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완주군

완주...모악산 대원사

임병기(선과) 2012. 3. 22.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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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오르는 등산객, 하산객 철이른 상춘객으로 좁은 산길 소로는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소란하다. 술에 취한 하산객들의 지각없는 행동으로 절집도 시장통이 되어버려 빨리 벗어나고 쉽다는 생각 뿐이다. 절집 참배시에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추면 좋으련만 그런 기대는 요원한 희망사항일가?

 

석탑과 삼존불 용각대사의 부도를 만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올라왔더니 땀이 비오듯 흘러 법당안에서 한참을 좌정했지만 오늘 따라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고 피로가 엄습한다. 과유불급이라 했는데 동선을 조정해야한다는 생각도 마음뿐이고 잠시후 부도전을 향해 또다시 뛰어가는 내모습에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다.

 

창건과 중건에 관한 글을 한국사찰관광정보에서 가져왔다. 대원사는 삼국통일 직전인 660년(백제 의자왕 20)에 대원ㆍ일승ㆍ심정 등의 고승이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이들은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열반종의 개산조 보덕의 11제자들로서, 스승으로부터 열반종의 교리를 익힌 뒤 스승이 있는 고대산, 혹은 고달산에 절을 창건한 것이라 한다. 고대산은 지금의 모악산 줄기인 듯하며, 당시의 절 이름은 대원사(大原寺)였다. 이 같은 내용은 『삼국유사』 권 제3 「보장봉로 보덕이암」조에 기록된 것이다.


고려시대인 1130년(인종 8)에 원명국사 징엄이 중창했는데, 이때를 절의 창건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1374년(공민왕 23)에 나옹 혜근이 중창하였으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1415년(태종 15)에 처음 중창된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1948년의 대웅전 복원불사 당시에 지붕의 기와 가운데 ‘영락을미년(永樂乙未年)’이라 새겨진 막새기와가 있었다는 기록에 따른 것이다. 


그 뒤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대부분 건물이 불타 없어졌으나, 1606년(선조 39)에 진묵 일옥 스님이 다시 중창하였다. 진묵스님은 조선시대 중기의 유명한 고승으로서, 대원사는 이때 대규모로 중창되면서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였다.


1733년(영조 9) 동명 천조 스님이 중창하였고, 1886년(고종 23)에는 건봉사에 머물고 있던 금곡인오 스님과 함수산 스님이 이곳으로와 중창불사를 이루었다. 스님들은 대웅전을 중건하고 명부전을 고쳐짓고 칠성각을 새로 지었으며, 산내암자인 내원암에 있던 염불당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조선시대 말에는 증산교(甑山敎)를 개창한 강일순(姜一淳)이 이곳에 머무르며 도를 깨우쳤다고 한다.

 

 

대웅전은 근자에 중건한 정측면 3칸의 주심포계 겹처마 필작지붕이다. 정면은 어칸에 4분합, 협칸에 3칸 민빗창살를 달았으며 덤벙주초에 민흘림기둥이다. 벽에는 금강역사상과 방위 수호개념의 12지신상이 그려져 있다. 불단에는 석가여래삼세불과 삼세불 탱화를 봉안했다.

 

 

대원사 대웅전에는 전북유형문화재 215호로 지정된 목조석가여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중앙 본존불을 중심으로 서방 아미타여래 동방 약사여래로 목조삼계불이다.  모두 조선 후기 불상 특징 처럼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이며 소발에 중간 계주,정상주를 표현하였으며 원만한 상호에 삼도가 보이고  법의는 통견이다.

 

지정문화재지만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자료 준비중이라는 글만 보이고, 완주군청 홈페이지에는 자료도 없지만 설상가상

제목도 목조삼세불좌상으로 등재된 오류를 범하고 있어 안타깝다.

 

 

대웅전 뒤의 오층석탑. 이중기단, 상하기단 갑석의 받침은 두텁다. 상이단 면석은 4매 판석으로 탱주와 양우주를 모각하였다.

3층 옥개석은 후대에 다른 돌로 끼워 넣었다. 훼손이 심한 옥개석 물매는 얕고 층급받침은 3단이며 문비를 갖춘 초층에 비해 상층 탑신 비례가 급격히 약화되었고 상륜부는 결실되었다. 상승감 보다는 둔중한 느낌이 드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전한다.

 

 

현재 탑의 위치로 판단컨데 본래 금당위치가 탑 뒤쪽이었거나, 탑을 세운 목적이 산천 비보를 위한 비보탑임을 추측 할 수 있지만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저러나 탐승객이든 산행인이건 제발 탑에 돌을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성으로 소원을 기원하는 일 같지만 덕지덕지 탑을 넝마로 만드는 문화재 훼손 즉 범법행위임을 자각해야 한다.

 

 

여기서 보면 비보탑 느낌이 강하게 든다

 

 

대웅전 뒷편 부도전 아래부도전에 용각대사 부도가 있고, 윗부전은 진묵대사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아래 부도전

 

 

용각대사부도. 용각대사의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목연을 새긴 지대석, 원통형 탑신, 상륜부로 구성된 부도다. 상하에 연꽃을 새긴 탑신에는 구름무늬를 그리고, 두마리 용이 여의주를 사이에 두고 쟁탈전이 한 창이다. 상륜부는 별석이다.고려시대 부도로 전한다.

윗부도전

 

좌측부도가 진묵대사 부도로 전해온다. 대사의 부도는 대원사 지근의 봉서사에도 남아 있어 분사리 부도일 가능성도 있다.

진묵대사는 조선중기의 스님으로 많은 이적을 남긴 기승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스님의 행적은 그가 태어나고 자라서 출가한 김제와 완주지역에 무수한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진묵대사가 대원사에 머물 무렵 남긴 선시이다. 

 

하늘은 이불이요 땅은 자리니 산은 베개로다
달은 촛불이요 구름은 병풍이니 바다를 술통으로 삼는도다
거나하게 취해 일어나 춤추려하니 곤륜산에 소맷자락이 걸리누나

 

모악산...고은(高銀)
  
  내 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 외다

  저 혼자 떨쳐 높지 않고
  험하지 않고
  먼데 사람들마저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내 자식으로 품에 안은 어머니외다.

  여기 고스락 정상에 올라
  거룩한 숨 내쉬며
  저 아래 바람진 골마다
  온갖 풀과 나무 어진 짐승들 한 핏줄이외다.
  세세생생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도 한 핏줄이외다

  이다지도 이다지도
  내 고장 모악산은 천년의 사랑이외다.
  오 내 마음 여기 두어

 

201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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