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아산시

아산...영인 미륵불(?).아산 향교.여민루

임병기(선과) 2010. 7. 18.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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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료에도 없는 불상. 영인읍내 큰 도로변에서 만났다.

 

 

미완성일까?

 

이고장 사람들의 선한 마음이 절로 떠올랐다.

 

 

아산향교. 관음사 석탑과 영인 오층탑의 갈림길에 위치한다.

 

 

아산향교. 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했다.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온다.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향교는 아산리 동쪽 향교골에 있었던 것을 선조 8년(1575) 토정 이지함(李之함)이 아산현감으로 있으면서 향교골에 있던 것을 이곳에 이중건(移重建)했다 한다. 현재도 중국의 사성오현(四聖五賢)과 사철(四哲), 그리고 국내 18현(賢)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제향을 올리고 있다. 향교의 건물 배치를 살펴보면 입구에 홍살문이 있고 내·외삼문이 있으며 명륜당, 대성전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다.

 

명륜당은 정면 3간(間), 측면 2간(間)의 맞배지붕의 건물로 막돌흐트려 쌓기로 구축한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놓고 그 위에 원주(圓柱)를 세웠다. 기단과 창방(昌枋) 사이에는 고맥이와 하방(下枋), 인방(引枋)이 가설되어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가구양식은 도리식이다.

 

대성전은 정면 3간(間), 측면 2간(間)의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익공양식으로 가정(架정)하였다. 장대석을 이용하여 기단을 구축하고 그 위에 원형의 주초석을 놓았으며 원주를 세웠다. 문은 전면에만 시설하였는데 각각 2분합의 띠살문을 달았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측면에는 벽을 보호하기 위한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여민루

 

조선시대 아산군 관아 입구에 세웠던 문루건물로,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게 지은 다락형식의 집이다. 조선 태종 11년(1411) 현감 최안정이 낡은 객사를 고쳤다고 하는데, 태종 13년 백성들의 도움을 얻어 객사 동편에 지었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날개 모양인 익공양식이다. 기둥 사이에는 꽃받침 모양의 건축 재료를 가운데 칸에 3개, 나머지 칸에는 2개씩 만들어 처마를 받치면서 건물의 무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

1층 3칸에 각각 문을 달아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는데, 양쪽 문 윗부분에 화살 모양의 나무(홍살)를 나란히 세워 놓았다. 2층은 천장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좌우는 천장 속을 가리기 위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작은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앞면 가운데에는 백성의 뜻을 취한다는 뜻의 ‘여민루(慮民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201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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