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삼척시

삼척...영경묘

임병기(선과) 2010. 10. 23.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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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

 

 

이틀동안은 차라리 비가 내려 시원하였는데, 큰길에서 5분도 걷지 않았지만 땀이 비오듯 흐른다. 내모습이 안타까운듯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촌부가 날도 더운데 고생을 많이하겠다고 측은한 표정으로 말씀을 건내셨다. 준경묘는 이곳에서 십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태조의 5대조인 목조의 아버지 이양무 장군의 묘이며, 영경묘는 목조의 어머니 이씨의 묘이다.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부부의 묘가 떨어져 있는 것이다.

 재각

 

안내문 설명에 의하면 이씨 부인은 이양무 장군과 함께 전주에서 거주하였으나, 이곳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별세하였다. 아들 목조가 함경도로 이주하여 부부의 묘를 실묘하였다. 5대손인 이성계와 왕들이  묘를 찾을려고 노력하였으나 진위를 끝내 밝히지 못하였다. 1899년 고종임금이 묘소를 수축하고 재각, 비각을 세우는 등 대대적으로 정비하였다고 한다.

 

 재각에서 내려다 본 전경

 

묘소 주위는 송림이 울창하여 경관이 수려하며 전주이씨 집안에서는 매년 4월 20일 제례를 올린다고 한다. 이곳의 낙락장송은 황장목이라 불리며 경복궁 중수 때는 물론이고 근자에 정이품송의 신부로 간택되기도 했다. 가장 최근 숭례문 복원 부재로 준경묘의 금강송이 채택되어 다시 한번 국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관련기사를 보자. 

  • ◇ 신응수 대목장이 10일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준경묘부근에서 숭례문과 광화문 복원용으로 벌목된 금강소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벌채된 금강소나무는 수령 110년 된 높이 30m, 지름 74㎝의 특대재로, 문화재청은 이달 말까지 준경묘 일대에서 모두 20그루를 베어낸 후 경복궁으로 옮겨 대들보와 창방, 추녀 등 숭례문과 광화문의 복원용 목재로 각각 10그루씩 사용할 계획이다. 이날 벌채 과정을 지켜 본 신응수 대목장은 “나무 속에 송진이 가득 차 있어 비를 맞아도 썩지 않고 넘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국내 최고의 소나무로, 금전적인 가치를 떠나 우리의 상징적 건물을 수천년 이상 지탱해 줄 대단한 재목”이라고 말했다.

 

벌채 행사는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준경묘 봉양회원과 마을주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산신제와 대상나무에 도장을 찍는 근부박피, 벌목자가 “어명(御命)이요”를 외치며 도끼로 밑동을 세 번 찍는 벌목시연, 재목 다듬기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준경묘 일대 금강소나무가 국보 1호인 숭례문의 복원을 위해 벌채됐다. 문화재청은 10일 준경묘 일대에서 숭례문과 광화문 복원사업 성공적 추진과 안전한 작업 등을 기원하는 고유제를 지낸 후 금강소나무 1그루를 시범적으로 잘랐다.      삼척=박연직 기자 

 

 영경묘

 

덥고 게을러서 다녀오지 않았지만 준경묘에는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전설이 전해온다.

 

목조(穆祖;이안사)가 전주에서 부친 이양무 대장군과 함께 삼척 활기리로 이주하여 어렵게 살다가, 어느 날 부친께서 세상을 떠났다. 목조가 부친의 묘 자리를 찾던 중, 지금의 산소자리에 쉬다가 문득 잠이 들어 꿈결에 상자승이 "허허, 대지로다. 이곳에 묘를 쓰면 5대 후에 왕이 나겠구나!" 앞에 가던 도승이 "네 이놈, 어디 함부로 떠드느냐?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 다고 했거늘, 어디 함부로 입 밖에 내느냐?" 하고 꾸짖자, 목조가 깜짝 놀라 일어나 도승에게 달려가 "대사님, 청이 있사옵니다. 방금 지나가시면서 하신 말씀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하고 애원하자,

"도승이 이곳에 묘를 쓰자면 개토제에 소 백마리를 잡아 써야하고, 관은 금관으로 해야 하며, 술은 백 동이를 준비하여 장사를 지내야 하오."하니 목조가 "대사님 그것을 틀림없이 하겠습니다." 도승은 "당신이 바로 묘 자리의 임자이니, 묘를 쓰도록 하시오."하고 좌향과 각종 법도를 가르쳐 주고 "내가 간 뒤에라도 믿어지지 않거든 오늘밤이라도 이 자리에 계란 하나를 묻고 멀리서 지켜보면 알 것이오. 그리 해 보시오."하고 도승은 수십 보를 걷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이날 밤 목조는 이곳에 계란을 묻고 멀리서 지켜보니, 자정이 넘어 과연 수탉이 홰를 치며 우니 밤중에 울리는 소리가 심산유곡을 흔들어 놓더라.목조는 가난하여 소 백 마리와 금관을 구할 길이 없어 여러 날 궁리한 끝에 때마침 처가에서 흰소[白牛]를 빌려다 잡아 백 마리로 대신하여 개토제를 지내고, 누런 귀리 짚으로 관을 엮어 금관 대용으로 하고, 술 백 동이를 준비하여 180호 근속자들과 장례식을 성대히 치렀다. 때는 1231년(고종 18) 태조고황제가 조선왕조를 창업하고 등극하기 꼭 162년 전의 일이다.

 

 

재각을 돌아 잠시 울창한 송림숲을 걷다보면 수수한 영경묘가 있다. 풍수형국과 좌향에 문외한의 눈에는 앞의 전망이 막혀 답답하다. 상석도 망부석도  갖추어지지 않아, 일반 민가의 산소 처럼 솔숲에 둘러 싸여 먼 하늘을 올려보며 소통하는 느낌이다. 근래  요란한 선조 묘지 장식과 서원 개원 등의  조상 살리기인지 조상 얼굴에 똥칠하는 일인지 모호한, 후안무치한 행동을 자행하는 졸부들과 몰지각한 인사들이 꼭 답묘하였으면 좋겠다.

 

201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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