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문경시

문경...반곡리 마애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09. 7. 1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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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곡리 마애불.  마을회관 앞에 주차를 하고 길을 물으니 부처 바위라며 안내해주셨다. 마을 안길을 통과하여 잠시 발품을 팔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면 멀리 부처 바위가 보이고, 다가가는 우리를 마중하듯 앉아있던 석불이 일어서서 성큼성큼  걸어나오려고 무릎을 곳추세울 자세이다.

 

지형 때문에 유래되었을 반곡마을 뒷편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석불은 좌상이라고 하지만 하부가 불분명하여 전체적으로 투박하며 불균형하며 고려중기로 추정한다. 예전에 주변에서 다량의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터로 추측되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다만 반암사(盤岩寺)가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소발의 머리칼, 원만한 상호의 여래 좌상은 불분명한 습의, 삼도, 양손을 가슴에 합장한 듯한 수인이지만 무릎 이하는 표현하지 않았다.

 

하부뿐만 아니라 상호에도 귀가 보이지 않고, 눈도 거의 감은 듯한 실눈이며, 두상이 상체 크기와 같아보여 마애불을 조각중에 이러한 문제점을 발견하고 중단하지 않았을까?

 

 

솜씨없는 고려시대에 장군이 그렸다는 전설도 솜씨와 불심이 돈독한 장인이 새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왜곡이라고 판단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넓은 바위 중앙에 감실을 파고 불상을 새기지 않고 하필이면 왜 한편에 치우쳐 불상을 새겼을가? 이 또한 미완성불의 단초로 보인다. 중앙 본존으로 모셔도 좌우에 협시불 존치공간의 충분하기 때문에 가능한 소설이다.

 

나도 참 한심하다. 그게 뭐 문제인가? 현재에 만족하면 그만이고 반곡리 민초들처럼 지극정성 미륵으로 모시면 복받을텐데..., 고상하게 포장하여 완성 미완성을 거론하는 중생들의 피곤한 모습 보다는 마을회관 앞에서 처음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잔치집에서 가져온 수박을 권하시는 저분들의 인정과 생활이 우리보다 백배천배 행복한 삶이 아닐까?

 

점촌시

 

반곡리마애불에서 바라본 점촌시. 가슴이 뭉클해온다. 분명 저 어디에서 뛰어 놀았을 유년이 그려진다. 일곱살 이었으니 46년 저편의 기억을 떠올릴 수 없지만 집앞 철길, 일본식 건물, 대장간, 서울로 가는 길이라는 시장통의 왕만두집이 파노라마가 되어 눈앞을 스쳐간다.

 

다음에는 내아들놈을 데리고 고인이 된 아버지의 첫부임지 점촌 농협을 비롯 기억속 한 곳이라도 찾아보아야겠다. 어쩌면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여행 속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이지만 아들에게도 할아버지 삶의 여정 일부라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200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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