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무주군

무주...향로산 북고사

임병기(선과) 2011. 8. 1. 06:20
728x90
728x90

 

 

 

소나기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무시하고 길을 달려 북고사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의 청량한 기운과 아담한 분위기, 더불어 옅은 안개에 감싸인 절집이 더없이 고즈넉하다. 자초 무학대사가 무주의 북쪽의 지세가 허하다 하여 북쪽이 견고하라는 뜻으로 북고사(北固寺)라고 명명한 이른바 비보사찰이다. 향로산이라는 의미도 산세보다는 주위에 비로봉 등의 주산 때문에 유래된 산이름으로 보이지만 자료를 찾지 못했다. 

 

"무주읍 향로산 동남쪽 기슭에 자리한 북고사(北固寺)는 고려 말경에 경월사(慶月寺)로 설립되었으며, 창건연대와 설립자는 미상이다. 조선 초기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북고사로 개칭하였는데, 무학스님 이후 조선 전기까지의 내력은 알 수 없으나, 18세기에 발행된 『여지도서』ㆍ『가람고』ㆍ『범우고』 등에는 ‘부(俯)로부터 북쪽으로 5리 거리에 있다’고 하여 향로산의 사찰 중 북고사가 등장하고 있어 조선시대에도 법등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898년 조병유(趙秉瑜)가 간행한 『적성지(赤誠誌)』 사찰조(寺刹條)에는 ‘북고사는 향로산에 있으며, 무주부로부터 북쪽으로 5리 떨어진 곳에 있다. 옛 이름은 경월사(慶月寺)로 약 700년 된 고찰이다’라고 하여 고려조에 창건된 절임을 시사하고 있다."

 

 

요사에 걸린 북고사 현판. 거암 김봉관의 작품으로 고위 경찰 출신인 거암은  뒷편에 언급할 안국사, 선운사 도솔암,실상사 칠성각,백련사 등 호남지역 사찰에 많은 현판을 남겨 호남지방에서 주로 활동한 서예가로 판단된다.

 

 

근자에 시멘트로 보수한 기단위에 초층탑신을 놓고 남아 있는 옥개석 2개와 노반 복발을 쌓았다. 초층 탑신도 본디 부재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남아 있는 부재로 미루어 상의 탑신과 옥개석은 하나의 돌로 구성되었으며 층급받침은 3단이다. 전반적으로 마모나 심하지만 고려말기 석탑으로 생각된다.

 

 

뒤집혀진 노반

 

 

삼층탑 역시 비보탑으로 1392년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위해 새 도읍지를 찾던 무학대사는 무주를 방문하여 지세를 살핀 뒤 복지라고 감탄하였다. 그러나 ‘남쪽에는 명산 적상산이 있어 튼튼하지만 북쪽의 향로산은 산세가 너무 허약하다’고 하여 고을 현감에게 절에다 탑을 세웠다고 전해온다.

 

 

북고사의 극락전은 일제강점기에 인법당으로 사용되던 건물로 근자에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계  팔작건물로이며 외벽에는 심우도를 그렸다. 극락전 편액은 1976년 석우양(昔又暘)이 쓴 글씨이며, 주련은 탄허(吞虛) 스님의 글씨라고 한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83호 북고사 극락전의 주불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복장기에 의하면 금산군에 속해있던 덕유산 운수암에서 조성된 목불이다. 효종 8년(1657) 조성불사한 북고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주상전하천수만세, 국태민안 법륜상전’을 발원하며, 지선법사의 증명하에 화원승 승일·처영·도잠 등 세 비구 스님에 의해 조성되으며, 당시 복장물과 함께 부처님 몸 속에 넣어둔 ‘극락교주 미타존상조성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네모지고 평평한 얼굴, 당당한 체구에 움츠린 어깨, 경직된 양감의 표현 등에서 조선후기 17세기 불상양식을 느낄 수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보이고 법의는 통견이며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천의자락 등이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얼굴이 신체에 비해 크고, 무릎 폭에 비해 어깨 폭이 좁은 단아한 모습에 전반적으로 안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수인은 하품중생인이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87호. 극락전 신중탱.은 1831년 전계인과 그의 아내 김씨가 아들 얻기를 기원하며 발원한 불화로, 화원 장순ㆍ윤관 외 2인이 조성한 불화이다. 장방형 화폭에 2단구도이고, 상단에는 보살형의 범천과 제석천 및 여러 권속들이 표현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검은 칼을 든 위태천이 서 있다. 그 주위에는 용왕과 사천왕 등 여러 수호신장들이 합장하거나, 칼ㆍ금강저 등 다양한 지물을 들고 서 있다. 그림의 구도와 채색이 안정되고, 작은 화면에 간단하게 묘사한 인물 표현은 단조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도를 보여준다.

 

 

무분별한 불사를 탐탁치않게 생각하지만 북고사의 불상은 마음이 따뜻해 온다.아마 노스님 때문에 마음이 열린 탓일 것이다.

 

 

극락전 문이 닫혀진 줄도 모르고 이른 시간이라 먼저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요사에 들렸더니 노스님이 열쇠를 건내시며 보고 가란다. 그러면서 만류에도 불구하고 편치 않은 노구로 한사코 뒤를 따라 오신다. 내가 도둑처럼 보이는 인상은 아닐텐데 이런저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법당안을 참배하는 동안에 극락전을 몇 바퀴 도시더니 나에게 열쇠를 준 것도 잊은듯이 발걸음을 돌려 급하게 불러 돌려드렸더니 잘 가라며 손을 흔든다. 차마 정면을 찍지 못하고 뒷모습을 잡았다. 사람이 많이 그리운 듯한 노비구니스님 부디 건강하시길 빕니다.

 

2011.07.25

***전통사찰관광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