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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익은 살구맛이 죽인다. 세계적인 장수촌인 그루지아 코카스마을의 주식이 살구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려오면서 먹으려고 작심하고 미륵당을 찾았지만 문이 닫혀 있다. 진당님은 발빠르게 내려가서 키를 가지고 와 다시 미륵당 석불을 찾았다.
금광리 마을 뒷편 인적이 끊어져 잡목과 풀이 우거잔 두 곳에 세월에 무게에 지친, 금줄이 걸린 미륵당이 있었다. 초기에는 성황당으로 추정되나 후에 석불을 모시고 미륵당으로 부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미륵당은 금광사지에 위치했다. 금광사(金光寺)에 1500나한을 안치 봉안하였으나 불교가 점점 쇠퇴 하자 동민들이 나한전부를 강물에 던졌더니 미륵이 현몽하므로 1680년경 동민들이 미륵당을 건립했다고 전한다. 예전에는 이전각에 금광사지에서 옮겨온 미륵불을 봉안하고 매년 음력 정월 보름전날 동제를 지냈다고 한다.
사진은 문화재총람에서 가져온 사진으로 예전 모습이다. 금광사지라고 불리우는 이 사지에는 약 30년 전까지 현재 마을 서 편 구릉상에 옮겨져 있는 석불과 석탑이 있었으며, 절터 일대를 탑 막등(塔幕嶝)이라고 부르고 있다.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불상과 탑, 출토유물들로 볼때 고려시대의 사지로 추정된다.
예전 석탑 사진이다. 금광리 석불의 서편에 세워져 있는 석탑은 옥개석과 상륜부의 일부 만으로 조립하여 탑을 이루고 있다. 밑에서 동일한 형식의 옥개석 을 4점 포개고, 그 위에 옥신을 올렸고 그 위에 노반, 그리고 모서 리가 훼손된 복발이 있고 맨위에 앙화가 있다. 탑의 현재 높이는 173cm로서 금광사지에는 일부 석탑재가 남아 있는데 석탑의 원위치가 아닌가 추정된다.
2009.06.28 금광사지 석탑의 모습이다. 도난당하여 옥개석 1기만 서러움을 삼키고 땅속에서 통곡하고 있다.
미륵당 근처 아줌마에게 석탑의 존재를 문의했더니 쥐도새도 모르게 훔쳐가버려 미륵불도 현대판 콘크리트 미륵당을 조성하여 모셨다고 했다. 고맙다고 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기막히고 잘난 우리 문화재 현주소다.
금줄마져 역활을 포기하고 지친 모습이다. 보호각이라는 명목하에 한뼘 움직일 틈도 없이 바투 들이된 간살에 울분을 토했는데 육중한 콘크리트 속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금광리 미륵불에 비하면 그건 눈물나도록 고마운 일로 보인다.
독방속 또 독방에 갇혀 있으면서도 웃으신다.
더운데 먼길 온다고 욕봤지!!!라고 말 건내시어 왈칼 눈물이 솟아 일행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영주 금광리 석불좌상. 법의는 통견이며 나발이나 불두는 본디의 상인지 분명하지 않다. 결가부좌한 모습은 안정감을 주며 왼손을 복부에 얹고 오른손을 무릎위에 올려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호분과 내부 흰색 페인트가 습기로 날리어 실내를 뒤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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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좌 상하대석에는 앙련과 복련이 곱다. 중대석은 멸실되었고, 하대석은 오랫동안 매몰되었던 모습이다.
그토록 달콤한 살구맛이 덜익은 살구맛으로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어린이의 친구가 되고 할머니의 후원자로 남도록 미륵당을 마을 중앙으로 모셔오면 어떨까?
2009.0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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