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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인제군

인제...갑둔리 오층탑

by 임병기(선과) 2011.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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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 눈에 띄게 서있는 문화재이정표를 발견하고 산길을 오르니 여기도 눈이 녹지 않았다. 원대리 석탑을 만나러 가는 산길엔 발자국이 없어 외로움 보다는 무서움이 엄습했었는데 여기는 눈위에 수를 놓은 것처럼 선명한 여러 발자국이 찍혀 있어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듯 하다.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117호로 인제군 남면 갑둔리에서 김부리로 넘어가는 도로에서 남쪽으로 약 500m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산 지킴이처럼 멀리 석탑이 보인다. 언뜻 석탑이라가 보다는 이산길을 넘나드는 초동들의 친구,  방물장수들이 고단한 육신을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로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석탑보다 민초들이 세운 안내문이 먼저 반긴다. 주민들은 마의태자의 운명지로 받들고 구천에 떠도는 원혼을 위무하기 위해 동제의 신주로 모셨으며 태자의 이름에서 마을 이름을 가져오고 있다. 이 곳 뿐만 아니라 인제군에는 경순왕, 마의태자와 관련 있는 지명이 곳곳에 있다.

 

 김부(富)는 오히려 경순왕의 이름인 김부(傅)와 음이 같으며 마의 태자는 김일(鎰)이다.그런데 이지역에서는 마의태자를 김부(富)로 지칭하며  김부리가 폐망한 신라고토 회복을 위한 고려 항쟁의 중심, 최종 전적지이며 순결지로 전해오고 있다. 실제로 개성으로 향한 경순왕의 루트와도 거리가 있어 보이고, 121년을 살았다는 마의태자도 비현실적인 기록으로 생각되지만  그건 사학가의 몫이고 우리는 즐기면 되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탑으로 일명 김부탑이라고도 한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87년에 지역 주민과 갑둔리 향토사연구원 이태두 씨(당시 갑둔 초등학교 교사)에 의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중기단으로 하기단 지대석은 4매의 판석이었으나 파손되어 6매이다. 각각의 면석에는 안상이 모각되어 있고  갑석 상부에는 1단의 호형받침을 표현하였다. 상기단 면석에는 양우주가 모각되어 있고, 동쪽 면석에는 명문이 있으나 육안으로 판독하기 어렵다. 갑석의 상면에는 3단의 탑신받침을 각출하고 있다. 보륜으로 보이는 부재는 석탑 옆에 놓여 있다.

 

 

 1·2·3층의 탑신과 5층옥개석은 복원하였다. 옥개석은 모두 둔중한 느낌을 주고 있으나 전각의 반전이 크다. 옥개받침은 3단, 상면에는 1단의 탑신받침을 각출하고 있다. 3층과 4층옥개석은 4·5층 탑신과 한 개 부재로 되어 있다. 3층 지붕돌과 4층 몸돌로 미루어 1층 몸돌은 한개 부재로 놓고 상층은 옥개석과 윗층 몸돌을 한돌로 부재로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복원시 고려되지 않았다. 또한 탑신의 비례가 맞지 않아 고려 석탑의 뛰어난 상승미를 반감시키고 있다.

 

 

상층기단의 명문은 보살계제(불) 자구상주 김부수명장존가 오층석탑성영충공 양태평십육년병자팔월 일[菩薩戒弟(佛)子仇上主金富壽命長存家五層石塔成永充供養太平十六年丙子八月日]이라고 하며, 태평(太平)은 중국 연호로 태평16년(1036)에 탑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인제군청 홈페이지 지명유래에는 "태평16년은 1036년이 되므로 신라 패망 백주년이 되는 해인 동시에 마의태자 나이 121세로 사망하던 해와 공교롭게도 같아서 김부대왕과 마의태자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확실시 되고 있어서 마의 태자의 전설은 전설이 아닌 사실로 밝혀졌다."고 기록되었다. 달빛에 젖은 설화이든 햇빛에 노출된 정사이든  서라벌에서 금강산으로 향한 길위에 남겨진  마의태자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망국의 한, 민초들의 소박한 삶의 유산은  우리의 여정을 즐겁게 한다.

 

2011.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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