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담양군

담양...영은사 석조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09. 11. 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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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출발. 영은사 초입에 닿았다. 눈에 익은 길이다. 정자문화 가사문학 기행길에 늘 스쳐 지나던 길. 그길 위에 영은사는 위치했다. 선입견이랄까? 담양 고을은 개선사지 석등을 제외하고는 무궁무진한 불교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음에도 인지는 고사하고 검색조차 하지 않았다.

 

여름도 지쳐가는 듯한 8월 말, 작은 마을 논길을 슬쩍 벗어난  대나무 숲 사이로 난 영은사 길. 눈에 들어온 일주문으로 미루어 세상에서 가장 소박 절집에 정겨운 스님이 계실 것 같다

 

 

법당. 시골 고향집 같은 법당에는 이미 가을빛이 가득했다. 외갓집에  오는 외손자를 맞이하는 외할머니 처럼 문을 활짝 연 대웅전이 편안하고 포근하다. 마침 아침 공양중인 스님과 여러분의 보살님께 방문 목적을 말씀드렸더니 정중하게 촬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명함을 건내주며 상업적 목적이 아니며 멀리서 왔다는 간곡한 청을 드렸더니 스님께서 허락했다. 그러면서 아침 공양을 권했지만 사양하고 재료를 알 수 없는 모시떡(?)을 맛나게 먹었다. 담양이 고향인 우리 카페 님들이 재료를 알려주면 좋겠다.

 

 

츨발전 비지정 문화재 검색에서는 세분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고 했는데  두 분만 계셨다. 스님에게 문의했더니 한 분은 불상이 아니고 불상 모습의 자연석이어서 땅 속에 묻었다고 했다.

 

아울러, 최근까지 개인 사찰이었으며 스님은 울산 청송사(?)에서 몇년전 영은사로 오셨다고 했다. 더불어 많은 답사객의 방문과 무분별한 행동거지를 거론하며 부처님 촬영에도 예를 갖추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첨언했다.

 

 

고서면 금현리 영은사 불상. 불신과 주형거신광배가 하나의 돌이다. 두광에는 한 줄 선으로 두르고 바깥에는 화염문을 새겼다. 소발에 높은 육계 원만한 얼굴, 이목구비는 마모되어 희미하다. 불신은 양감이 없고, 법의는 우견편단, 수인은 항마촉지로 보인다. 무릎은 불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으며 대좌는 확인하지 못했다.

 

영암의 도갑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과 비슷한 양식으로 신라말 고려초에 유행한 지방적인 유파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석불로 알려져 있다. 

 

 

또다른 석불좌상.  대좌와 광배가 없고, 나발(?) 낮은 육계, 상호는 마멸이 심하다. 목은 시멘트로 복원 하였다.우견편단의  법의가  결가부좌한 무릎을 덮었다. 수인은 항마지촉인이다. 통일신라시대 하대인 9세기 후반으로 추정한다.

 

 

2009.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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