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정월 초하룻날 아들놈과 단둘이 답사 했었다. 살을 애이는 바람과 동장군의 기승에 마음마져 얼어 붙었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날 이후 체인스모크이든 이몸이 담배를 끊었으니 당간지주와 석탑의 도움이라 믿고 싶다.
만일사 가는 길 누리에게 넌지시 물었다. 천흥사지 당간지주와 탑 보았냐? 못 보았다는 답과 동시에 그럼 가야지 뭐!! (도중에 있건만 큰 선심이나 써려는 듯). 고약한 성질의 소유자라서 죽어도 답사기는 재탕하지 않는다(요즘엔 원칙도 허물어져 간다). 하여 문화재청 자료로 대신한다.
원위치에 원상대로 60cm의 간격을 두고 양지주< 兩支柱 >가 동서로 상대하고 있다. 지주는 이중 기단 위에 당간< 幢竿 >과 지주< 支柱 >를 받고 있었던 것이나 기단은 상·하층 모두 파괴되어 흩어졌다. 간대석< 竿臺石 >도 같은 형편이다. 그러나 기단부 간지< 間地 >에 안상< 眼象 >을 조각 장식한 수법이나 양지주 각면에 선문< 線文 >을 조각해낸 것과 치석< 治石 >한 조법< 彫法 > 등의 각부 양식수법은 전체적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의 전형적인 형태에서 퇴화한 일면을 보이고 있어 조성연대를 고려왕조< 高麗王朝 > 초반기< 初半期 >로 보게 한다.
특히 이곳 천흥사지< 天興寺址 >에서 출토된 성거산< 聖居山 > 천흥사< 天興寺 > 동종< 銅鐘 >의 명문< 銘文 >에 의하면 고려< 高麗 > 현종< 顯宗 > 원년(1010)에 주조< 鑄造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당간< 幢竿 >지주도 같은 시대에 사찰< 寺刹 >을 창건하면서 같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볼 때 건립연대는 현종< 顯宗 > 연간인 서기 1010년 전후일 것으로 본다.
기단 안상
안상 세부
지주의 바깥 면 중앙 선
앞쪽 집은 허물었지만 정면에 보이는 가옥도 천안시에서 매입했으면 좋겠다.
이 석탑은 신라시대(新羅時代) 석탑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高麗時代)의 5층석탑이다.
안상
몸돌과 옥개석
2009.03.15 |
'충청남도 > 천안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안...양령리 향나무 (0) | 2013.02.26 |
---|---|
천안...만일사 석탑.석불 좌상.마애불.금동관음보살 (0) | 2009.03.30 |
천안...태조산 성불사 마애 삼존.마애16나한.마애여래 (0) | 2009.03.27 |
천안...삼용동(천안 삼거리) 석탑 (0) | 2009.03.26 |
천안...용화사 석불입상.삼층탑 (0) | 2009.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