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양군

영양...서부리 삼층탑. 척화비

임병기(선과) 2009. 7. 6.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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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양 군청

 

영양 서부리 삼층 석탑.  영양군청 앞뜰 에 서 있으며 원위치는 전해오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안태고향을 떠나 끌려왔다고 한다.

 

지대석위에 단층 기단이지만 본디 기단인지 모호하다. 기단에는 탱주.양우주가 돋아있고  몸돌에는 양 우주가 정연하다.

 

 

3층 몸돌도 원형인지 의심스럽고 상륜의 노반은 뒤집혀 있다. 아무도 찾지 않은 산골 폐사지면 몰라도 영양군민의 심장부인 군청 뜰 석탑 노반이 뒤집혀 있어 바라보는 얼굴이 후끈거렸다.

 

 

영양 서부리 척화비. 영양군청 비석무리에 있다. 표면에는 "양이침액비전칙화주화매국(洋夷侵扼非戰則和主和賣國)"글이 새겨져 있다. 척화비에 관해 더 깊이 알고 싶으면 답사 자료집을 살펴보길 바란다.

 

 

군청 보호수 그늘아래 들돌인지 기자 신앙의 상징인지 표식없는 석물이 보인다. 우리님들은 들돌을 아는가?

 

예전 우리 시골에는 당산나무 아래 ,부락 입구, 공터 마당에는 옛날부터 전해 내려와 보존되고 있는 “들돌”이 있었다. 들돌은 다산과 벽사, 마을 청년들의 힘을 과시하는 상징물이었다. 소년은 들돌을 들어야 일꾼으로 인정 받았다. 보통 사람은 땅에서 띄우며, 건장한 사람은 무릎 높이,  힘깨나 쓰는 사람은 허리까지,  아주 힘이 센 사람은 들어서 어깨 너머로 넘겼다고 한다.

 

마을에 따라서는 재미 있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 들돌을 타지인이나, 마을에 장가든 신랑이 들돌에 걸터앉거나 발을 올렸다가는 부락 청년들에게 큰 봉변을 당하였다. 또한 청년들이 나와 들돌을 들어 보라고 한다. 그때 그 돌을 들어 허리를 하거나 뒤로 넘기질 못할 때는 청년들이 자기네 부락 힘의 상징물을 깔보는 행위를 했다고 하여 혼줄을 나고 술값 냥이나 들어야 했다"

 

 

일꾼은 간 곳 없고 꿈꾸는 옛님만 그늘아래에서 한담을 나누고 있다. 동탁의 고향이니 시 한 수 읊조리고 가련다.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2009.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