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아산시

아산...세심사 다층탑

임병기(선과) 2010. 7. 1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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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면 산양리 영인산 세심사는 마곡사의 말사이다. 참으로 아기자기하고 정갈하여 몸과 마음이 절로 씻기어 질듯한 사찰이다. 그래서 세심인가? 아침 일찍부터 제준비로 분주하신 보살님이 순례객을 불러 커피 한 잔을 권한다. 청석 다층탑 답사 목적으로 찾아왔지만 절도 보살님도 마음에 오래 남을듯 하다.

 

"세심사(洗心寺)는 백제 때 창건되고 645년(신라 선덕여왕 14)에 자장(慈藏) 스님이 중창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은 없다. 다만 자장스님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봉안할 곳을 찾다가 천안 광덕사(廣德寺)에 두게 하였는데, 천안에서 가까운 이곳에 머무르면서 중창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경내에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청석탑(靑石塔)이 있어 고려시대에도 법등(法燈)이 이어지고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 들어와서 기록을 찾을 수 있는데, 1530년(중종 25)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조선후기의『여지도서(與地圖書)』,『범우고(梵宇攷)』 등에 "신심사(神心寺)"라는 이름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세심사의 전신은 신심사(神心寺)였으며,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명맥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웅전에 봉안된 석가모니후불탱은 1935년에 조성되었는데, 화기에 ‘신심사(神心寺)’라 적혀 있어 이 시기에도 절의 이름은 신심사(神心寺)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1968년 이곳에 들린 일타(日陀) 스님과 해인사 도견(道堅) 스님이 사찰 입구에 있었던 "세심당(洗心堂)"이라는 부도에서 이름을 따 세심사(洗心寺)로 고쳐 부르게 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전통사찰정보 

 

 

雨荷. 빗속에 연이라? 어떤 분의 호인지는 모르나 글도 글이지만 풍류를 아시는 분 처럼 느껴진다.

 

 

대웅전. 소조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다. 여느 사찰처럼 숨은 사연이 있으리라.

 

세심사 신중도...출처/문화재청

 

촬영한 사진이 희미하여 문화재청자료를 가져왔다. 세심사 신중도는 1794년 勝初, 元正, 普心, 品寬, 大云 등이 그린 것으로서, 상단에는 제석,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으로 제석천룡탱의 도상을 취하면서도 상단의 제석천과 권속들을 더욱 비중있게 그려서 마치 단독의 제석도와 천룡탱을 조합한 듯한 특징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화기가 확실하게 남아 있어 조성시기와 조성화원을 분명하게 알 수 있으며, 비록 규모는 작지만 18세기 말기 충청지역 화풍을 비교적 잘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서 가치가 크다.

 

 

영산전 앞 부도. 본래는 사찰 입구에 3기의 부도가 있었어나 세심사 이름을 낳은 세심당 부도는 도난당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원구형 부도다.

 

 

점판암으로 조성한 9층탑이다. 화강암으로 조성한 기단에는 연꽃무늬를 새겨놓았다. 탑신부는 탑신에는 우주가 보이고 옥개석 받침은 2단, 낙수면 기울기는 완만하다.  기단부에 고려탑 특징의 하나인 청석 받침이 보인다.본래 모습은 아니지만 늘씬함과 상승감이 돋보이는 탑이다.

 

고려시대의 탑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단 위에 지붕돌만이 남아 있었는데, 1956년 일타·도견 두 스님이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석탑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는 신심사의 사세가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사찰명을 근래에 바꾸었는지 몹시도 궁금하다. 神자 때문이었나?

 

201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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