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강릉시

강릉...등명락가사 오층탑

임병기(선과) 2010. 10. 19.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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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근자에 관광지로 부각된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요란한 일주문 탓에 옛스러움에 대한 기대가 일순간 사라진다. 등명낙가사(登明洛伽寺)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창건당시의 이름은 수다사(水多寺). 자장율사는 북쪽의 고구려와 동쪽의 왜구가 쉼없이 범하여 변방을 어지럽히는 것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 곳에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탑을 건립하고 절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호국의 의지속에 창건된 이절은 실라말기의 병화로 소실되었고, 고려초기에 중창하여 이름을 등명사로 바꾸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의하면 강릉부 동쪽30리에 이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등명사라 한것은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볼때 이절이 강릉도호부내에서는 암실의 등화와 같은 위치에 있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수학도가 3경에 등산하여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급제가 빠르다고 한데서 연유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중기에 등명사는 폐허가 되었다.  

 

 2층 기단의 5층 탑이다. 일설에는 쌍탑으로 전해지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4매의 장대석을 지대석으로 삼았다.   옥개 받침은 1~4층 3단,  5층 2단이다. 상륜부는 노반과 앙화만 남았으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상기단 면석은 하나의 돌이며 조식이 없으며  갑석은 복엽앙연이 보이며 중앙에 낮은 3단 각형괴임이 있다. 초층몸돌에는 문비와 자물쇠가 보이고, 양우주를 새겼다. 옥개석 전각에는 반전이 뚜렷하고 낙수면은 완만하다.

 

 

하기단 면석에는 각 면에 3개 안상을 음각하였으며,  갑석 윗면에는 복엽복연을 각 면에 3개씩 돌리고, 네 귀퉁이에는 귀꽃으로 장식하였다.

 

 

등명낙가사는 만월보전 영역과 극락보전 영역이 산언덕을 경계로 구분되어 있으며, 5층탑은 만월 보전 앞에 위치하여 낙가사의 원래자리를 확인해주고 있다. 만월보전구역에는 선방과 요사가 위치하며, 극락보전 영역에는 극락보전, 영산전,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배례석

 

중생을 병고에서 구제하시는 약사유리광부처님을 봉안한 곳인 약사전이며 만월보전, 유리광전, 보과전이라고도 불린다. 

 

 

 약사여래를 주존으로 일광. 월광 보살을 모셨다. 후불탱에서 빨간 구슬처럼 보이는 것이 해이며, 하얀 모양은 달이다.

 

 

극락보전 영역의 불이문. 새로히 불사한 듯 보인다. 

 

극락보전

 아미타 삼존불

 영산전

 

등명사의 폐허에는 세가지 설이 전한다. 하나는 임진왜란때 왜병들의 방화로 소실되었다는 설이고, 또하나는 조선왕실과 관련이 있다. 당시의 왕이, 안질이 심하여 점술가에게 물었더니, 동해 정동 큰절의 쌀씻은 물이 동해로 흘러 들어가서 용왕을 놀라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왕의 특사가 원사을 거쳐 배편으로 동해 정동에 와서 보니 점술가의 말과 같았으므로 등명사를 폐사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하나의 폐허설에는 시대적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곧 등명사가 위치한 곳은 한양의 궁궐에서 正동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곳 지명의 이름이 정동진리로 붙여진것으로 보아 잘 알수있다. 궁중에서 받아야 할 일출의 빛을 부처님을 모신 사찰에서 먼저 받는다는 것은 억불정책을 표방했던 조선의 정책이였으리라,

 

201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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