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완주군

완주...보광사지 석불.연화대좌

임병기(선과) 2012. 3. 21. 17:33
728x90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상하보마을에 위치한다. 상하보는 상보와 하보를 합친 명칭이며  ‘보’는 예전에 보광사(普光寺)가 있어 상보광 하보광이라 한 명칭을 분리명으로 다시 약한 이름이라고 한다. 버스종점에 기사분에게 물어도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며 마을에 설치된 안내지도에도 보광사지 표기가 없다.

 

경로당 노인들에게 탐문하여 마을 끝자락에 자리한 절터를 찾을 수 있었다. 주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절터를 관리하던 분이 돌아간 후 현재는 관리부재로 동제 등의 민속제의도 치뤄지지 않으며, 다만 일부 주민들이 개별적으로 치성을 드리는 기도처로 남아 있다고 한다.

 

보광사는 석등 부재로 미루어 고려초기 이전에 창건된 사찰로 추측된다. 한국폐사지총람에 의하면 [稼亭集]에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도 있으며,신동국여지승람 전주부와 불우고에는 고덕산에 위치한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여지도서에 폐사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후기에 향화가 끊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지에는 절터에서 수습된 돌로 성황당 처럼 조산탑을 조성하여 중앙 감실에 불상을 안치하고 위에는 조산탑 전면 석등대좌의 상대좌로 보이는 연화대좌를 뒤집어 놓고 위에 석주를 세웠다. 석주는 얼핏보아 작은 광배처럼 보인다.

 

 

석등 하대석 연화대좌로 미루어 가람의 규모를 추측할 수 있다.

 

 

보광사 폐사 이후 민간에서 수습한 부재는 민초들의 소박한 기원의 대상이 되었다. 그 숱한 발원과 염원의 치성이 석등대좌에 성혈로 남아 있다. 미신이라고 치부하는 부류도 있지만 추운 겨울 새벽 처음으로 기른 용정(우물물)을 후원 장독대에 올려 놓고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기도했던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의 정성과 믿음처럼 이런 일련의 의식은  종교를 초월한 감동적인 우리만의 고유의 풍습인 것이다.

 

 

초기보광사 석불 보다는 조선 이후 민불  느낌도 든다.

 

 

폐사 이후 민간에서 조성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불교도래이전 민간신앙이 불교 도래로 인해 믿음의 중심축이 절집으로 옮겨졌다가 조선조 이후 폐사된 이후에는 그 상처들을 수습하여 다시 민속으로 믿음이 회귀되었다. 그런 민속 신앙이 우리 민족의 포용성이며 화해하고 용서하는 민족정서인 것이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2012.03.11


728x90
728x90

'전라북도 > 완주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주...수만리 마애불좌상  (0) 2014.04.18
완주...모악산 대원사  (0) 2012.03.22
완주...무등리 입석  (0) 2012.03.20
완주...대둔산 안심사  (0) 2012.03.19
[스크랩] 완주...위봉사  (0) 2008.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