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안성시

안성...청원사

임병기(선과) 2009. 4. 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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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이 참으로 우습다. 어느님이 올린 청원사 탑 사진을 보고 이번 안성 답사에 꼭 들리리라고 다짐했었다. ㅎㅎ 참 도착하고 보니 불과 2년전에 다녀왔던, 간단히 답사기도 올렸던  절집이어서 실소를 금할 길 없었다. 그렇구나 나도 이제는 추억을 먹고사는 나이가 되었구나라고 새삼 느꼈다.

 

"청원사는 고려시대에는‘청원사(淸願寺)’,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는‘청원사(靑原寺)’로 불리다가 18세기에 들어와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산과 절의 명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 즉 병자호란 때 의병 1,000명이 이곳에서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구하게 되어 산 이름을 ‘天德’이라 고쳐 불렀고, 산골짜기 언덕 안으로 푸른 안개가 끼어 있었으므로 청원사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청원사에는 다음과 같은 또 다른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옛날 이곳에서 불도를 닦던 스님이 명절이 되어 팥죽을 쑤려고 하였다. 그러나 불을 때어 음식을 한 지가 오래되었던 스님은 부처님께 공양할 팥죽을 쑬 수 있는 불이 없었다. 그래서 산을 내려가 마을에 가서 불씨를 얻어와 절에 돌아와서 대웅전에 들어갔더니 벌써 부처님의 입에 팥죽이 묻어있더라는 것이다." 출처/한국전통사찰정보

 

 

2년전과는 다른 대웅전. 전면 양쪽에 석등이 있었으며 화단을 가꾸었었다. 흐튼돌막쌓기 기단, 정.측면 3칸 다포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하지만 후면은 주심포에 홑처마로 청원사의 사적을 품고 있다.

 

남도 해안가 사찰이 임란의 피해로 말미암아 복원 과정에서 전면은 옛부재를 활용하고 후면은 새로히 조성한 예가 많은 것 처럼 청원사 대웅전도 숨겨진 내력이 있을 것이다. 삼분합 띠창살도 다른 창호에 비하여 궁창이 높아 이채롭다.

 

 

대웅전 삼존불. 복장유물로 인해 고려 충렬왕때 조성된 불상으로 추측되는 본존불은 지불로 알려져 있다. 협시불은 관음과 대세지보살로 본존은 아미타불이나 미타 수인이 익숙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대웅전 현판도 극락전이 옳을 것이다.

 

 

사진 좌측이 대방으로 본래는 루하진입이 가능한 전각형태로 여겨진다. "정면의 ‘天德淸源寺’라 쓴 편액의 한쪽에 ‘隆熙二年戊申四月日 光山金人應洙九歲書’라는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건물도 1908년 무렵에 지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칠층탑. 단층기단 측면과 갑석에 안상이 보이고,  갑석에 앙련이 피어 있다. 탑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어 있고 옥개석에는 각각 다른 숫자의 받침이 보인다. 조선초기 탑으로 보인다.

 

3층탑은 사진 우측 기단 위에 있었던 탑으로 기억된다. 많은 부재가 멸실되었지만 기단 갑석의 복련이 뚜렷하다. 7층탑보다 전기에 세워진 탑으로 추측한다.

 

사랑은 때로 간직할 때가 더 아름다울 수가 있다. 첫사랑을  성년이 된 후에 만나 후회한 적은 없었던가? 청순하고 수줍음 많든 소녀가 왈패 아줌마가 되어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실망감에 좌절감을 맛 본 경험은 없었던가?  하지만 청원사는 첫사랑 그녀가 변치 않은 자태로 내게 슬며시 다가온 듯하여 기억에 오래동안 자리할 것 같다..

 

200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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