀書記)에서도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올리는 예법에 술과 안주를 고수레한다고 적고 있어 오래전부터 내려온 예법의 하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고수레의 유래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이설이 존재한다. 서정범 교수는 무당이 병자를 치유하는 병굿에 쓰는 참나무가짓대를 ‘고수릿대’라 부르는데서 고수레가 유래했다하여 건강과 복을 주는 신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고, 우리의 전통 가면(탈) 중 ‘고시래탈’이 있는데 이는 단군조선시대에 불 사용법과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준 ‘고시’씨를 형상화한 것인데 이 고시 씨를 기리기 위한 풍속으로 고수레가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나 그 진위를 알기가 어렵다.

 

이외에도 고수레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설이 크게 3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옛날 어느 마을에 자손이 없는 부유한 고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즐겨 돕다가 죽자 사람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고수레를 하기 시작했다는 설과, 두 번째는 경기도 양평지역에서 채록된 설화로 옛날 고씨 성을 가진 처녀가 시냇물에서 떠내려 온 복숭아를 먹고 아이를 잉태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을 복숭아의 후예라 하여 도손(桃孫)이라 지었다고 한다. 이 아이가 성장하여 풍수지리로 큰 도를 이루었고 명당자리라 하여 자신의 어머니를 매장하지 않고 들에 묻었는데 이 무덤을 돌 본 이가 풍년이 들자 이를 사람들이 따라 한데서 유래했다는 설,

 

세 번째로는 두 번째 설화와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이야기의 주인공이 신이한 행적으로 유명한 진묵대사인 점과 이야기의 무대가 김제의 만경평야라고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점이 다른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이 이야기와 관련해 김제 만경평야에 있는 ‘성모암(聖母庵)’에는 진묵대사의 어머니 묘소가 있음은 물론 진묵대사의 어머니를 기리는 ‘고시래전’도 있다 하니 흥미롭기만 하다.

고수레의 기원이 어찌되었든 다른 이를 더불어 생각하는 마음,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고 삼가는 마음을 담긴 고수레의 전통은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아닐 수 없으며, 불교의 자비정신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풍속이라 할 수 있겠다.

 

 

진묵대사-석불좌상-어머니

 


진묵대사 어머니


진묵대사



진묵대사(震默大師)는 1562(명종 17년)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일옥이고 호는 진묵이다. 대사에 관한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는 초의스님의  <진묵조사 유적고(震默祖師 遺蹟攷)>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태어날 때 불거촌의 초목이 3년간 시들었으므로 사람들은 ‘세상에 드문 인재가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또 어려서부터 파 ․ 마늘 등의 신 음식과 비린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천성이 슬기롭고 자비심이 있어 주위에서는 ‘불거촌에서 부처님이 나셨다.’고들 했다. 7세 때 봉서사로 출가했는데, 불경을 공부하면서 스승도 없이 경전의 내용을 홀로 터득했다. 언젠가 이 절의 주지가 스님에게 신장단의 신중들에게 향불을 사르는 일을 맡긴 일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지 스님의 꿈에 신중들이 나타나, “우리는 부처님을 호위하는 신중들인데 도리어 부처님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향을 사르게 하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했다. 이 일이 있은 뒤 비로소 대중들이 비록 어리지만 진묵스님의 비범함을 깨닫고는 ‘부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일생을 통해 숱한 신이한 일을 남겼는데. 『진묵조사유적고』에는 스님의 이적 18가지가 기록되어 있다. 이같은 이적은 단순히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신술을 부리려는 것이 아니라 불도를 깨우치지 못한 대중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방편이었음은 물론이다.

 

한편 스님은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주의 일출암에서 지낼 때 어머니 조의씨를 근처 왜막촌으로 모셔왔는데. 여른에 모기 댸문에 어머니가 고생하자 스님은 산령들에게 부탁해서 그곳의 모기를 전부 다른 곳으로 쫓아버리도록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아직도 모기가 거의 없다고 전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만경현 북쪽의 유앙산에서 장사지냈는데, 묘를 돌보면 보답이 나타난다고 전해져 아직도 그 묘역은 늘 깨끗하고 행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스님은 봉서사에 머물 때 ‘전국승려대조사’로 추앙받았는데, 그 밖에도 변산의 월명암, 태고사, 완주의 대원사 · 원등암 등에서 스님의 행적이 전해져 내려온다. 봉서사에서는 스님의 영정을 모신 영각이 있고 『어록』판각이 있으며, 부도와 비가 세워졌다. 대원사에서도 스님의 영정이 전한다. 또한 김제시 조앙사는 바로 진묵 대사를 모시는 절이며, 성모암은 진묵 대사의 어머니 조의씨를 모신 곳이다.

 

스님이 살았던 시대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참혹한 전쟁으로 인해 피폐되고 암울했던 때였다. 비록 직접 구국의 대열의 나선 것은 아니었으나 대중과 관계된 수많은 이적과 전설을 남긴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스님은 대중과 아픔을 함께하며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역대 고승들 가운데는 스님의 행장에 나타난 의미를 찾아 수행의 지표로 삼은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고시례전에 봉안된 석불좌상으로 조선후기에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나발에 육계가 보이고 신체에 비해 상호가 크다. 통견에 법의 항마촉지 수임이며 개금이 되어 있다.

 

 

 

 대사의 지극한 효심이 어린 성모암 순례후 돌아나오는 길에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밥 굶지 말고 운전조심하라며 오히려 자식을 더 챙기신다. 모두의 어머니처럼...[20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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