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달성군

달성...현풍향교 석탑재

임병기(선과) 2010. 12. 2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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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문

 

 현풍향교를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현감 이영도가 옛 교동에 다시 지었고 영조(재위 1724∼1776) 때 현감 김광태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었다. 대성전은 영조 26년(1750)경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후 고종 광무 5년(1901)에 현감 허길이 중수하고 1931년에는 군수 신현구가 다시 대성전, 명륜당및 동·서무를 중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동무·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등이다.

 

 

현풍향교는 전학후묘의 구성으로 강학공간인 명륜당은 정면 5간 측면 2간의 맞배집이다. 6칸을 마루로 중앙에 배치하고 좌우에 방을 두었다.

 

한석봉의 글

석조부재

 

명륜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서재를 두었다

 

 

놀랍게도 디딤돌을 석탑 탑신석으로 하였다. 숭유억불책의 극치인지 후안무치인지 모르지만 과거지사로 외면말고 의식이 있다면 이시대를 살아가는 원로로서 지금의 유림들도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면석을 디딤돌 삼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석탑 면석이 디딤돌로 사용된다.

 

 

명륜당 앞에는 향교를 이건한 영조조에 현감을 지낸 金光泰記績碑(김광태기적비)가 세워 져있다.

 

 

이장면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분명 생단으로 보이는 부재인데 석탑 몸돌이지 않는가?

 

명륜당 앞 석조부재

명륜당 앞 석조부재

내삼문

대성전 담장 축대

대성전 담장 축재

 

제향공간인 대성전은 영조26년(1750)경에 현감 김광태가 이건하였다고 한다. 배향된 성현은 공자와 사성(안자, 증자, 자사, 맹자).송 4현(도국공 주돈이, 예국공 정호, 낙국공 정신, 휘국공 주희), 동국 18현으로 동무에는 신라조 설총, 고려조 안유, 조선조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9위, 서무에는 신라조 최치원, 고려조 정몽주, 조선조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 9위가 종향되어있다고 한다.

 

 

현풍향교 홈페이지 연혁을 보면 "西紀1917年 군수(郡守) 이범익(李範益)이 폐사 석탑(廢寺 石塔)을 용재 (用材)로 대성전(大成殿) 축대구축(築臺構築)"이라는 기록이 있어 이즈음에 이루어진 일임을 간접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절에서 가져온 부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어 의혹이 더해간다. 영조조에 향교를 이건한 김광태 현감은 부재를 어디서 가져왔을까?

 

  대성전 기단

대성전 기단의 안상이 새겨진 석탑 하기단 면석

안상이 새겨진 석탑 상기단 면석

배례석

석탑 상기단 면석

 

배례석

 

위 사진과 다른 배례석. 적어도 2기 이상의 석탑 부재를 폐사지에서 옮겨 왔다.

 

안상이 뚜렷한 부재

대성전 기단

 

대성전 주초. 석등 대좌로 보인다

 

대성전 주초

 

대성전 주초. 안상이 뚜렷한 석등 하기단 부재

 

 

동서무 기단에도 석탑 부재가 있다.

 

동무 기단의 석탑 몸돌

 

대성전 축대. 석탑 부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폐사에서 가져온 부재라고 했지만 향교 어디에도 석탑 옥개석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른 근거도 없지만 내생각을 피력해보겠다. 몇년전 현풍초교 석탑재를 우리카페에 올렸었다. 기억 못 하는 사람을 위해 그사진 을 다시 가져왔다. 아래 사진들은 현풍초교 교정의 석조부재들이다.

 

석등 대좌

각종 석조부재

 

석탑재. 양우주.탱주가 뚜렷하다.

 

주초

 

적어도 2기 이상 석탑의 옥개석이 보인다.

 

 

석탑 옥개석. 어디서 왔을까?

 

 

또다른 옥개석.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 폐사지에서 가져왔던 향교를 옮기기위해 폐사를 시켰던 옥개석이 없는 석탑 부재와 현풍초교의 옥개석은 관련이 없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분명 동일한 사찰 석탑 부재로 보인다. 물론 어떤 자료도 가지지 못해 추측에 불과하다.

 

그럼 이 석탑과 부재는 어디서 왔을까? 비슬산에만 99개 절집이 있었다고 하니 그 사찰의 부재가 분명해보이지만 소재사를 지나 유가사 못 밑쳐 위치한 자연부락이 탑동(?)으로 기억되는데 현재 석탑은 행방을 알 수 없어 그 절터에서 옮겨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

 

 

비슬산은 말이 없으니...

 

201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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