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리 탑
답사 동선을 수립하면서도 정읍 칠보면 무성리에 대한 기대가 컸다. 지금의 행정단위와 비교되지 않겠지만 서원 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무성서원,선비 박물관이 소재하고 있어 과거시절 만만치 않은 고을으로 짐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인지 공사중인 무성서원은 문이 닫혔고 선비 자료관 역시 외출중이란 안내문만 출입문에 걸려 있었다. 자주 올 수 없는 기회지만 어쩌겠는가? 설상가상으로 무성리 불상도 개인사찰에 봉안되어 주인이 외출시에는 감금(?)되어 답사객에게는 화중지병었다.
그러니 답사전에 꿈꾸었던 茂盛한 기대는 일장춘몽 처럼 無成이 되어버린 武城里 답사였다.
무성리탑도 우여곡절 끝에 찾았다. 문화재청 자료에는 높은 토축위에 자리한 것으로 표기되어 무성리 탑이 아닌 줄 알았다. 이런 오류도 중앙정부의 무성의도 문제지만 정읍시도 문화재청에 수정을 요구하여야 한다.
지대석, 1층 기단, 1층 몸돌이 2.3층에 비해 과장되었다. 기단과 몸돌에는 우주가 양각 되었고,옥개받침은 3단이다. 옥개석은 얇고 모서리에서 약간 반전이 보인다. 상륜에는 노반 앙화가 남아있다.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한다.
무성리탑 이력과 관련 기념비문을 정읍시 홈페에지에서 옮겨온다.
"유구한 세월을 내려오다 근세(近世)에 와서 1935년 올해(乙亥)에 때마침 칠보면 주재소(七寶面 駐在所) 신축비(新築費) 부족액(額) 500량(五百兩)을 충당하려고, 본 삼층석탑 (本 三層石塔)을 일본인(日本人)에게 매각(賣却)하여 바야흐로 해채(解體)할 즈음에 본 면 시산리(詩山里) 남양후인(南陽后人) 홍순석(洪淳錫)씨가 경작답(耕作沓) 삼두락(三斗落)을 당시 칠보 금융조합(金融組合)에 저당(抵當)하여 금 오백량(金五百兩)으로 이를 환퇴(還退)하였으니 이제 우리는 그 숭고한 민족정신(民族精神)을 새삼 추모(追慕)하는 바이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danpoongsanjang/6928914
문닫힌 개인사찰 전각속에 모셔진 무성리 불상이다. 자료는 정읍시 홈페이지에서 가져오니 비록 나는 뵙지 못했지만 우리님들 답사시에 참고하길 바란다.
"불상은 요사를 겸한 법당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불상의 하부에는 불단이 만들어져 있다. 원래는 서 있는 부처인데, 허리 아래는 땅에 묻혀 있다.
피향정 하마석. 정자에도 하마석을 세우는가?
피향정은 호남 제일의 정자라고 하는데, 호남제일의 루원은 광한루원인가? 피향(披香)은 여름날 상·하연지(上·下蓮池)에 연꽃이 만발하면 향기가 정자에 가득하여 피향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피향정을 찾던중 농로에서 만나 나의 여러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준 경찰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2008.10.03 |
'전라북도 > 정읍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정읍...유선사. 남복리 오층탑. 미륵암 석불입상 (0) | 2008.11.15 |
---|---|
[스크랩] 정읍...은선리 삼층탑, 장문리 오층탑 (0) | 2008.11.14 |
[스크랩] 정읍...원백암 마을 남근석. (0) | 2008.11.12 |
[스크랩] 가을 기행...정읍. 장성 백양사 (0) | 2008.11.03 |
[스크랩] 가을 기행...정읍 (0) | 2008.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