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2월의 하루가 서서히 지쳐갈 무렵 찾은 봉덕사는 지친 객의 마음을 누이고 싶은 분위기의 절집이다. 석조 보살과 복원된 석탑이 아니더라도 하루쯤 묵고 갔으면 세상 근심사 모두 잊을 것 같다. 봉덕사는 근세에 창건된 사찰이지만 주변 석조부재 등으로 미루어 오래전부터 사찰이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문화재청과, 대전 유성문화원 홈페이지 자료 외에도 여기를 봉소사로 표기하였고 관리자도 봉소사라고 언급하여 답사객을 헷갈리게 한다. 분명 봉덕사인데 자료의 통일이 아쉽다.
봉덕사 오층탑에 대한 자료는 없다. 다만 문화유적 총람 자료에 진잠초등학교에 오층탑이 남아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로 미루어 진잠초교에서 이건하여 복원한 듯 하다. 어떤가? 참 뿌듯하고 싱글벙글 웃음이 나지 않는가? 옛부재를 살려 복원하여도 이렇게 멋지게 조성할 수 있는 것이다.
기단갑석과 1.2.3.5층 옥개석, 1.2층 몸돌만 본디 부재이다. 기단부을 비롯 다른 석탑재는 복원하였다. 옥개석에는 3단의 층급 받침이 있으며 추녀의 반전이 현저하며 낙수면 경사는 심하다. 몸돌에는 양우주를 새겼다. 옥개석 층급 받침의 수,옥개석의 선,탑의 규모 등 고려 석탑의 양식으로 보이며 봉덕사 보살 입상과 더불어 성북동 산성 아래 한절골의 사지에서 옮겨온 탑으로 추정한다.
저리 이쁜 자태인데 이름 하나 붙여주면 어떨까?
한절골 사지 오층탑 또는 봉덕사 오층탑으로 해도 무난할텐데
그옛날 복원된 석탑과 나란히 성북동 한절골에 위치한 큰 절집의 주인이었을 보살이다. 고향을 잃고 석탑과 이산 가족으로 살아온 세월도 이제는 미소로 대신하고 있다. 얼굴을 보는 순간 비룡동 미스 코리아 장승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인지?
신체에 비하여 큰 머리에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의 양 옆에는 장신구를 매달았던 듯한 구멍이 있으며, 귀에는 귀걸이를 길게 내려 뜨리고 화려한 장엄구를 달았다. 목이 짧고 납작한 얼굴에 은행형의 눈에 가장자리를 선으로 그리고 있으며 천의는 왼쪽 어깨를 감싸 흘러내리고 있으며, 천의 아래쪽은 옷자락이 단순하면서도 거칠 게 새겨져 있고, 오른손은 곧게 아래로 내려 손바닥이 앞을 향하도록 하고, 왼손은 가슴께로 올리고 있는데 무엇인가를 잡고있는 듯 하나 마멸이 심하여 알 수 없다. 양 손목에는 팔찌를 끼고 있다.
석조보살상은 1935년 발굴되어 이곳으로 옮겼으며, 조각수법이 평면적이고 얼굴고 몸체 부분의 비례가 맞지 않으며 토속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고려시대 이후 충청지방에서 유행한 토속적인 보살상으로 전해온다. 신체와 발이 조각된 안상을 가진 대좌 색조가 매치가 되지 않아 의아스럽게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땅속에 묻혔던 대좌가 최근에 발견되었다는 자료로 인해 수긍이 되었다. 안상속의 문양이 가릉빙가인지 연꽃인지 설명된 자료는 찾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훗날 답사하는 님들의 숙제로 돌리고 싶다.
그냥 저 산길을 따라 젖어들고 싶었지만...... 2011.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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