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합천군

합천...옥전서원

임병기(선과) 2011. 7. 7.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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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책면 성산리 옥전고분 맞은편에 위치한 서원으로 합천 정씨 시조 정배걸 선생을 배향하고 있다. 서원은 전학후묘의 구조이며 외삼문 강당 내삼문 광덕사로 단을 두고 일자배치이다. 서원 옆에는 서원을 관리하는 분의 집이 있었으며, 또한 정배걸 선생의 신도비가 있었다. 신도비로 미루어 묘소가 지근에 있는 듯 했지만 보지 못했다. 서원은 1799년(정조 23)에 초계 지역의 유림이 세웠으며, 1861년과 1981년에 중수했다고 한다.

 

안내문 통일은 언제쯤이면 가능할까?

외삼문

 

정배걸은 고려 초기의 문신이며, 초계 정씨의 시조이다. 고려 현종 8년 (1017)에 지공거(知貢擧) 곽원(郭元)의 문하(門下)에서 수업하여 괴과(魁科)에 장원급제하였고, 문종 1년에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가 되었다.그는 일찍이 사숙(私塾)을 열어 후학을 가르쳤는데 이를 홍문공도(弘文公徒)라고 불렀다. 당시 고구려에는 관학(官學)인 국자감보다 사학(私學)이 발달 하였으며, 최충의 문헌공도를 비롯하여 전국 유명 사숙 열두곳을 가리켜 12문도라 하였는데 정배걸의 홍문공도도 이중 하나 였다. 홍문은 그의 시호이다.

 

 

강당. 문이 닫혀 까치발을 하여 담 너머로 살펴보았다. 앞면4칸, 옆면2칸 규모의 건물로, 가운데 2칸은 마루로 구성하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두었다. 맞배지붕이다. 양 옆 지붕 아래에는 바람을 막기 위한 풍판을 달았다. 서원배치의 전형인 동.서재가 없었다. 모르긴해도 제향을 우선으로하는 목적인 듯 했다.

 

 

내삼문

 

광덕사. 서원의 최고 윗쪽에 자리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퇴를 내었다. 두리기둥이며 맞배지붕으로 역시 풍판을 설치했다. 창호는 빗살문이며, 강학공간인 강당에는 단청이 없지만 제향공간인 광덕사에는 단청이 되어 위엄을 더한다.

 

 

 

 

신도비각. 숙종 36년(1710년) 진주목사 21세 우주공이 묘소 언덕넘어 남쪽 산기슭에 광유후 신도비를 현립하고 그 전말을 기록하였다.그후 세월이 흘러 훼손이 심하여 개수가 요망되던 바 23세 대종손 통제사 흥좌공이 개수하고저 석재를 갖추었으나 각수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의 손자인 25세 대종손 여직공이 통제사로 와서 조부의 유지를 이어받아 각현하니 때는 영조 41년(1765년)이었다.  22세 오옥 택 25세 종손 통제사 여직 현건. 20세 유사 희경금서 . 그후 광무 2년(1898년)28세 송리 봉시공이 창녕군수로 와서 여러 종인과 합력하여 재창건하고 현재 위치로 옮기고 비각을 세웠으며, 관동파 종손 란옥 창시공이 그 전말을 기록하였다.

 

 

정배걸 선생 신도비

 

 

귀부. 해학이 넘친 표현이다.

 

 

비각 호랑이 벽화  의미는 충분히 알 것 같은데

 

 

사슴의 상징성은 뭘까? 사슴은 영생.장수.신성스러움.우애 등을 함축하고 있다. 여러분의 판단은 어떤가?

 

2011.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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