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대전광역시

대전...송용억 가옥

임병기(선과) 2011. 2. 28.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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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랑채와 큰사랑채

 

송용억 가옥은 송준길의 손자 송병하가 분가하면서 거주하기 시작한 반가이다. 송병하는 1646년(인조 병술)에 태어나 우암  송시열의 문인이 되었으며 수원 부사, 의주 부윤을 거쳐 장락원 정에 이르렀다. 1697년(숙종 정축)에 졸 하니 사후에 이조판서로 증직 받았다. 이 집에는 현재 송병하의 후손 송용억씨가 살고 있다.  이 가옥의 입지형국은 동춘당과 유사하며,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안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솟을대문 없이 정면에 위치한 일각대문을 들어서면 좌측편에 큰 사랑채가 있고, 우측편에 작은 사랑채가 나란히 좌우로 병렬 배치되어 있다.

 

금암(琴巖)

 

저바위에 앉아 거문고를 탓을까? 어쩐지 위치가 어색하고 불안해보이는 것은 나의 비뚠 시각 탓일까?

 

큰사랑채

 

큰 사랑채는 송병하의 아들로 광주목사를 지낸 송요화가 짓고 자호를 따서 소대헌(小大軒)이라 하였다. 소대헌은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우측의 2칸 통은 대청이고, 좌측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좌측 뒤편 모서리 부분은 아궁이 함실을 두고 상부는 다락과 일부 벽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측의 4칸 정면에는 툇마루를 두어 대청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대청의 정면과 방사이 창호는 4분합 들어열개로 하고 동측 창호는 4분합 문이다.

 

대청 뒷면에는 보통 골판문인데 여기서는 세살문이다. 기단은 막돌로 바른 층 쌓기를 하고 방형 초석 위에 방주를 썼다. 기둥 상부는 사개맞춤으로 보와 도리를 기둥에 끼워 만들었다. 정면 주도리 밑에는 장혀를, 퇴보 밑에는 보받침을 끼워 구조를 튼튼히 하고 있다. 1고주 5량집 구조이다. 대청의 천정은 추녀와 서까래가 모이는 부분에 우물반자를 만들고 나머지는 연등천정으로 하였다. 온돌방 천정은 모두 반자위에 종이 바름으로 마감하였다. 각실의 꾸밈새나 구조기법으로 보아 조선 후기 건축으로 보인다.

 

작은 사랑채와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는 송요화의 아들로 보은현감을 지낸 송익흠이 짓고 자호를 따서 오숙재(吾宿齋)라 하였다. 이 집은 정면 8칸, 측면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집이다. 평면구성은 우측에서부터 마루, 건넌방, 마루방, 작은 사랑방, 골방, 책광으로 배열하고 제일 좌측 1칸은 안채로 통하는 중문칸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측 5칸 정면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여 각 방과 기능적으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기단은 2자 높이로 막돌 허튼층으로 쌓은 다음 방추형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웠다. 기둥 상부구조는 큰 사랑채와 같은 사개맞춤으로 만든 구조이다.

 

사랑채가 2채인 것은 사랑채의 기능이 다른 반가에 비해 매우 많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개 안채 공간이 사랑채 공간보다 큰데 비해 여기서는 사랑채 공간이 훨씬 크다. 이는 남자들의 수가 많았거나, 활동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사랑채 하나를 더 만드는 것으로 부족한 기능을 해소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가족이 가장 많았던 시기는 아마도 조선 후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주택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문중의 장자는 아니지만 후일 전형적인 가부장적 대가족을 수용하는 주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당과 안채 지붕만 보인다.

 

작은 사랑채에 붙은 중문을 지나면 바로 뒤편에 'ㄱ'자형 안채가 있다. 안채의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로 하고 우측편에 2칸의 건넌방, 좌편에 찬방(2칸), 안골방(1칸), 그리고 부엌을 배치해 두었다. 건넌방과 찬방 앞쪽, 그리고 찬방 뒤로는 마루가 연결되어 있다. 무고주 3량집 구조에 동편은 팔작지붕, 서편은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근래에 들어와 보수를 하면서 기단부와 창호를 현대식으로 바꾸어 전통적인 멋이 다소 감소되어 버린 감이 있다. 기단은 넓은 판석을 붙이고 안마당에는 보도블록을 깔았다. 초석은 원래의 방추형을 쓰고 기둥도 방주를 쓰고 있다.

 

안채를 돌아 올라가면 정면 2칸, 측면 1칸반의 사당이 있다. 전면에 퇴칸을 둔 작은 규모이지만 1고주 5량집이고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외형적으로 보아서는 전형적인 사당 형식이다. 전면 퇴칸 바닥은 마루로 하지 않고 흙바닥으로 하였는데 최근 시멘트로 마감하였다. 대충 다듬어 사용한 기단이고 방형초석을 놓은 다음 방주를 세웠다. 측면과 후면의 하부 외벽에는 약 4자 높이로 돌을 쌓아 하방벽으로 삼고 정면 2칸에는 각각 4분합 띠살문 들어열개를 달아 두었다. 이 주택의 안채는 개수로 인하여 원형을 많이 상실하고 있으나 구조적인 특징으로 보면 오히려 이 주택 내에서 다른 건물보다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가옥의 배치구조는 폐쇄적인 영남지방의 그것과는 달리 개방적이다. 2동의 사랑채는 횡으로 병렬 배치되어 더욱 큰 개방감을 주고 있다. 사랑채가 2동인 것은 사랑채의 기능을 확대했기 때문인데 이처럼 사랑채의 기능이 커진 것은 이 가옥이 지역의 문화적 중심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호지방 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 문화재이다.

***동춘당공원의 다른 고택 처럼 개방이 되지 않아 아쉬웠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 날, 굷은 비 내리는 여름 날에 들리면 그 풍경과 서정에 젖어 쉽게 자리를 박차고 나올 용기가 없을 것 같다. 글은 대덕문화원 자료를 편집하였다.***

 

201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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