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칠곡군

칠곡...선봉사 대각국사 의천비

임병기(선과) 2011. 5. 7.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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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군 북삼면 숭오리 작은 절집 대각사

 

 

대각국사 의천비. 고려 문종의 4남 대각국사 의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132년(인종 10)에 건립된 비석이다.대각국사 의천에 대해 백과사전을 살펴보자.

 

 1065년(문종 19) 왕사(王師) 난원(爛圓)이 의천의 머리를 깎아 승려가 되게 하였고, 그 뒤 영통사(靈通寺)에 있었으며, 13세에 우세(祐世)[1]의 호를 받고 승통(僧統)이 되었다. 1084년(선종 1) 송나라 정원(淨源) 법사의 초청을 받고 왕에게 송나라에 가서 구법(求法)할 것을 청했으나 왕이 말리므로 남루한 옷차림으로 몰래 제자 수개(壽介)만 데리고 1085년 송나라로 떠나자 왕은 크게 놀라 관리와 제자 낙진(樂眞)·혜선(慧宣)·도린(道隣) 등으로 수행하게 했다. 송나라 철종(哲宗)이 영접하여 계성사(啓聖寺)에 있게 하고, 화엄(華嚴) 법사 유성(有誠)으로 하여금 상종하게 하여, 현수(賢首)·천태 양교의 판교동이(判校同異)·유묘(幽妙)의 뜻을 문답하였다.

 

또 상국사(相國寺)의 원조선사와 흥국사 서천(西天)의 삼장(三藏) 천길상(天吉詳)을 찾아보고 주객원외랑(主客員外郞) 양걸(楊桀)을 대동하고 송나라 서울을 출발 금산(金山)의 불인(不印) 선사 요원(了元)에게 들리고, 항주(伉州)의 원공(源公) 법사를 찾아 혜인(慧因)에게 《화엄소초(華嚴疏鈔)》의 의심되던 것을 물었다. 그때 선종이 귀국을 청하자 자변(慈辨) 대사에게 천태종의 경론을 듣고, 천태산 지자(智者)대사의 부도(浮圖)에 예배, 발원문을 지어 천태종을 본국에 중흥할 것을 맹세했다. 또 영지(靈芝)의 대지(大智) 대사에게 계법을 받는 등 고승 50여 명을 만나 법요를 문답하였다.

 

1086년(선종 3) 왕과 왕후의 영접을 받고 환국하여 석전(釋典)과 경서 1천 권을 바쳤으며, 흥왕사에 있으면서 그곳에 교장도감(敎藏都監)을 두게 하고, 요나라·송나라·일본에서 경서를 구입하고, 고서를 수집하여 《속장경》 4천 7백 40여 권을 간행하였다. 1094년(선종 11) 흥원사(興圓寺)의 주지로 있었고, 그 후 해인사·흥왕사에 있다가 국청사(國淸寺)가 새로 세워지자 주지를 겸하고 처음으로 천태교를 강하였다. 숙종 때 주전론(鑄錢論)을 주장하여 사회경제 면에도 많이 공헌한 바 있고, 1098년(숙종 3) 왕자 징엄(澄儼)이 승려가 되자 그 스승이 되었다.

 

1101년(숙종 6) 국사(國師)로서 총지사(總持寺)에서 사망하였다. 오관산(五冠山) 영통사 동쪽에 장례하였으며, 김부식(金副軾)의 명문(銘文)으로 된 비가 세워지고, 또 남숭산(南嵩山) 선봉사(仙鳳寺)에도 임존(林存)의 명문으로 해동 천태 시조 대각국사비가 세워졌다.서호(西湖)의 승려 혜소(惠素)는 국사의 고제로서 후에 행록(行錄) 10권을 선집하였으며, 태백산인(太白山人) 융응(戎膺)은 국사의 적사(嫡嗣)로 법해(法海)의 용문(龍門)이라 호하였다.

 

 

비석의 형태는 개석 60㎝, 비좌 56㎝, 비신 234㎝로 전체높이는 3.5m이며 폭 120㎝, 두께 15㎝이다. 팔작지붕 형태의 비각 안에 장방형의 대석과 비신, 옥개석 형태의 비갓을 모두 갖추었다. 비좌는 장방형으로 측면에 앙련과 복연을 새겼고, 비갓에 전서체로 새겨진 제액 양 옆에는 봉황새 한 마리씩 날고 있으며, 비신 둘레는 폭 8㎝ 가량으로 당초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전체 37행에 각 행 71자이며,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였던 한림시독학사 임존이 짓고, 승려 린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장방형 비좌 측면 앙련(仰蓮)과 복연(伏蓮)

 

 

비갓 제액 양 옆 봉황새

 

 

대각국사가 천태종을 수립한 시조임을 밝히기 위해 세운 비석이며,  6·25전쟁 때 총에 맞아 부서진 자국을 제외하고는 천년  세월이 흘렀어도 비문과 문양이 뚜렷하게 남아 보존상태가 양호한데 비석의 재료가 백령도 부근에서 나는 바다 돌이기 때문이며 바다 돌은 육지 돌과는 달리 철분이 적어 갈라짐과 부서짐이 없다고 한다. 비는 땅에 묻혀 있다가 1922년경 발견하게 되었다.

 

 

선봉사는 저기 어디쯤이겠지?  비석이 서있는 곳에서 남서쪽 약 200m 떨어진 곳에 선봉사가 창건되고, 비는 지금 서 있는 곳에 세워졌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다고 한다.

201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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