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안성시

안성...굴암사 석탑. 마애약사.선각여래

임병기(선과) 2009. 4. 2.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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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양동 미륵 근처에 차를 세워 두고 3명이 나의 달구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제야 안성 답사가 시작되는 기분이다. 이전에 두 번이나 답사한 안성이지만 그건 나의 시각일 뿐이고 골골이 내려 앉은 사람의 이야기, 달빛에 젖은 설화, 즉 안성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시각속으로 빠져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문화유산 해설사인 진영숙님의 자근자근하고 분명한 그러면서도 옛향기를 가미하여 우려내는 안성 이야기와 우리문화유산 설명은 맛깔스런 음식처럼 질리지 않고 자꾸만 식탐을 북돋우는 묘한 매력이 있으니 금상첨화격이다.

 

진영숙님이 문득 질문을 던진다.

-.편운 선생님 아세요?

-.???(짧은 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片雲(조각구름). 조병화 시인의 호 입니다. 선생님의 고향이 안성이며 우리가 가는 굴암사는 시인의 

  모친이 다녔던 원찰입니다. 구름조각. 조각구름 호가 참 아름답죠?

-.아~~. (무식을 만회하기 위해)고교시절로 재빠르게 영상을 돌려보았지만 베레모를 착용하고 마도르

  스 파이프를 입에 문 시인 얼굴은 뚜렷히 떠오르건만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어 줄줄줄 암기했던 "의

  자"는    입가에 맴돌지도 않더라.

 

의자...조병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굴암사. 대한불교 법상종에 소속되어 있으며 고려 때 창건된 사찰로 전하나 사적이 없어 불분명하다.

 

 

기단이 멸실된 3층탑. 자료에는 고려 탑으로 기록했지만 오히려 조선 후기 탑으로 보여진다.

 

마애약사여래, 마애선각여래 보호각

 

편운선생의 모친께서도 저기 보호각 속에 모셔진 마애불에 시인의 건강과 왕성한 창작활동을 위해 손금이 닳도록 빌고 빌었을 것이다. 훗날 어머님이 세상 소풍를 마치고 귀천하신후 시인은 굴암사를 찾아어머님을 그리며 "굴암사"를 남기셨다고 한다.

 

(안성의 굴암사는 산길이 아니라는 의문이 들어 조사해 보았더니 가까운 용인시 이동면에 용덕사(龍德寺/옛님방에 답사기 있음)를 굴암절이라고 했다. 또한 송전초등학교도 용인시 이동면에 소재한다.워낙 지명도 있는 분이 마애불과 더불어 굴암사 시를 인용하여 불교신문에 연재한 글이 유포되어 사이버에 안성 굴암사로 그렇게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병화님의 "굴암사"는 용인 용덕사로 보고싶다)

 

굴암사...조병화

 

옛날 송전공립보통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원족을 갔던 굴암사,

 

  사푼사푼 잘도 올라갔던 생각이
  다시 찾아든 산길
  하두 험하고 가파라서 쉬엄쉬엄 오르매
  옛날은 까마득하다

 

  허이허이 오르는 산길
  절은 하늘 위에 있다

 

  아, 어머님, 어머님은 너무나 높은 곳에
  계십니다

 

  할 때, 한 소년이 사푼사푼
  내 곁을 앞질러 오른다
  나를 힐끗 뒤돌아보며

 

 

우리님들은 굴암사 답사시 조병화 문학관도 동선에 포함하길 바란다.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 산337 조병화 문학관

 

조병화 문학관은 문화관광부에 의해 난실리 마을이 문화마을로 지정되면서 국고의 지원을 받아 1993년에 지은 건물로 조병화 시인 관련 기획전시물, 저작도서 및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대지 315평에 연건평 85평 규모의 2층 건물이며 8평 규모의 부속건물(관리동)이 있고 1층에 전시실 3실, 2층에 20평 규모의 세미나실을 갖추고 있다.

 

편운재는 1962년 조병화 시인의 어머니 진종 여사께서 별세하자 그 이듬해인 1963년에 어머니의 묘소 옆에 세운 묘막으로, “살은 죽으면 썩는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벽에 새겨 놓은, 시인의 효심을 읽을 수 있는 집이다. 이 건물 안에는 편운 시인이 생전에 작업실로 썼던 혜화동 서재를 원형 그대로 옮겨와 보존하고 있다.

 

 

청와헌은 1986년 조병화 시인이 인하대학교 대학원장으로 정년퇴임하고 기공하여 이듬해 완공해서 입주한 시골집, 들판 가의 집이어서 ‘개구리 소리를 듣는다.’ 하여 청와헌이라 이름하고, 가끔씩 집필 또는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청와헌 뜰에 세운 시비는 편운 시인의 묘비명으로서 ‘꿈의 뜻에 따라 2003년 4월 25일 시인의 49재에 제막했다.

 

지장보살?

 

마애불 입구에 자리해 있다. 답사를 할수록 모르는 도상과 석조물이 더해가니...

 

 

마애약사여래좌상. 큰 바위에 양각되어 있다. 소발. 볼은 도톰하고. 삼도가 보인다. 법의는 통견이며귀는 어깨까지 길게 표현했다. 결가부좌. 왼손에 약함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불이며 알 수 있으며,  불신은 물론 바위 전면에  호분으로 칠해져 있다.

비바람을 막기위해 지은 보호각이 불상 두광을 가렸고. 불전함 때문에 멋진 대좌가 숨겨져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고 동행한 건축전공의 노을누리가 보호각 문제점을 지적햇다.

 

 

선각마애여래좌상. 약사여래불 측면을 향하고 있다. 마모가 심하기도 하지만 저부조의 선각으로 윤곽은 뚜렷하지 않지만 두광.신광이 보인다 . 야사여래불 처럼 삼도. 통견의 법의 귀는 길며. 수인은 분명하지 않다.

 

가슴 한가운데를 비롯 여러 곳에 균열이 보이며, 오른쪽 물자국 흔적을 동행한 노을누리는 보호각을 잘못 설치하여 녹물이 흘러 내렸다고 예리하게 들쳐냈다. 늘 가슴속에 품고 있는 말이 스쳐 지나간다.

 

三人行 必有我師

 

200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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