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파주시

파주...율곡 가족묘

임병기(선과) 2011. 2. 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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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서원 내 율곡 가족묘역 입구의 현판 여견문(如見門). 그 의미는 出門如見大賓  入室如有人 에서 유래된 듯 하다. 즉 "밖에 나갈때는 큰 손님을 뵙는 듯이 하고,   방에 들어설 때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이 하여 몸가짐을 삼가야 한다."라는 상징성일 것이다.

 

 

묘역은 천(川)자 능선이 세갈래로 흘러 내리는 곳으로 율곡의 묘를 가운데로 두고 좌우 능선에도 조성되어 있다. 율곡은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으나 파평면 율곡리에서 성장하였고 그의 호도 이곳 지명에서 가져온 듯 하다. 그래서 자운산에 가족의 묘역을 마련한듯하다. 묘역중심 능선  맨앞자리 율곡의 맏아들 이경임의 묘이다. 이처럼 일가족의 묘가 같은 지역에 있는 것은 고려말부터 행해져 조선시대에는 일반화 되었다고 한다.

 

 

부모 이원수와 신사임당 합장묘.  묘 앞에는 묘비·상석·향로석이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 1쌍이 세워져 있다. 후에 새로 세운 까만 돌(烏石)로 만든 묘비 1기가 묘 뒤편에 있으며, 상석 앞부분은 화강암 바닥으로 단장하였다.

 

묘비

 

율곡의 맏형부부 이선과 곽씨 합장묘. 부모묘보다 위에 있으며 율곡묘 아래에 위치해 역시 의아스럽다.

 

율곡 묘소앞 망주석

 

전면 율곡의 묘  뒤는 부인곡산 노씨의 묘. 화려하지 않으며 묘비 장명등 문인석 상석을 갖추었다.

 

묘역 문인석

묘비

 

율곡묘역 측면. 부부의 묘가 쌍봉도 아니고 합장묘도 아닌 신라 왕릉 처럼 서로 연결되어 낙타 등 형상이다. 그이유에 대해서 기구한 사연이 구전되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8년전에 율곡이 49세를 일기로 죽자, 이 곳에 묘를 정하였는데,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인은 묘 옆에서 여종과 함께 있다가 왜적의 겁탈을 피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전쟁후 후손들이 둘러보니 율곡의 묘옆에 두 여자의 유골이 흩어져 있었으나 부인과 여종을 구분할 수 없어 이렇게 조성하였다는 것이다.

 

 

신도비각

 

 

자운서원 입구 왼쪽 낮은 언덕위 율곡 신도비. 신도비는 율곡선생이 돌아가신지 47년이 지난 1631년(인조 9) 4월에 건립된 것으로 비문은 이항복이 짓고 신익성이 썼으며 전액은 김상용이 썼다고 한다. 재질은 대리석으로 앞뒷면에 걸쳐 각자되어 있는데 앞면에 몇 군데의 총탄 흔적이 있다.

 

 

맨위가 부인 곡산 노씨, 이이묘가 자리해 의아스럽다. 부모 묘위에 자식의 묘를 두는 것은 역장이라 말하며 금기사항이며,부모의 묘가 위에 있더라도 석물을 조성하지 않았으면 자식 묘에도 조성하지 않는 것이 예법으로 알고 있다. 이를 두고 많은 가설이 제기되고 있으마 명확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고 한다.

 

201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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