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김제시

김제...금산사 혜덕왕사비.소요당대사비.북강삼층석탑

임병기(선과) 2012. 4. 1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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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전

 

금산사에서 심원암으로 가는 동쪽 길을 등산객들의 눈총을 애써 외면하며 산길을 달렸다. 부도전이 보이는 3거리에 차량출입을 금지하는 차단기는 공원관리사무소의 이야기대로 개방되어 있어 운 좋게도 부도전과 심원암까지 차량으로 이동하였다.부도전은 고려시대 봉천원 구역 북쪽으로 나지막한 돌담장 안에 혜덕왕사비, 소요당대사 비와  12기 부도가 모셔저 있다.

 

혜덕왕사진응탑비

 

고려 예종 6년(1111년)에 세운 금산사 중창주인 혜덕왕사 탑비로 심원암 가는 방향의 옛 봉천원 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혜덕왕사는 1095년에 금산사의 봉천원에서 입적하였는데, 국왕이 혜덕왕사라는 시호를 내렸고, 탑호를 진응이라 하여 탑비를 세웠다. 현재 탑비는 귀부와 비신만이 남아 있고 비의 머리부분은 결실되었다. 귀부는 신체에 비해 머리가 작은 편이나 발과 비늘의 표현이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리석의 비문은 판독하기 어려운데, 다행히 『해동금석원』 등에 그 내용이 전하고 있다. 비문의 글씨는 약 2cm의 크기의구양순의 해서체로 활달하고 쾌적한 멋을 지녔다. 비의 앞면에는 43행 77자씩 스님의 출생과 교화활동, 입적사항 등을 적었으며 그 둘레는 당초문으로 장엄했다. 서자(書者)와 찬자(纂者)의 이름은 판독할 수 없고 각자(刻者)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나 『해동금석원』에 의하면 이오가 짓고 정윤(鄭允)이 썼으며 비음(碑陰)은 채추탄(菜推誕)이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혜덕왕사(慧德王師, 1038~1095). 고려시대의 고승으로 금산사의 2대 중창주이다. 1038년(정종 4) 7월 3일 개성 남쪽 불령리에서 중서령 이자연의 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민이고 자는 범위, 법명은 소현이다. 11세 때 출가하여 진표율사의 법상종을 계승한 해린 국사의 제자가 되어 『금광명경』과 『유식론』 등을 배우면서 법상종을 익혀나갔다. 12세 때 부흥사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1061년(문종 15년) 왕륜사에서 열린 오교대선장에서 대덕의 칭호를 받았으며, 1069년에 중대사, 1071년에 삼중대사가 되었다.

 

1079년 금산사의 주지로 부임하면서 진표율사의 중건 이래 가장 큰 규모로 금산사를 중창하였다. 당시의 자세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가람의 남쪽에 광교원을 설립하여 법화현찬, 유식술기 등을 비롯한 장소 32부 353권을 간행하기도 하였다.이후 1083년(순종 1)에 개국사와 자운사에서 열린 승가고시 시험에서 화주를 맡았으며, 그 해에 승통에 임명되어 잠시 현화사에서 머물기도 하였다. 이후 다시 금산사에 돌아와 주석하다 1096년(숙종 1) 12월 18일 금산사의 봉천원에서 입적하니, 세랍 59세, 법랍 48세였다

 

소요당대사혜감비 消遙堂大師慧鑑碑.

 

1651년에 전북 김제 금산사(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건립된 소요당대사혜감비 消遙堂大師慧鑑碑 비다.이경석(1595~1671년)이 비문을 찬하였고 조진석(1610~1654년)이 글씨와 전각을 담당하였다. 소요당대사의 법명는 담양에서 태어났으며은 태능(太能)으로 속성은 오씨로서 13세때 백양사로 출가하여 부휴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뒤에는 서산대사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서산대사의 법맥을 이은 대표적인 제자로 자리하였다. 병자호란시에 승병으로 활약했으며 1646년 88세로 입적하였다. 사리를 수습하여 철원 심원사와 모악산 금산사에 모셨다.

 

대사는 선과 교에 대해 일원이류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인간의 자성이란 본래 청정하고 자재한 것으로서 현실속에서 모든 사물에 작용하면서도 그 자체가 초월적이라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태능이 열반한 후 효종은 혜감선사(慧鑑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저서로는 ≪소요당집≫ 1권이 있다.

 

소요대사는 임란과 정유재란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도가 있는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를 중창한 스님으로 인지하면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당호가 확인되는 부도의 주인공을 열거하면 소요당대사, 용봉대선사, 남악당, 백곡당, 해운당, 서봉당, 벽허당, 인봉당 등이며, 1984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의 부도탑이 건립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명문당 부도가 세워졌다.

 

 

심원암(深遠庵). 금산사에서 동북쪽으로 약 1.5km 지점의 부도전 위쪽에 자리하며 차량 접근이 가능하다. 창건시기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1635년(인조 13)에 수문대사가 금산사의 가람을 중창할 당시에도 이미 존재해 있었다고 한다. 1998년 복원되었다.

 

대부분 등산객이 하산한 시간이어서 한적한 산길이다.

 

 

석축과 대나무는 옛 취령암터?

 

 

보물 제29호 금산사 심원암 북강삼층석탑. 장대석으로 구축된 지대석 위에 2기단의 3층탑이다. 하기단 면석과 갑석의 넓이가 비슷하며 면석에는 양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갑석은 상부에는 경사가 지며, 1단의 기단 받침이 있다. 상기단 면석은 4매 판석, 2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있는 판석을 세우고 다른 2면에는 탱주만 있는 판석을 끼웠다. 옥개석에 비해 좁은 갑석은 2매 판석의 조합이며 부연을 새겼다.

 




  탑신은 옥신과 옥개석이 각각 한 장의 돌로 되어 있으나 초층 옥신만은 4매석으로 구성되어 2매는 우주가 있는 면석이고, 다른 2면에는 면석만을 끼웠다. 2층 이상의 옥신에는 우주만이 표현되어 있다. 받침은 각층 4단씩이나 너비가 좁아서 추녀 밑에 넓은 여유를 남기고 있다. 낙수면은 경사가 급하고 전각의 반전은 추녀 밑을 따라 평행한데, 끝부분에서 반전을 보인다.

 

 

상륜에는 노반만 남았고 다른 부재는 망실되었다. 몸돌의 체감률이 적어 안정감이 부족하며, 4.5층이 결실된 5층탑 느낌마져 든다. 석재 결구도 규칙성 없이 이루어지고 각부의 새김 또한 섬약한 편이다. 깊은 산에 위치하여 훼손이 적고 부재가 거의 온전히 남아 있다. 신라시대 전형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고려시대에 조성한 탑으로 전해온다.

 

 

2012.03.11

 

*전통사찰관광정보. 문화재청.한국금석문종합시스템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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