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남해군

남해...가천마을 암수미륵바위

임병기(선과) 2009. 12. 2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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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가천마을에는 가을 손님이 벌써 자리를 떠났다. 민초들은 한 숨 돌려 농한기의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내년 봄 맞이할 파릇파릇한 봄손님 파종에 다랭이 논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다른 지역의 들판과 달리 추수가 끝난 다랭인 논은 텅빈 휴식 공간이 아니라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삶의 터전을 꾸려나가야만 하는 생존의 현장이기에 시인 오세영은 가천다랭이 논을 "멀리서 보기에는 그저 아름다울 뿐이지만 거기에 한 민족의 땀과 피가 서려 있다"고 했다.

 

가천加川 다랭이 논...오세영

 

   벼들은 수평에서만 자란다, 그러나

들이 없어 산비탈을 깍아서 만든

                                                         논,

                                                         계단처럼 층층히 닦여 옹기종기

                                                         부드러운 곡선으로 감싸 안고 누워 있는

                                                         그논두렁이여,

                                                         멀리서 보기엔 그저 아름다울 뿐이지만

                                                         거기에

                                                         한 민족의 땀과 피가 서려 있다.

                                                         산을 허물어 들을 만든 그 의지

                                                         수직을 수평으로 돌려놓은 그 꿈,

                                                         삶의 높고 낮음을 거부해 항상 평등을 지향하는 벼는 

                                                         물 대신 차라리

                                                         땀과 피로 자랄지 모른다.

                                                         그래서 함께 어울려 사는 지혜를

                                                         터득한지도 모른다.

                                                         경상남도慶尙南道 남해군南海郡 남면南面 설흘산雪屹山 하下

                                                         가천加川 마을

                                                         한 뙈기 다랑이 논에 한 민족의 평화가 있다.

                                                         평등이 있다. 

 

 

설흘산과 응봉산을 배경으로 바다를 향해 좌향한 가천마을 주민들이 급경사지 산비탈을 개간한 100여 층의 계단식 논이다. 다랭이 논은 일명 삿갓 논, 삿갓배미라고도 불리는데, 옛날 어떤 농부가 논을 갈다가 집에 가려고 벗어 놓은 삿갓을 들어보니 그 안에 논이 하나 더 있더라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다랭이 논이 그 만큼 좁고 작다는 것을 시사하는 은유적 표현 아니겠는가?

 

다랭이 논은 "인간의 삶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형성된 곳으로 되어 있으며 배후의 높은 산과 전면의 넓게 트인 바다가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농촌문화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경관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2005년 명승 제15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농촌취락구조의 전형인 배산임수 처럼 배산임해의 바닷가 마을.  가천리 사람들이 손바닥 만한 경작지도 없는 척박한 비탈에 석축을 쌓고, 한뼘 이라도 더 땅을 일구어 벼농사를 지을려고 조성한 피와 땀의 결정체가 다랭이 논이다. 그래서 나 처럼 멋없는 사람에게 예술적 가치와 바다와 조화를 이룬 논두렁의 유연한 곡선의 아름다움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는 표현은 사치로 들려진다.

 

 

다랭이 논의  상념을 접어두고 마을길로 접어들면 마을 사람들이 "밥돌"로 모시는 거북등 같은 바위가 3층 방형 기단 위에 놓여 있다. 미륵바위가 발견된 음력 10월 23일 동제를 올린 후 밥을 밥돌에 묻는다고 한다. 아마 거북등 아래 감실에 올리는 듯하다. 내 유년 시절 할머니께서 기제사 후 메밥, 정월 보름에 오곡밥, 동짓날에  팥죽을 시렁위에 올려 놓는 의미와 같은 상징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제는 농경사회에서는 땅을 중시하여 음기가 가장 강한 정월보름에 동제를 모시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 무병 장수를 기원하는 마을 제의로 당산제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전승된 마을 축제이다. 가천 마을 축제도 크게 다를 바가 없겠지만 특별히 밥돌을 모시는 까닭은 배고픔에서 벗어나려는 욕망과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배려한 의식으로 보고 싶다. 실제로 생선이나 육고기 없이 과일만으로 제수를  차린 것으로 미루어  불교의 천도제 성격이 강하게 느껴진다. 

 

밥무덤...김종제

 

 남해 지족해협 지나서
             죽방렴 지나서 어부림 지나서
                 금산 들머리 지나서 독살 지나서
                 층층 앉아 있는 가천 다랑이마을

                                                                  산 깍은 백팔 계단

                                                                  성큼성큼 올라서면 미륵 앞이다 
                                                                  제 명 다 못 살고
                                                                  구천을 떠돌아다닌다고
                                                                  제단을 높이 쌓아 놓고서 
                                                                  이제 막 지어놓은 밥 올렸다
                                                                  배도 들일 수 없는 벼랑이나
                                                                  하루 내내 잊지 않고 해 찾아들어
                                                                  밥줄 같은 이 비탈에서
                                                                  겨우 목숨 이었다 

       여름에는 논이 되었다가
       겨울이면 밭이 되었다가
                    철 따라 허기진 날이 하도 많아서
    심을 것도 천지였겠다
               물건리 앞바다에 그늘이 지면
                         후릿그물을 쳐 멸치를 잡아들였으니
                          그것도 또 뒷간의 층층 밥무덤이었다
         저 험악했던 삶도 모르고
                    나는 그저 금산의 풍광에 취해서
   목숨 하루 잇겠다고 
       도시락 열고 한 술 뜨니
            내가 필연코 밥무덤이었다

 

 

다랭이 논과 더불어 가천 마을의 상징인 가천마을 암수미륵바위.  암수바위는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지만 관악산 삼막사 바위가 으뜸이고 쌍계사 국사암(?) 나무 등걸의 여성성기도 일품이지 않는가? 이러한 성기 상징은 반구대, 고령 양전리, 칠포 암각화 신라 토우의 적나라한 묘사 등 고래로부터 이어져 오는 민속 신앙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로는 암각화 등의 남성 상징물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바뀌는 시대적 상황을 나타내고 노동력이 절대 필요한 시점에서 다산(多産), 풍요와 음기가 강한 지역에 비보책으로 남성 성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가천마을 암수미륵바위는 풍요, 풍어 다산 외에도 아들을 바라는 기자 신앙, 마을의 안녕, 무병장수, 고기잡이 간 사람들의 무사 귀환 등을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며, 미륵 하생을 염원하여 미륵 바위로 불려지고 있다.

 

미륵바위는 영조 27년(1751) 현령이었던 조광징 선몽으로 이땅에 태어났다고 전해온다. "현령의 꿈에 백발을 휘날리며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우마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 견디기가 어려우니 나를 일으켜 주면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말했다. 

현령이 관원을 모아 가천으로 가 꿈에 본 것과 똑 같은 지세가 있어 땅을 파자 남자의 성기를 닮은 형상인 높이 5.8m, 둘레1.5m인 거대한 수바위와 아기를 밴 배부른 여인의 형상인 높이 3.9m, 둘레2.5m인 암바위가 나왔다.

현령은 암바위는 누운 그대로 두고 수바위는 일으켜 세워 미륵불로 봉안하고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나는 우리 문화유산중에서도 민속신앙에 가장 관심이 많다. 서낭당, 벅수, 미륵바위, 성(性)신앙물을 답사하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고 마치 민속물을 조성할 당시의 사람인 듯한 착각 속으로 빠져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

다. 이런저런 생각의 나래를 펴면 답사도 한가한 놈의 사치로 여겨지지만, 나의 기를 팍팍 죽이는 숫바위는 힘차게 발기한 모습으로 하늘을 찌를 듯 위풍당당하고, 암바위는 만삭의 몸으로 숫바위를 바라보고 있다. 숫바위 옆에는 여성의 음부를 닮은 바위가 민망스런 자태로 숫바위에 기대어 답사객의 장난기를 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숫미륵바위

 암미륵바위 

고두현 시인과 사이버에서 만난  동무들

  

몇년 사이 가천마을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그 때 그자리건만 미륵바위 주변은 화려하게 성형을 하여 따뜻하고 안온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겨우 한 집 물어서야만 찾을 수 있었던 막걸리 집도 마을에 널려 있고, 유명 사찰 사하촌 못지 않게 민박촌도 성업중이다. 

 

바람처럼 스쳐가는 객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이해할 수 없으며, 나에게는 여행이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방편이기 때문에 변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늘 가슴에 품고 있던 풍광이 사라지고, 앨범속의 빛바랜 흑백사진 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던 추억 저편이 사라져 아쉬움으로 남을 뿐이다.

 

 

이번 고두현시인과의 문학기행의 가이드인 고향 남해에 미친 사람 김성철님은 " 남해도에서 어머니 자궁에 위치한 가천마을은 미륵불이 태어날 만큼의 양수가 부족했다. 그래서  미륵불을 잉태하고 있는 미륵바위의 양수가 터지기를 기원하며 마을 이름에 내 천川을 보태어加 가천마을로 불리운다"고 했다.

 

이런 마을 지명 유래를 인지한다면 흥미와 성기신앙을 희화화한 이름보다는 지금부터라도 미륵바위, 즉,암미륵 숫미륵으로 불렀으면 좋겠다. 민속신앙은 우리가 함부로 대할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고래부터 면면히 계승되어오는 절대적인 믿음과 경외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곰삭은 김치 한 조각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걸치고 돌아서는 길. 오늘따라 일망무제의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는 가천마을 노파  얼굴의 주름살이 더 깊게만 보인다. 이생에서의 고단한 민초들의 삶을 위무하며, 생로병사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미륵이 하생하는 그날은 언제이련가? 

 

2009.10.11 

최초 글...2003년 1월

사진...2009년 10월

글 수정...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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