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전주시

전주...남고산성.남고사 목조삼존불

임병기(선과) 2012. 4. 10.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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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바람이 세차다. 옷깃을 여미고 방한모를 착용해도 체감온도는 떨어진다. 어제가 평년 날씨보다 따뜻한 탓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주차장에 주차후 제법 긴 급경사 진입로를 오르면 먼저 전주남고산성 석벽이 산능선을 따라 펼쳐져 있다. 답사 목적이 산성내의 남고사 목조삼존불이어서 스치고 지났지만 산성은 한나절 등반코스로도 제격일 것 같다.

 

 

전주 남쪽에 있는 고덕산과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둘러 쌓은 산성이다. 남동쪽으로는 남원·고창으로 통하는 교통상의 중요한 곳을 지키고, 북쪽으로는 전주를 내려다 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이곳에 고덕산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조선 순조 13년(1813)에 성을 고쳐 쌓고 남고산성이라 했다. 이 성은 유래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이 보인다.

순조 13년에 보수공사가 있을 때 성 안에는 4군데의 연못과 25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민가 100여 채가 있었다고 한다. 성문은 동·서에 있었으며 각기 3칸, 6칸 규모의 누각형 문이 있었다. 서쪽에 비밀문이 하나 있었으며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 포루가 설치되어 있고, 관청, 창고, 화약고, 무기고를 비롯한 각종 건물이 즐비하게 있었다. 지휘소인 장대는 남·북에 각각 설치되었으며, ‘남고사’란 절이 있다. 현재 성의 둘레는 약 5.3㎞이다...문화재청

 

 

전주 남고산성 서문지.서문은 석축으로 된 통로위에 문루를 설치하였는데 "남고진 사례"에 의하면 홍예문으로 6칸이었다고 전한다.

 

남고진 사적비. 남고산성의 수축과 남고진 설치의 전말을 기록한 비석으로 남고산성 서문지에 있다. 헌종12년(1846)에 세워진 비로 최영일 찬,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비문에는 남고산성을 수축하고 남고진을 설치한 전말이 기록되어 있다. 먼저 전주 부성의 남쪽에 견훤 고성터인 남고산이 있는데 여기에서 부터 만막관(만마관)까지의 첩첩이 산맥이 이어져 천험의 요새를 이루어 임진왜란 때 이정란이 신출귀몰한 전략을 구사하여 전주부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하늘이 만들어준 험준함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영조 10년(1734) 갑인년 관찰사 조현명이 완산부성을 증축하고 나서 이곳에 성을 다시 쌓을 것을 꾀하였다가 임기가 차 그 뚯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순조 11년(1811) 에 이르러 관찰사 이상황이 부성내의 장보와 삼영 장군과 부성의 유지들과 더불어 상의하여 성 쌓기를 시작하였다가 이 또한 도중에 전임하게 되자 그 후임으로 관찰사 박윤수에 의하여 비로소 남고진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내용을 영원히 전하기 위하여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다...출처/전주 바로알기

 

남고사 일주문 직전 우측 산위 50m 지점에 "만경대 각자" 안내문이 있었지만 남고사 답사후 내려오면서 들릴려고 지나쳤다가 깜빡하고 내려와 버렸다.이런 사례가 종종 발생하여  답사시에 불문율의 하나가 답사 동선과 차이가 나더라도 먼저 보이는 문화재를 우선적으로 들리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는데 또다시시 우를 범하고 말았다.

 

만경대 각자. 이성계가 운봉전투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가던 중 조상의 고향인 전주 오목대에서 종친들에게 잔치를 베풀면서, 한고조의 대풍가를 불러 개국의 야망을 드러내자, 종사관이었던 정몽주가 노여움을 참지 못해  만경대로 달려와 고려왕조의 운명을 한탄하며 지은시가 각자되어 있다.

 

千仞崗頭石逕橫 천길 바위머리 돌길로 돌고 돌아

登臨使我不勝情 홀로 다다르니 스미는 감정 이길 길 없네

靑山隱約夫餘國 청산에 은밀히 서약한 부여국은

黃葉檳紛百濟城 누른 잎만 어지러이 백제성에 날리누나

九月高風愁客子 구월의 가을바람에 나그네의 시름 깊고

百年豪氣誤書生 백년기상 호탕함이 서생을 그르쳤네

天涯日沒浮雲合 하늘가 해는 지고 뜬 구름 모이는데

矯首無由望玉京 하염없이 고개들어 송도만 바라보네

 

 

천왕문.산성안 산지사찰이건만 호남지방의 평지사찰 느낌의 천왕문이 반긴다. 정면 벽에는 금강역사상 벽화를 그렸고 천왕문 내부에도 사천왕 벽화가 있다. "절의 창건은 686년(문무왕 8)에 보덕대사의 제자인 명덕스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전한다. 이 때 이름은 남고연국사로서, 나중에 ‘연국’이라는 말이 없어지고 남고사가 되었다. ‘연국’은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으로서 산성 안에 위치한 사찰에 그렇게 붙여쓰는 경우가 있다.

 

그 뒤 남고사가 다시 남고사로 바뀌었는데, 문헌상으로는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에 처음 그렇게 나온다. 이렇게 절이름 중 가운데 글자가 ‘高’에서 ‘固’로 바뀐 정확한 이유와 시기는 잘 알 수 없지만,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쌓은 산성을 견훤산성이라 하는데 절이 자리한 고덕산의 남고산성이 바로 그 견훤산성이라고 하며, 견훤이 전주의 동서남북 사방을 진압하기 위해서 사고사찰을 지어 그 이름을 동고사 ․ 서고사 ․ 남고사 ․ 북고사로 했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의 연혁은 잘 알 수 없는데, 1881년(고종 18)에 한 차례 중건했다고 전한다."

 

 

대웅전 4분합 어칸의 꽃창살

 

 

협칸은 좌우 대칭의 2 분합 꽃창살 이다.

 

 

1978년에 세운 대웅전 불단에 모셔진 목조삼계불이다. 주존불은 석가불좌상이고, 좌우협시불은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봉안하고 있다.

 

한국사찰문화재 자료에는 조선시대에 조성한 목조삼존불로 설명되어 있지만, 한국전통사찰관광정보에는 1996년 봉안된 삼존불로 기록되어 있다. 절집 부처를 찾아가는 중생이 간사한 마음을 버려야겠지만 혼란스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관에서 주도하여 조사하고 검증을 거쳐 발간한 도서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공부하고 답사해야하겠는가? 매니아들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먼길을 나서는 일인데 자료의 신빙성과 통일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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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시 남고산성에 올라 전주시내를 굽어 볼 수 있겠는가? 저녁무렵 남고사의 종치는 풍경을 전주 8경의 하나로 꼽은 선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진면목을 느껴보려면, 해질녘에 다시 발걸음을 해야겠다. 그때는 남고산성 한 바퀴 순례하리라 다짐해본다. 

20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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