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담양군

담양...수남 학구당

임병기(선과) 2009. 11. 15.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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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남도 답사길에 광주에서 만났던 친정이 담양인 굴묵이낭님. 출발전에 미리 동선을 보내드렸더니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담양에만 소재하는 학구당을 추천했다. 수남학구당.수북학구당 중 수남학구당을 답사하면 좋겠다고 하였다.

 

분향리 석불 마을과 소쇄원 방향으로 접해 있었다. 얼핏 보아서는 서원 같은 분위기었다. 구조는 학구당 4칸, 루대 2층 4칸, 관리사 3칸이 있으며, 현재는 18개 성씨가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서원의 내삼문-루-당-묘 배치와 달리 루와 강학공간인 학구당만 조성했다. 루와 학구당의 거리도 좁아 폐사된 절집의 누하진입의 루만 활용했으며 동서재를 고려하지 않고 학구당만 새로히 건축한 건물로 추측된다.

 

루대

 

고려말 창건한 향적사가 폐사되고 그 자리에 들어선 "수남학구당은 창평학구당이라고도 불리며 유교 사회적 기풍을 진작시키기 위하여 인재를 양성하던 곳이다. 훗날 환학당(喚學堂)이란 선비가 승려들을 다시 불러들여 강학하였으므로 후일 그 제자들이 환학의 뜻을 받들어 학구당이라 이름하였다.

 

조선 선조 3년(1570) 창평에 살고 있는 25성씨(姓氏)가 숭고한 도의(道義)와 국가의 문무정책(文武政策)에 따라 학업을 연구하며, 유교(儒敎)의 기풍을 진작하기 위하여 명칭을 서원이라 바꾸어 중건하였으나, 광해군 11년(1619) 다시 ’창평학구당(學求堂)’이라고 고쳤다."

 

쉽게게 말해 국가 통치철학이 불교에서 유교로 바뀌면서 사찰 자리에 조선 건국이념에 다른 강학공간을 조성한 사례로 보면 된다. 그래서 수남학구당은  새로운 사회질서에 맞는 형태로 바뀌었던 유적이다.

 

영남의 학문은 서원과 향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호남은  서원 향교 외에도 학구당, 즉 어떤 의미에서는 정자에서도 교육이 있었다는 증거로도 보인다. 주변 정자 답사 동선에도 포함하면 좋을 것 같다.

 

 학구당

 

막돌 허튼층 쌓기 기단위에 정측면 4칸*2칸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다른 건물과 달리 대청 앞의 긴 장방형과 짧은 목재 2단 계단이 이채롭다. 계단 용도로만 생각하기에는 의문이 들지만 마음속 추측은 학문을 연마하는 학구당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불경한 일이라 상상에 맡기겠다.

 

잡초만 무성한 학구당에는 맑고 높은  어린 학동의 글 읽는 소리 대신에 이름 모를 새 울음소리만 들려와 객의 마음을 휘젖는다.   떠나지 말고 대청에 드러누워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볼까나? 

 

200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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