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로 약속한 분의 도착 지연으로 약 1시간 정도 여유가 생겼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더니 예전에 사진을 찍지 못한 보문사와 비지정 옛님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보문사로 향하는 길. 산지가람이면서도 평지가람 느낌의 진입동선에서 등 굽은 소나무를 만났다. 소나무 그늘 아래만이라도 비포장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사치겠지만, 마음은 급하다.
일주문 대신에 근래에 조성한 연지가 반긴다. [학가산 보문사 사적비]에 창건, 설화, 연혁에 대한 자료를 발췌해왔다.
학가산은 태백산맥 줄기 가운데 아름답고 덕성을 갖춘 영산으로 천하의 신령함이 이곳에 모이고 상서로운 기운이 널리 펼쳐져 있음을 신라 문무왕 16년인 서기676년 의상대사가 발견하고 구름을 꾸짖고 숲을 헤쳐서 산을 열고 일승(一乘)의 원지(圓 旨)를 받들어 정법의 깃발을 세워 삼승(三乘)을 회통(會通)하는 가람을 세우니 바로 이곳이 보문사이다.
모든 지말(枝末)을 근본에 계합(契合)하여 일심의 원천으로 돌아가게 하는 원지를 받들어 법륜의 길을 개창한 보문사는 1184년(고려명종14)에 이르러 보조 국사가 중창하여 누구나 정혜쌍수를 통해 각지에 오르게 하였다.
화엄의 종지를 받들어 교해(敎海)를 넓히고 선을 통해 여래밀의(如來密意)를 밝혀온 보문사는 1407년(조선태종7)에 선교불리정책에 의해 교종사찰이 되어 이때부터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선양하는 근본도량이 되었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을 당하여 극락보전과 당우 한 채만 남기고 소실되는 재난을 입게 되어 옛가람의 모습은 사라지고 시냇물 소리와 산색(山色)만이 남아 빈터를 지켰다. 병화를 입고부터 사세를 일으켜 세우는 운수(雲水)도 없었고 정재(淨財)를 희사하는 단월(檀越)도 나타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적의 발자취를 기록한 자료도 없어졌다.
고려사에 보면 보조국사가 여기 보문사에서 화엄신론을 열람하다 득도했고 보문사가 고려조의 사적을 간수했었는데 1381년(우왕 17)년 7월에 충주 개천사로 옮겼고, 1383년 6월에 죽주(현 경기도 안성국 동북부에 있는 죽산)의 七長寺 로 옮기고 공양왕2年(1390) 다시 충주로 옮겼다고 하나 그 이후 사적에 대하여는 잘 알 수 없다.
맷돌이 옛날을 말하고 있다. 보문사에는 광배도 있으니 우리님들 답사시에 뵙길 바란다.
현판이 흥선대원군 글씨로 알려진 극락보전은기단을 높게 축조하고 세곳에 계단이 설치된 3칸,*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1967년에 보수하고 단청하였으며, 1992년에 다시 중수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춘계(春溪) 장로와 두암(杜菴) 화상에 의하여 1872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띠살문 창살, 전면기둥 공포는 주심포계의 1출목으로 꾸미고, 뒷 기둥은 무익공으로 처리하여 조선 중.후기 건축으로 주심포 양식과 익공 양식이 절충되어 시대적 변화와 추이를 보여주는 전각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극락전 정면이 오픈 상태이나 예전에는 루대가 있었다고 생각되며, 사전에 준비하지 못한 답사여서 인지 못했지만 극락전 좌측의 적묵당은 인법당으로 안에는 지장보살, 현왕탱, 지장탱과 보문사의 중창주 보조 국사 지눌의 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우측 염불당은, 지대방, 공양간, 창고 등의 용도이다.
이하응 글씨로 알려진 극락보전
극락보전 후벽 벽화. 많은 반야용선을 보았지만 피안과 차안을 묘사한 그림은 처음이다. 좌측이 극락이고, 우측이 반야용선에 승선하지 못한 영가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이다.
석조 아미타 삼존불. 아미타불은 고개를 숙이고, 움츠린 어깨, 통견의 법의, 촉지인,아미타 수인이며머리가 다소 크다. 좌우협시보살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다.
아미타삼존상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개금원문(改金願文)이 발견되어 제작연대가 최소한 1811년(嘉慶 16) 이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구필서예가 동해어부 김종술의 삼성각 현판
나한전은 예전의 부속암자인 운계암이 바로 이 건물이었다고한다. 석탑은 나한전 석가 여래상의 이른바 표증석탑(表證石塔)으로 고려 명종 15년(1185) 승려 지눌이 절을 새단장하면서 나한전의 본존불인 석가여래상을 증명하기 위해, 당시 경내의 운계암 뜰에 탑을 세웠다 한다.
상기단에 세워진 과객은 유객. 답사객과 동의어 일거다.
자연암반을 지대석으로 삼고 이기단을 올렸다. 기단 면석에는 탱주를 새겼다. 상륜부는 일부가 결실되어 있으며, 몸돌에는 우주를 조각하였다.
지붕돌 받침은 4단을 두었으며, 추녀의 반전도 부드럽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계승한 고려 탑이다.
요즘 산사 금당앞에서 산능선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해질 무렵이면 미치도록 사무친다. 나이인가? 연륜인가? 수구초심이겠지?
서러움과 안온함이 수없이 교차하고 혼자 보다는 둘이면 좋겠다는 예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로맨틱한 감정이 자주 엄습한다. 노망틱???
얽매는 사람도 없건만 늘 자유롭고 싶다.
2009.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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