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정읍시

[스크랩] 정읍...백운암 석불입상. 천곡사지 칠층탑

임병기(선과) 2008. 11. 1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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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암 석불 입상

 

마을입구에서 네비가 인도한 방향으로 접어 들었지만 막힌 길이다. 우습게도 창고를 멋진 전각으로 조성하여 멀리서 바라보면 불상 전각으로 착각하기 쉽다. 다시 돌아나와 다른 방향으로 잡았더니 축사가 늘어서 있다.  포기하려다 할머니에게 물어 다시 찾았지만 또다시 길은 막히고 이제는 오기로 찾고 싶었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은 후 뵈은 백운암 석불 입상은 상처투성이로 텅빈 암자를 지키고 계셨다.

 

"영주지(瀛州誌)에 의하면 백운암(白雲庵)은 고려시대부터 있어온 절인데 임진왜란(壬辰倭亂)에 미륵(彌勒)이 나타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의 암자(庵子)는 1949년 송곡(松谷) 최재석(崔在錫)이 중건(重建)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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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발, 삼도가 분명하나  얼굴은  잘려져  복원하였으며  훼손되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이다.

 

법의는 통견이며 어깨부분도 마모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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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대는 1개돌이며 하대에는 안상을 표현하였고 위에는 연꽃이 피었다. 재미있는 것은 사진에 보이듯 발가락을 좌대에 조각한 사실이다.

 

입불에 발가락을 붙이면 불신에 비해 약하여 파손이 잘되는 단점 때문에 별도로 조각 끼워 넣기나 좌대에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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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런 모습인가?

 

눈물이 핑 돈다.

 

1000년 후 찾아 올 나를 알고 계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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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곡사지 7층탑

 

진입로가 잘 가꾸어진 탑이다. 내가 바라는 문화재 진입동선이며 넓은 주차장도 더없이 기분 좋다. 멀리서 보이는 탑 상륜부는 잊혀진 유년의 기억을 아련히 되짚도록 객의 마음을 순화시킨다.

 

그래. 맞어!! 여러 자료에 언급이 아니라도 저기 전라도 화순 땅 운주사 탑이 뇌리를 스쳐가는 모양새다. 운주사의 비밀코드를 정읍땅 망제동에서는 찾을 수 없을까?

 

망제동 산기슭에 위치한 탑.  지대석 위에 장식이 없는 단순하고 거친 1개돌로 단층기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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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신부는 초층탑신으로부터 3층탑신까지를 제외한 나머지 탑신과 모든 옥개석이 각각 한 돌로 조성되었다. 초층탑신은 유난히 세장(細長)하고 방주(方柱)같은 4매석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에는 우주의 표현이 없다. 그 위의 2·3층탑신석은 각각 2매의 석재로 조성되었다. 매 층 각 면에는 양 우주가 각출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초층탑신이 유난히 높게 조성되었고, 2층 이상은 체감률이 적은 탓에 석탑 자체가 고준(高峻)해졌다.

 

옥개석은 초층부터 7층까지 같은 형태로 조성되었는데, 너비가 좁고 두꺼워서 둔중한 느낌을 준다. 옥개석 상면은 평박하여 낙수면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으나, 합각부의 선은 에리하게 조성됐다. 정상에는 각형 1단의 받침을 조출해 상층의 탑신석을 받고 있는데, 7층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양식을 보이고 있다."

 

 

안내문의 오류!!

 

그렇습니다.  "2층은 두개의 판석으로 짜여졌고, 3층이상은 하나의 돌"====>"2.3층은 두 개의 판석으로 짜여졌고, 4층 이상은 하나의 돌" 이렇게 수정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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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층 옥개석의 하면에는 수평으로 전개된 추녀에 얕은 낙수홈이 모각되고 받침부에는 연화문이 조각되었다. 연화문은 모두 양련으로 추녀부의 측면부터 탑신에 맞닿은 안쪽 면까지 가득히 조각한 까닭에 자연스레 그 문양이 세장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1변에 4판씩 모두 16판의 양련이 조식되었는데, 판 내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러한 연화문장식은 전각부에 미세한 반전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옥개석의 폭이 좁아지는 느낌을 주어 전체적으로는 석탑이 더욱 세장하면서도 고준해보이는 효과를 주고 있다.

 

이처럼 옥개석의 하면에 연화문을 조각하는 것은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남원 실상사 백장암삼층석탑에서 볼 수 있는데, 고려시대에도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은 아니다. 상륜부재는 모두 없어지고 7층옥개석 위에 노반석 하나만 놓여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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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보았다. 7층탑도 나처럼 헤어짐을 슬프하듯 솔뒤에 숨어 눈물 훔친다. 짝도 그렇게 보냈을까? 7층탑 옆에는 부인인 5층탑도 있었다고 한다. 1925년 쪽바리들의 시샘에 부부는 생이별하였다. 혹여 강제로 이별한 부인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학처럼 긴 목이 되지는 않았는지...

 

우리가 한없이 부끄러운 날이었다. 
 

2008.10.04

 

인용부분은 문화재청, 정읍시청 홈페이지에서 가져 왔다.

[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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