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강릉시

강릉...시립박물관

임병기(선과) 2010. 10. 1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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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뻘뻘 흘리며 관광안내 부스로 다가가 혹 삼척군 관광 안내 지도가 있냐고 물었더니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걸 여기서 왜 찾느냐고 역정 분명 역정을 내었다. 그럼 중국집에 가서 물어야 하나? 이웃 지자체 관광과 연계하여 지도를 구비해두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닌가?  물론 이런 경우는 나에게도 잘못이 있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관광객을 안내하는 부스에 근무중인 종사원이라면 말 한마디가 지자체의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무척 불쾌한 기분으로 박물관을 둘러 보고 나왔다.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한송사가 폐사된 후 명주군 구정면 어단리에 있던 것을 보물로 지정하면서 1992년 강릉시립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머리와 오른팔이 없어진 불완전한 보살상이지만, 입체감이 풍부하고 매우 활달한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희귀한 작품이다. 왼팔은 안으로 꺾어 왼다리에 얹었으며, 오른팔도 역시 그렇게 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없어져서 알 수 없다. 앉은 자세는 왼다리가 안으로 들어가고, 오른다리를 밖으로 내어 발을 그냥 바닥에 놓고 있다. 이런 자세는 보살상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아마 어느 본존불을 모시던 협시보살이었을것으로 여겨진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왼쪽 어깨에서 겨드랑이로 걸친 천의는 아주 가벼운 느낌을 주며, 목걸이도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어 아름답다.  이 보살상은 특이한 자세와 더불어 사실적이며 활달한 조각수법으로 특이할 만하다.

 

한송사지 석불좌상(모조)

 

원래 강원도 강릉시 한송사 절터에 있던 보살상으로 1912년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1965년 조인된 ‘한일협정’에 따라 되돌려 받았다. 잘려진 머리 부분을 붙일 때의 흔적과, 이마 부분의 백호(白毫)가 떨어져나가면서 입은 손상이 남아 있을 뿐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머리에는 매우 높은 원통형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관 위로 높이 솟아 있다. 볼이 통통한 네모난 얼굴에는 눈이 가느다랗게 새겨져 있고,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져 있다. 목에는 굵은 3줄의 삼도(三道)가 그어져 있으며, 3줄의 목걸이가 가슴까지 내려와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옷주름이 새겨져 있다. 검지 손가락을 편 오른손은 연꽃가지를 잡고 가슴까지 들어 올렸으며, 왼손 역시 검지 손가락을 편 채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발은 오른쪽 다리를 안으로 하고 왼쪽 다리를 밖으로 하고 있어서 같은 곳에서 발견된 한송사지 석불상(보물 제81호)과 반대이다.

한국 석불상의 재료가 거의 화강암인데 비하여 이 보살상은 흰 대리석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조각 수법과 아울러 재료에서 오는 질감이 좀 더 우아하고 온화한 기품을 느끼게 해준다. 약간 오른쪽으로 향한 듯한 얼굴과 몸은 풍요로우며, 조각수법 또한 원숙하고 정교하다. 원통형의 보관이나 풍만한 얼굴, 입가의 미소 등은 강릉 신복사지 석불좌상(보물 제84호)과 오대산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인데, 이들보다 한층 더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만든 시기는 고려 초인 10세기로 추정된다.

 

 

1965년 당시 도로확장공사를 하던 중 땅속에 묻혀있던 것을 발견하여 강릉 교육청에 보관해 오다가 1992년 이곳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비의 받침돌로,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이 받침돌은 거북의 목이 짧고 얼굴은 등과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다. 얼굴에는 눈, 코, 입, 귀, 갈퀴가 얇게 표현되어 있으며, 턱 밑으로는 역삼각형의 수염이 조각되어 있다. 4개의 발가락이 있는 앞발은 등껍질의 앞쪽 아래에 돌출되어 있고, 부서져 있는 뒷발은 움츠린 형태이며, 꼬리는 오른쪽으로 돌려져 있다. 6각형의 무늬가 가득 채워진 등에는 그 중앙에 비를 꽂아두기 위한 네모난 홈을 두었다. 
 

 

역대 강릉부사 및 관찰사의 공덕비군으로 1954년 9월에 당시 명주군청에 있던 것을 남문동 남대천변으로 옮겼다. 1986년에 경포대 서쪽에 옮겼다가 1992년 강릉시립박물관 내로 이전하였다. 모두 19기다.

 

 

 충노 문리동 행적비. 습쓸한 느김 지울 수 없다.

 

 

강릉시 옥천동에 있던 것을 1992년 오죽헌 시립박물관으로 이전한 높이 1.78m의 용지사지의 석불상이다. 대좌와 불신은 다른 돌로 만들었으며, 머리와 몸통은 2조각 나 있던 것을 보수하였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은 마멸이 심해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타원형의 얼굴에 코는 길쭉하며, 눈은 가늘게 찢어졌고, 입은 비교적 불륨있게 표현하였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옷주름이 평판적으로 처리되었으며, 가슴에는 3가닥의 속옷 자락이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해서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아래로 향하고 있으나 파손되었다.

원만한 얼굴 표정은 신라 불상의 얼굴을 연상시키지만 어깨가 지나치게 좁은 점, 평판적인 옷주름, 연꽃무늬 대좌 형식 등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무진사지로 전하는 곳에서 1940년에 발견된 석탑재이다. 모두 2매이다. 하나는 석탑의 탑신부 중 옥신의 한 면으로 보이는데 여래좌상이 양각되었고 우주 1개가 조출되었다. 다른 하나는 4매로 구성된 상층기단면의 한 면으로 보이며 팔부신장 한 구씩 양각되었다.

 

 여래좌상

 

*** 문화재청, 강릉시립박물관 자료를 참조했습니다.

201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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