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천안시

천안...천흥사 당간지주. 오층석탑

임병기(선과) 2009. 3. 28. 00:13
300x250
300x250

 

 

5년전 정월 초하룻날 아들놈과 단둘이 답사 했었다. 살을 애이는 바람과 동장군의 기승에 마음마져 얼어 붙었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날 이후 체인스모크이든 이몸이 담배를 끊었으니 당간지주와 석탑의 도움이라 믿고 싶다.

 

만일사 가는 길 누리에게 넌지시 물었다. 천흥사지 당간지주와 탑 보았냐? 못 보았다는 답과 동시에 그럼 가야지 뭐!! (도중에 있건만 큰 선심이나 써려는 듯). 고약한 성질의 소유자라서 죽어도 답사기는 재탕하지 않는다(요즘엔 원칙도 허물어져 간다). 하여 문화재청 자료로 대신한다.

 

 

원위치에 원상대로 60cm의 간격을 두고 양지주< 兩支柱 >가 동서로 상대하고 있다. 지주는 이중 기단 위에 당간< 幢竿 >과 지주< 支柱 >를 받고 있었던 것이나 기단은 상·하층 모두 파괴되어 흩어졌다. 간대석< 竿臺石 >도 같은 형편이다. 그러나 기단부 간지< 間地 >에 안상< 眼象 >을 조각 장식한 수법이나 양지주 각면에 선문< 線文 >을 조각해낸 것과 치석< 治石 >한 조법< 彫法 > 등의 각부 양식수법은 전체적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의 전형적인 형태에서 퇴화한 일면을 보이고 있어 조성연대를 고려왕조< 高麗王朝 > 초반기< 初半期 >로 보게 한다.

 

특히 이곳 천흥사지< 天興寺址 >에서 출토된 성거산< 聖居山 > 천흥사< 天興寺 > 동종< 銅鐘 >의 명문< 銘文 >에 의하면 고려< 高麗 > 현종< 顯宗 > 원년(1010)에 주조< 鑄造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당간< 幢竿 >지주도 같은 시대에 사찰< 寺刹 >을 창건하면서 같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로 볼 때 건립연대는 현종< 顯宗 > 연간인 서기 1010년 전후일 것으로 본다.

 

기단 안상

 

안상 세부

 

지주의 바깥 면 중앙 선

 

 

앞쪽 집은 허물었지만 정면에 보이는 가옥도 천안시에서 매입했으면 좋겠다.

 

 

이 석탑은 신라시대(新羅時代) 석탑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高麗時代)의 5층석탑이다.

기단은 이중기단(二重基壇)을 갖추었는데, 하층기단(下層基壇)은 지대석(地臺石), 면석(面石), 갑석(甲石)으로 구성되었으며, 면석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없이 1면에 7구씩의 안상(眼象)을 새겼다. 상층기단(上層基壇)의 면석에는 4개의 우주만이 새겨져 있다. 탑신부(塔身部)에서는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되어 있으며, 체감률은 작은 편이다. 옥개석은 평박하고 낙수면(落水面)은 경사가 완만하며 전각(轉角)의 반전(反轉)이 큰 편이다.

현재 상륜부(相輪部)는 전부 없어서 원래 상태를 알 수 없으나 석탑 자체에서 나타나는 형식과 양식에서는 웅려한 수법을 보이고 있고, 석재의 구성에서도 정제된 수법이 뚜렷하다. 또한 장중한 기품을 보이게 하며 양식적 특징을 갖춘 탑으로 천흥사(天興寺) 동종(銅鐘)(1010)과 시대를 같이하는 고려(高麗) 초기(初期)의 탑이다.

 

 

안상

 

몸돌과 옥개석

 

 

2009.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