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주시

영주...화기리 인동 장씨 고택

임병기(선과) 2009. 7. 20.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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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을대문

 

영주IC까지 마중나온 조현두(진실하고 당당하게)님은 소룡리 석탑 답사전에 화계 인동장씨 고택으로 안내했다. 지역에 주거하시면서 우리 옛문화 특히 유교문화 개발과 계승 보존을 위해서 동분서주 하시는 님은 고택의 종손과 익히 잘 알고 계셨다.

 

장덕필 선생. 화기리 고택의 종손이시다. 인사를 올린 후 선생의 보학과 명문가에 대한 해박하고도 재미있는 말씀이 계속 되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밤새우며 들어도 내게는 좋을 것만 같았다. 내앞 의성 김씨. 학봉가.하회 유씨. 상주 양진당. 해남 녹우당. 인동 여헌가.고성이씨. 병호시비 종손의 대타협 후일담 등의 비록(?)이 예전 시골 가설극장의 영사기처럼 매끄럽지 않아 더욱 정겹고, 사람을 몰두하게하는 매력을 품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새 종부님은 음료수와 곳감 참외를 내어오시며 갑자기 오셔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며 수줍은 모습으로 이해를 구해 오히려 우리가 더욱 미안했다. 장선생님으로 부터 학봉가 종손 김시인 어른이 금년 정월에 운명하셨다는 말씀에 마음이 아팠다. 

 

 

화기리 꽃계마을  인동 장씨 고택은  영주 입향조인 응신의 맞손자 언상이 이곳에 터전을 열어 400여년 이상을 세거해 오고 있으며, 이 종택은 언상의 생존시기인 16세기 중엽(중종∼명종 : 1522∼1566)경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은 동쪽으로 연화산, 서쪽으로 주마산·황귀산, 남쪽으로 멀리 학가산의 연봉이 나즈막히 늘어서 있고, 동서로 길게 펼쳐진 꽃계들, 반구들 그 가운데로 옥계천이 관통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를 이루고 있다. 종택은 □자형 정침과 뒤편 언덕위에 사당이 별도의 일곽을 이루고 있다. 정침 우측에는 영정각.유물각이 있다.

 

일반적으로 남향집은 사랑채가 우측에 배치되고 사당이 사랑채 뒷편 동쪽에 위치하지만 장씨고택은 반대의 경우로  좌향이 동북향으로 판단되었다. 

 

 

사랑채는 팔작지붕.정면 3칸, 측면 칸반의 루각형 건물이고, 정침과 독립된 가구 구조이다. 평면은 좌측 마루 2통칸, 사랑방 2칸이 연달아 놓았는데, 마루와 사랑방 전면에는 두리기둥에 계자 난간을 세운 루마루를 두었다.  마루에는 화계정사 현판을 비롯 많은 중수기문 등이 걸려 있었지만 오늘도 무식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장덕필 선생님은 제일 앞쪽 누마루 기둥이 진달래 나무라고 말씀하셨다.

 

화계정사 현판과 마루 상부

 

장덕필 선생 사랑채. 종부의 섬섬옥수로 장만한 모시적삼과. 죽침. 사랑채에는 옛날이 살아와 오늘의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수많은 보학. 선비 이야기. 명문가 족보 등이 마치 올곳은 선비의 기풍처럼 정제되고 절제된 모습으로 서가에 가득했다.

 

 

중문에서 바라본 안채.

 

사랑채만 팔작지붕이고 안채,중문채는 맞배지붕으로 기단 높이를 포함하여 위계를 느낄 수 있다.

 

 

안채

 

미처 정리가 되지 않아 부끄럽다는 종부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안채를 찍었다. 아랫글은 영주시청 홈에서 가져왔다.

 

정면 5칸중 대청 3칸을 가운데 두고 좌측에 상방 2칸, 상방 정지 1칸을 두었다. 상방은 뒤쪽 칸에 4짝 미서기문을 달아 놓았고 상방 정지위에는 다락과 반침이 설치되어 있다. 대청 우측은 안방 2통칸, 정지 1칸, 정지고방 1칸이 연이어 놓여 있고, 정지고방 좌측은 두지(원래 대문칸) 1칸이 대문과 연접되어 있다.

 

정지고방 우측에는 고방 1칸이 정침 우측으로 돌출되어 있다. 기단은 안대청부분에만 강돌을 3단, 기타는 한단으로 쌓고 그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았다. 기둥은 안대청 중앙 2개만 두리기둥이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이다. 안대청 상부가구는 간략한 3량가이고, 마룻대는 제형판대공위에 가구되어 있다.

 

 

마루위 연등천장과 시렁위 가지런한 소반은 흔히 볼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종가 화수회  또는 불천위 봉제사 때 기회가 된다면 오고 싶다. 많은 일가가 모여 따로 상을 받고 식사를 하는 모습도 이제는 멀지 않아 역사속으로 멀어져 갈 장면 아닐까?

 

종부와 준비하는 여인들의 수고에 미안하지만 사람 사는 모습. 법이 없어도 집성촌이 세세 유지되며, 명문가를 꾸려 나가는 법도와 권위도 바로 이런 작은 공동체 의식에서 출발되고 형성되며 완성된다고 여기면 지나친 억설인가?

 

안채의 떡판

후원

불천위 사당

 

아래의 유품 사진과 글은 문화재청에서 가져왔으니 우리님들 답사시에 참조 바란다.

 

                                                     장말손 선생 초상화,,,문화재청
 
보물 502호. 장말손은 조선시대(朝鮮時代)의 문신(文臣)으로서 자는 경윤(景胤),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그는 세조(世祖) 13년(1467) 예조좌랑(禮曹佐朗)으로 이시애(李施愛)의 난(亂) 때 강순(康純)을 따라서 난군의 토벌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이 되고, 내섬시첨정(內贍寺僉正)에 승진되었다. 성종(成宗) 원년(1470) 장악원부정(掌樂院副正)을 거쳐 장악원정(掌樂院正),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해주목사(海州牧使)를 지내고 성종 13년(1482) 연복군(延福君)에 봉해졌다.
 
영정은 조선 전기(前期)의 전형적인 공신도상(功臣圖像)으로서 적개공신책록(敵愾功臣冊錄)을 기념한 도상으로 추정된다. 초상화의 형식을 공수(拱手)자세를 취하고 의자에 앉은 전신좌상(全身坐像)으로서 화폭은 연폭(連幅)으로 되어 있다. 안면은 얼굴색을 토황(土黃) 및 살색으로 시채(施彩)한 후 갈색선(褐色線)으로 윤곽을 잡았으나 선염기(渲染氣)가 전혀 나타나지 않은 고식(古式)을 보이며, 의습처리(衣褶處理)는 아청색단령(鴉靑色團領)의 외곽선이 상당히 규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화상(화像)에 나타난 흉배(胸背)는 중(中)·후기(後期)의 자수흉배(刺繡胸背)와는 다른 직금흉배(織金胸背)인데 호표(虎豹)무늬로 미루어 이 화상의 제작시기는 장말손이 무관1품(武官一品)의 직위에 있었던 시기로 생각되며 따라서 성종(成宗) 13년(1492) 연복군으로 봉해진 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영정은 조선 전기 초상화가 드물게 전해 오는 실정에 비추어 초상화사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공신도상이다.

 

 

 

유물각

 

인동 장씨 선세홍백패...문화재청

 

 

 
인동(仁同) 장씨(張氏)의 선세(先世)인 장계(張桂)와 그의 후손 장말손(張末孫)에게 내린 과거(科擧) 급제(及第)의 교지(敎旨)이다. 장계의 홍패는 고려 충렬왕(忠烈王) 31년(1305)에 내린 것으로 서체는 행서체(行書體)이다.
 
장말손의 백패(白牌)는 조선 단종(端宗) 원년(1453)에, 홍패(紅牌)는 세조(世祖) 5년(1459)에 내린 것으로 서체는 모두 초서체(草書體)이다. 고려시대의 과거교지(科擧敎旨)는 더욱 희귀하며, 조선초기의 홍(紅)·백패(白牌)도 일반적으로 전해 오는 것이 드물어 귀중한 자료로서 한국의 과거제도 연구에 도움이 된다.
 
 
적개공신 장말손 상훈교서 ..문화재청
 
조선(朝鮮) 세조(世祖) 13년(1467)에 이시애(李施愛) 난(亂)을 평정하는데 수훈을 세운 공신 45인에 대하여 일등(一等)공신 10인, 2등(二等)공신 23인, 3등(三等)공신 12인을 각각 선정하여 그 공훈(功勳)을 포상(褒賞)하였다.
 
그중 장말손은 2등으로 되어 적개공신(敵愾功臣) 교서(敎書)를 받았다. 이 교서는 크기가 세로 30cm, 가로 150cm이며 제목의 상단과 사급연월(賜給年月)인 성화(成化) 3년(三年)(1467) 11월 일의 상단(上端)에는 각각 '시명(施命)'의 보(寶)가 찍혀 있다.
 

                                                         장말손 유품
  
이 유품은 연복군(延福君) 장말손(1431∼1486)의 패도(佩刀)와 적개공신회맹록(敵愾功臣會盟錄)이다.

적개공신회맹록은 세조 13년(1467)에 이시애(李施愛)의 난(亂)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이 되어 예종(睿宗) 원년(1469) 3월에 내린 회맹록(會盟錄)이다. 이 회맹록은 비단 4폭(幅)을 이어 5단으로 하였고, 위로 첫단은 왕의 교서(敎書), 아래 4단에는 1등 10명, 2등 23명, 3등 12명 공신들의 군호(君號), 관작(官爵), 성명(姓名) 이 적혀 있다. 특히 3등 이하의 공로자(功勞者) 명단(名單)과 훈호(勳號)를 볼 수 있어 이시애 난에 참전한 인물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패도...문화재청 자료

 
패도(佩刀)에 대한 문헌자료(文獻資料)는 장덕필씨(張德必氏)가 보관(保管)하고 있는 추원록(追遠錄)에 수록(收錄)된 내용(內容)중에 본조(本朝) 어재안양공록권문(御財安襄公錄卷文)에 의하면 일등(一等)으로부터 삼등공신(三等功臣)의 명단(名單)과 간단한 약력(略歷)을 밝히고 부구물(附舊物)로는 진사시백패(進士試白牌)-로 주문(註文)에 의하면 생원백패견실부전(生員白牌見失不傳)이라 하였으며 홍패(紅牌) 은배(銀盃)-패도(佩刀)-이라 하고 주문(註文)에 도병장순금룡두도실중죽피칙량두상골중앙사처이은조결속방삽은첨자기말량복(刀柄粧純金龍頭刀室中竹皮則兩頭象骨中央四處以銀條結束傍삽銀添刺其末兩服)이라 하였으며 이상사건재가묘(以上四件在家廟)라 하였다.

또한 옥적일(玉笛一) 앵무배일쌍(鸚鵡杯一雙) 화일(和一) 이상삼건재외예손예천권봉의가(以上三件在外裔孫醴泉權鳳儀家), 어사사율일질재외예손풍기남명복가(御賜社律一帙在外裔孫豊基南明復家) 화상화계가묘봉안(畵傷花溪家廟奉安)이라 하였다.

이상(以上)과 같이 어사(御賜)된 유품(遺品) 중 종가묘(宗家廟)에 현존물(現存物)은 패도(佩刀)가 있으며 은배(銀盃)는 한국전란(韓國戰亂)을 전후(前後)하여 도란(盜亂)을 당하였다고 한다.

실(實)은 전란시(戰亂時) 현존(現存)하는 패도(佩刀)도 함께 분실(紛失)당하였으나 수년전(數年前) 장덕필씨(張德必氏)의 선친(先親)께서 현몽(現夢)에 의하여 모정(茅亭)안 땅속에서 찾아내게 되었다고 한다. 패도(佩刀)는 오랜 세월(歲月) 지하(地下)에 매몰(埋沒)되었던 관계로 패도(佩刀)의 도실일부(刀室一部)가 부식(腐蝕)되어 당초(當初)의 모습을 약간(若干) 잊고 있다.

추원록(追遠錄)에 밝힌 바와 같이 파수(把手)는 호화찬란(豪華燦爛)한 두문장식(頭紋裝飾)에 표면(表面)에는 금(金)을 도금(鍍金)하였다. 파수두(把手頭)에는 용구(龍口)를 마련하였으며 조각(彫刻)은 용(龍)의 수각(首角)을 비롯하여 휘화찬란(揮華燦爛)한 모발문(毛髮紋)과 비늘 등을 묘사하였다.

도실재료(刀室材料)는 죽피(竹皮)로 하였으며 실두(室頭)에는 상아재(象牙材)로 장식(裝飾)하였는데 도실(刀室)과 두(頭)를 고정(固定)시키기 위하여 은사(銀絲)로서 오개처(五個處)로 구분(區分)하여 결속(結束)하였는데 상아(象牙)를 결속(結束)한 은사(銀絲)는 삼조(三條)로 하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이조(二條)씩으로 결속(結束)하였다.

은사(銀絲)로 결속(結束)한 도실(刀室)의 신상(身上)에는 도봉환(刀封環)을 마련하고 결속(結束)을 고정(固定)시키기 위하여 실두(室頭)로부터 실미(室尾)에 이르도록 길게 결속장식(結束裝飾)을 하고 있다.

죽피(竹皮)의 도실(刀室)은 현재(現在) 표면(表面)과 미단부분(尾端部分)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부식(腐蝕)당하여 있는데 특히 말단부분(末端部分)은 거의 손실(損失)되어 있는 실정(實情)이다. 비록 도실(刀室)의 표면(表面)이 손상(損傷)을 당(當)하였다 하나 일부(一部) 금속제품(金屬製品)을 그대로 남기고 있어 도실(刀室)의 모습은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자료(資料)가 될 수 있으며 특(特)히 세조조(世祖朝)의 왕실(王室) 및 귀족공예(貴族工藝)에 속(屬)하는 유품(遺品)이라는데 주목(注目)할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사랑채 누마루에서 바라본 화계들. 짧은 만남이지만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장덕필 선생은 대문밖까지 나오셔서 우리보다 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배웅을 하여 여간 미안하지 않았다. 이시대에 명문가 종손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텐데 불쑥 들린 객에게도 지극히 예를 표하시는 어르신에게서 명문가 접빈객의 일면을 느꼈다.

혹 답사하고픈 님들을 위해 연락처를 남긴다(054-637-6020, 019-353-6020)

 

***** 2011년 1월 현재 장덕필님의 종손 호칭에 관하여는 다른 견해가 있음을 알려 드리며, 합의된 의견이 도출되면 수정하겠습니다*****

 

200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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