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리 수정마을에 위치한 운수사는 옛날옛적 도승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워낙 숲이 좋고 뒷산의 혈맥과 앞의 냇물이 흐르는 중간에 마을이 위치한 것을 보고 이곳에 절을 지어 인간의 도를 깨우치려 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되었으며, 수정마을은 성수면 고덕산 산세가 험하여 화재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이 재난을 막기 위하여 고덕산이 보이지 않도록 나무를 심어 수정(樹亭)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오래전에는 숲이 울창하였다고 전해지지만 현재는 몇그루 고목만 남아 있다. 아마 마을 숲의 기능이었던 모양이다. 숲과 불상의 이중장치로 사악한 기운 근접을 봉쇄하려는 민초들의 염원을 읽을 수 있다.
이도리 미륵불
백제시대 석불로 여러자료와 안내문에 표기되어 있지만 정확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오히려 비보불이면 조선시대에 조성된 민불은 아니었을까?
소발도 나발도 아닌 좌우 대칭으로 가리마를 내어 눈을 즐겁게 한다. 옷깃은 고추 세워 목을 가렸다.
통견의 법의를 지나치게 큼직한 장식으로 묶어 어색해 보인다.
바르게 앉은 불상의 하부는 선각으로 얕게 표현하였고 두손을 하늘로 향한 수인이며 왼손에는 지문도 새겨 놓았다.
승각기에 단추 모양의 장식도 이채롭다. 보면 볼수록 민불 같은 느낌 지울 수 없다.
학정리 가는 길
예전 답사길에 오르면 찾아가는 길, 동선 수립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었는데 요즈음 네비만 맹신하고 길을 나서지만 낭패보기가 한두 번 아니다. 이번 남도기행에서는 엄청나게 고생(?)했다. 네비를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처음으로 안내한 마을에는 석불이 없었다. 촌부는 다른 학정리 마을을 가리켜 주었지만 그 곳에서는 네비가 멍텅구리가 되어 헤매고 헤매어 다른마을 에서 절이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찾아 들었지만 진입하는 일도 여간 녹녹하지 않았다.
우리 지자체에서는 문화재 입간판을 큰 도로변에 세우는 것에 그치지 말고 갈림길 마다 작은 이정표를 설치하여야 한다. 입으로만 관광 지자체를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문사
길고 긴 논길,산길을 거쳐 도착한 곳. 새롭게 근래에 단장한듯 한 성문사 대웅전이 반긴다.
출발전 수집한 자료에는 하반신이 묻힌 상태로 밭에 있다고 표기하였지만
스님도 출타중인 텅빈 절집 대웅전에 불상은 계셨다.
학정리 석불입상
고려시대 불상으로 알려졌으며, 근래 발굴하여 성문사에 모신 듯했다.
최근에 조성한 흰색의 광배가 어색해 보인다.
얼굴에 비해 눈과 입은 작게 표현하였다. 통견의 법의, 소발, 큰 육계에 둔중한 느낌이다.
두손 아래부분은 땅에 묻힌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희미하지만 손에 약함(?)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불로 알려져 있다. 이불상에도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어느 날 풀을 먹다가 달아난 소를 발견하고 화가 난 농부가 소에게 돌을 던졌으나, 잘못하여 석불의 코를 맞혀 석불의 코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농부는 그날부터 병을 앓다가 죽었는데, 주민들은 농부의 죽음을 석불이 내린 벌이라 생각하고, 석불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아무튼 전각속에 봉안했으면 좌대를 높게 하든지 공양탁자를 낮추든지 하여 하반신이 보이도록 했으면 좋았겠다. 땅속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아직도 땅속에 묻힌듯 하반신은 감추어진(?) 모습이다.
2008.1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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