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양평군

양평...옥천리 석탑. 당간지주

임병기(선과) 2009. 4. 18.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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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선 오류를 지적하신 침향님의 코스로 일사천리로 달렸다. 양수리를 거쳐 다다른 옥천면은 냉면맛으로 수도권에 알려진 마을이라고 했다. 옥천지서 뒤 소공원이 조성된 냉면집 마당 곁 옥천에 3층탑은 위치했다. 본래 위치가 아니라 옮겨온 석탑이다.

 

소공원에는  허씨가문의 며느리에 대한 효행비가 건립되어 있다. 양평곤 홈페이지에 의하면 "신라때 허씨집안의 며느리가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곤궁한 살림을 하던 중 어느날 양식이 떨어져 크게 고민했다. 그녀는 겨우 개가 먹고 토한 보리쌀을 구해 시아버지의 밥상을 차릴 수 있었다. 이 때 갑자기 뇌성과 함께 비가 쏟아지자 두려운 나머지 엎드려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비가 그친 뒤 눈앞을 보니 금은보화가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가세가 융성해지고 시아버지를 더욱 효성으로 모셔 마을 사람들이 이 효행비를 세웠다고 한다."

 

 

수년 전 옥전리 부락에서 발견되어 초등학교 교정에 현위치로 옮겼으며 불두가 멸실된 상태였는데 동자상으로 모셨다 . 그런데 영 탑이 마음에 들어 오지 않았다. 왜일까?

 

 

 

이제 원인을 추적해보자. 모든 자료에는 분명 3층탑으로 기록되어 있건만 옥개석이 4개로 본래는 5층탑에서 옥개석 한개가 멸실된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찬찬히 보면 오히려 3층탑으로 보인다. 누가 복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널리 회자되는 포항 법광사지의 전철을 답습한 것은 아닐까?

 

복원하신 분은 기단 갑석을 1개층으로 계산하여 친절하게도 5층탑으로 복원한 것 같다. 본래 탑 부재는 기단부와 1층 몸돌, 3개 옥개석 이며 2.3층 몸돌과 4층 몸돌과 옥개석(?)은 새로 만들어 넣은 것으로 보인다. 더욱 웃지 못할 일은 초층 몸돌의 우주와 탱주를 모방하여 2~4층 몸돌을 정확하게 4등분한 선을 그은 것이다. 애초부터 우주와 탱주 개념을 몰랐던 모양이다.

 

문화재청과 양평군의 재검증을 기대해 본다. 

 

 

옥천석불좌상. 석탑옆에서 옥천을 지키고 있는 듯 하다. 소발,볼이 넉넉하며 목이 없어 보인다. 두손은 가슴에 모으고 입술과 코는 정연하지 않다. 조선시대에 조성된 나한상으로 생각 된다.

 

 

하마비.

 

조선시대 양근 관아 앞에 조성된 하마비인지 아니면 옮겨온 비인지 분명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

 

 

방방곡곡의 당간지주를 애인으로 삼은 침향님은  진입 방향을 앞에 두고도 뱅글뱅글 돌고 돌아서 옥천 당간지주로 방향을 잡는다.

 

-. (내가 질문했다)아니 직진하면 되는데 왜 그러세요?

-. (강한 톤으로)나는 찾아갔던 방향으로 가야지 그러지 않으면 헤매거든.....

-. ㅋㅋㅋ

 

옥천리 마을에 짝을 잃고 홀로 독수공방으로 지낸다. 멍멍이 놈들은 왜그리 악다구니를 부리는지 원!!

멸실된 1기는 일제강점기에 쪽바리 경찰서장이 지주 1기를 양평읍 양근리 소재 갈산으로 옮겨,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새겨 세웠다고 전해온다.

 

 

당간지주  상·하 두 곳에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구를 설치했다. 상부 바깥쪽으로 모죽임하여 부드럽게 활모양을 내었다. 다른 문양은 보이지 않는다. 

 

조성시기가 나말여초로 알려지고 있으며, 옥천리와 용천리일대에 신라말이나 고려 초에 창건된 대원사가 있었다고 한다.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때는

짝을 찾아 당당하게 객을 맞이했으면 좋으련만,

 

짧은 봄~날에는 감상적인 사고의 유희를 허용하지 않아 길을 재촉했다.

 

200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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