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릉 효릉 예릉 등 3기의 능이 있어 서삼릉이라고 한다. 그외에도 의령원 효창원 소경원 태실이 있다. 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능인 효릉과 16대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의 묘는 비공개이다. 서삼릉의 경내에는 3원과 46묘, 태실 54기가 있다. 아쉽게도 사초지에 올라 능을 살펴보지 못해 간단게 글을 남긴다.
희릉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이다. 장경왕후(1491-1515)는파원부원군 윤여필의 딸이다. 중종의 후궁 숙의로 책봉되었으나 정비인 단경왕후 신씨의 폐위로 왕비로 책봉되었다. 1515년 세자 인종을 낳은후 산후병으로 경복궁 별전에서 승하하였다.
정자각
제전을 올리는 건물로 丁자 형 구조로 정자각이라 부른다. 오래전 내가 알았던 분은 중국황제는 태양을 상징하여 일자각으로 조성했으며 중국에서 보아 우리나라가 정자에 위치하여 제향공간을 정자로 하였고, 후에 고종에 대한제국 황제가 된 후에 우리나라도 일자각을 배치했다고 했다.
정자각 좌후의 계단으로 제사를 모실 때ㅔ는 좌측(동쪽)계단으로 오르고 마친후에는 우측으로 내려오는 이른바 동입서출이 지켜진다.
신도비
비각
정자각 잡상
사초지
사초지 위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예릉
철종과 철인왕후의 능이다. 철종은 사도세자(장조)의 증손자이며, 전계대원군의 세째 아들이다.헌종이 후손없이 승하하자 순조의 비 순원왕후인 대왕대비에 의하여 강화도에서 영입하여 19세에 즉위하였다. 처음에는 대왕대비의 수렴청정,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국정을 바로잡지 못했고 1878년 창경궁 양화당에서 승하하였다.
참도. 중앙은 왕의 혼령이 다니는 신도(神道)이며 좌우는 임금이 출입하는 어도이다. 이 용어에도 다른 의견이 있어 자료를 가져 온다.
조선 왕릉, 용어부터 정비해야
배위.왕이나 제관이 출입시에 사배를 하는 곳이다.
수복방터
수복방은 수복방은 제사 그릇을 보관하고 수릉관(능을 지키는 관리) 또는 수복(청소일을 하던 일종의 관노비)이 지내던 집이다
정자각
정자각 우측 계단
비각
신도비
예감. 제향 후에 축문을 태워 묻는 방형의 석함
봉분을 난간석으로 연결한 동원쌍봉릉이다. 곡장이 둘러진 봉분에는 석양 석호 혼유석 망주석 장명등 문무인석 석마가 보인다.
일자각
의령원, 효창원 앞의 제각이다.
의령원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의 첫아들 의소세손의 묘이다. 세손의 이름은 정이며 3세에 세상을 떠났다. 북아현동에서 1949년 이장하였다.
효창원
의령원 앞에 위치해 있다. 정조의 아들 문효세자의 묘이다. 의빈 성씨의 소생으로 5세에 세상을 떠났다. 용산 효창공원에서 1944년 이장하였다.
왕릉에는 후궁, 왕자, 공주의 무덤를 만들 수 없으나, 일제시대에 멸망한 왕실의 무덤를 집중관리 한다는 이유로 왕실의 무덤을 모아놓았다고 한다. 서삼릉의 영역에 후궁, 왕자, 태실을 모아놓은 것은 무덤 경내를 공동무덤으로 변형시켜 왕릉으로서의 존엄과 품격을 낮추고자 한 일제의 의도적인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알려져있다.
2010.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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