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양평군

양평...사나사

임병기(선과) 2009. 4. 19.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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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올리는 중에 사나사 일주문 사진이 생각나서 찾았지만 없다. 사나사에 일주문이 있었던가? 이런 의문도 태연하게 입에 올리다니. 나도 이제는 연륜(?)이 쌓인 연세인가? ㅎㅎ. 분명 일주문이 있었건만 달구지로 통과했으니 기억에 남겠는가?

 

하지만 염불보다는 잿밥이 더욱 간절한 시간이 다가오니 一柱보다는 一酒가 그리워 달구지로 一周했다고 너무나 인간적인 결론을 내리고 싶다.

 

양근군 당산계 불양비 (陽根郡 堂山契 佛養碑)...사진/침향님

 

 

일주문을 지나 사나사 중정에 이르기전. 세월의 향을 가진 비석이 보인다. 양근군 당산계 불망비로 1773년(영조 49) 지금의 양평군에 해당하는 양근군에 살던 사람들이 절에 불량답을 기증하고 이를 기념해서 세운 비석이다.

 

지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이수는 조선의 전형인 지붕돌이다. 충주 청룡사지 입구 비처럼 양근군 사람들이 사나사 중창을 위하여 계를 모아 불사에 협조했다는 내용의 비다. 전체적인 해독은 할 수 없었지만 주로 지체 놓은 대갓집 선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 같았는데 십시일반으로 정성들여 작은 보시를 한 이름조차 없었던 민초들이 더욱 그리워진다.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황희 정승의  '불언장단(不言長短: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음)'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황희정승이 벼슬하기 전에 길을 가다가 농부가 두 마리의 소에 멍에를 씌워 밭가는 것을 보고, 묻기를, "두 소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 농부가 대답하지 않고, 밭갈기를 거두고 당도하여, 귀에 대고 작게 말하기를, "이 소가 낫습니다."


공이 괴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왜 귀에 대고 말하는가 ?" 농부가 말하기를, "비록 가축이지만, 그 마음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요. 이 소가 나으면 저 소는 못한 것이니 소에게 이를 듣게 하면 어찌 불평의 마음이 없겠습니까 ?" 그리하여 황희 정승은 다시는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왜 황희 정승의 인품과 성정은 높이 평가되고 한 수 지도한 무지랭이 농투산이는 일언반구 언급을 하지 않았을까? 난 그게 늘 불만이다. 오늘 사나사 불양비 앞에서도 문득 그 생각이 스쳐간다. 바보인가?

 

 

작고 조붓한 산지 가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평지가람 처럼 중정이 넓다. 하지만 오늘은 한적하고 인기척이라고는 없다. 월요일 답사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여수 흥국사 대웅전 뒷산이 불상의 육계로 보였는데 사나사 뒷산은 후불 광배로 다가온다.

 

사나사 창건과 역사를 사찰정보에서 가져 왔다.

 

"넓은 중정은 평지 가람사나사는 여엄(麗嚴) 대경(大鏡)대사가 고려 태조6(923)년에 창건하였다. 이때 오층석탑과 노사나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한 후 절의 이름을 사나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대경대사 여엄(862~930년)은 중국에서 돌아온 후 고려 태조 왕건의 권유로 보리사(菩提寺)에 와 주지로 있었고 913년에는 용문사를 창건하였다. 따라서 당시에 그가 사나사를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한 노사나불상을 조성하고 절의 이름을 사나사라 한 것에서 이 절이 보신불인 노사나불 신앙에서 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창건 이후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절의 연혁은 알 수 없다. 고려 말기인 공민왕16(1367)년에 와서 태고(太古)왕사 보우(普愚, 1301~1382년)가 140간 규모로 중건하였던 사실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보우는 시호가 원증(圓證)으로 현재의 양평군에 해당하는 양근군에서 태어났다. 또한 일찍이 젊은 시절인 1330년대에 부근의 용문산 상원암(上院庵)에서 고행 정진하여 뒷날 국사가 되었으며, 왕사가 된 후 고향에 있는 사나사에 와 머물면서 절을 중창하였다.

 

우왕8(1382)년 12월 24일 용문산 소설암(小雪庵)에서 입적하였으며, 다음 해인 1383년에 문인(門人) 달심(達心)이 사나사에 태고의 부도를 세우고 3년 후인 1386년에는 탑비를 세웠다. 보우의 탑호는 보월승공(寶月昇空)인데, 현재 사나사에는 원증국사석종(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과 원증국사석종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가 1383년과 1386년에 각각 세워졌다. 삼각산 태고사에는 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가 1385년에 세워졌다.

 

고려 말에 들어와 보우의 주석으로 번성했던 사나사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양근군 <불우>조에 “舍那寺 在彌智山”이라 기록되어 있어 법등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뿐이다."  

 

 

사나사 주불전인 대적광전. 장대석 기단이 높다. 3*3칸 겹처마 다포식 팔작지붕이다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문수 보현보살을 협시보살로 모셨다.

 

 

옛정을 품은 배례석 부재. 석등 부재.부재.부재...

 

 

미쳐 사진에 담지 못했지만 사나사에는 "함씨각"이라는 특정 성씨를 지칭하는 전각이 눈길을 끌었다. 이는 사나사와  양근(양평) 함(咸)씨 성과의 관계를 되짚어 보면 수긍이 간다. 신라 왕권이 무너진 하대에 양근을 근거지 둔 함왕성주 함규가 왕건에게 귀순하여 후삼국을 통일 후 고려 개국 공신이 된다.

 

실제로 사나사 입구에는 함규의 탄생설화가 전해져 오는 함왕혈과 함왕성 터가 있으며 창건 시기를 미루어 보아도 고려 태조와 개국공신 함규와 사나사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사나서는 함규의 원찰로도 생각된다. 그렇다면 사나사와 "함씨각"은 1000년 지기가 아닐까?

 

 

사나사 경내의 3층탑. 탑에 관심 있는 사람은 신라계 고려탑으로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석탑 자료를 찾아보면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이라고 명기 되어있다. 사나사 삼층탑으로 칭하지 않는 이유는 용천리에서 옮겨온 탑으로 믿으면 되지만 최소한 유형문화재로 등재 가능해보이는데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이유가 궁금하다.

 

그렇다면 안태 고향과 관계없이 다른부재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듯하다. 하지만 안목이 얕은 나에게 탑신과 옥개석 부재는 헐리우고 새로히 축적 했어도 본래 부재로 보인다. 다만  지대석과 기단 사이의 부재가 지대석 상층이 아니라 기단 갑석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이 석탑은 신라계 2중 기단으로 조성되었지만 하기단 면석이 망실되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석축위에 단층 기단으로 보이지만 이중 기단으로 판단된다. 기단 갑석에는 우동이 보이고 완만하게 경사를 내었다.  상층기단 면석에는 탱주와 우주를, 몸돌에는 우주를 새겼다.

 

옥개 받침은 3단이며 물홈을 두었다. 상륜에는 노반만 남았으며, 전체적으로 초층 몸돌에 비해 상층 몸돌의 체감이 급격하다.

 

 

사나사를 중건했던 원증국사 보우(1301~1382년)의 부도. 3층석탑과 어깨동무하며 사나사의 텃주대감으로 자리하고 있다. 석종형 부도로는 거의 초기 부도이다.

 

원증국사는 고려 우왕8(1382)년 12월 24일 용문산의 소설암에서 입적했다. 부도는 입적 다음해인1383년에 문인 달심이 세웠다. 지대석 위 네면 기단에는 안상을 3개 두고, 표면에는 아무른 장식이 없다.

 

 

원증국사 보우(1301~1382년)의 탑비.탑호는 보월승공이며 탑비도 문인 달심이 부도를 세운 후 삼년이 지난 다음에 세웠다고 한다. 지대석에 비신을 꼽고 방형 기둥으로 비신을 지지하고 있으며, 옥개석은 아랫면이 둥글게 조성되어 얼핏 뒤집힌 것 처럼 보인다.

 

제액에는 圓證國師石鐘銘이라고 새겼다. 비문은 삼봉 정도전, 글씨는 의문 선사가 지었다고 하지만 마모가 심하여 해독이 어려워 보인다.

 

 

침향님이 숙달된 조교의 시범(?)을 보인다.

 

교육 내용은 특급 비밀이다.

 

 

사나사(舍那寺)의 봄...현상길

함왕산성 숨가쁘게 달려오다
백운봉 옷자락 부여잡아 여민 곳
사나사 앞뜰엔

大寂光殿의 부처님
山神閣의 산신님
咸氏閣의 함양후공
나란히 나와 앉으시어

아랫마을 윗마을
이 편 저 편 없이
얼굴 가득 웃음살 펴시네.

맞배지붕 훤칠한 일주문 밖
조팝나무 그윽한 사이
세월은 산성의 머릿돌로 자라고,

몽고를 돌려세운 옛 님의 땀
咸王穴 샘물로 되솟아
역사 맑은 줄기 따라
미리내를 이루었네.

즈믄 해 숨 가쁜 고개
올라서는 나비들에게
튼튼하라 지친 날개 적셔 주시며.
산 벚꽃도 불러 내려 세례 주시며.

사나사에 가 보셨나요?

 

200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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