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충주시

[스크랩] 충주...지당리 석불, 오갑사지 석불, 강천리 석불

임병기(선과) 2008. 9. 2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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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당리 석불입상

 

큰길가에서는 바로 방향을 잡았지만 마을에는 안내표시판이 보이지 않아 집집마다 사람을 불러보았으나 텅빈 집이다. 무작정  산쪽으로 향하다 경운기를 탄 주민에게 여쭈었더니 마을 앞 과수원 근처에 있다고 했다.
 
참으로 묘한 분위기의 절인지 굿당인지 민가인지 헷갈리는 가옥(?)에 위치해 있었다. 개인 소유의 가옥에 불상이 위치했더라도 전면을 개방 또는 건축물을 제거하는 방안이 수립되었으면 좋겠다.안내문에 의하면  불당.산제당.미륵당 이 있어 이마을을 삼당마을로 부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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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발, 민초들에게 자식을 점지해주신 상흔이 가득한 눈과 코는 마멸이 심하지만 풍만한 얼굴에 볼이 볼록하고 입술은 두툼하다. 수인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였지만 아미타불의 변형 수인 처럼 보인다. 목은 보수하였지만 삼도를 표현했다. 지당리 불상에는 아래의 달빛에 젖은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의 일이다. 충주를 공략한 왜장「고니시 유끼나가」예하의 왜병들이 탄금대 작전이 있은 뒤에 다시 서울 침공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이다. 이곳 삼당에 도착한 부장「오다미쓰오」라는 자가 이곳에 들어와 불당을 살폈는데 불상이 왜장을 보자 서서히 외면을 하는 것 같이 보였다. 노한 왜장은 발길로 불상을 차서 불당에서 곤두박질을 시킨 다음 옆으로 쓰러진 불상을 깔고 앉아 즉시 스님을 보고 밥을 해 오라고 위협을 했다. 

그날밤 50여명의 군졸들과 함께 불당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왜장은 쓰러진 석불을 베개 삼아 베고 잤다고 한다. 그날밤 이곳에서 멀지않은 삼당산에서 은거하고 있던 의병들이 밤에 동정을 살펴 보니까 마을밖에 있는 사찰에서 많은 담뱃불이 반짝 거리므로 접근해서 보니까 왜병 50여명이 잠을 잘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의병들은 잠이 들때를 기다렸다가 불시에 급습을 해서 왜병들은 거의 전멸을 시키다시피하고 오갑산으로 숨어들어 갔는데 불상을 베개삼아 베고자던 왜장은 입에 와사증이 일어나 입이 귀밑까지 치켜올라가는 바람에 별실에서 고민을 하다가 공교롭게 살아남게 되었다. 자기 부하가 전멸을 다하자 왜장은 불당에 불을 질러 버리고 하산하다가 계곡에서 굴러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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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갑사시 석불 동네 뒷산

 

길이 끝났다. 강원도 산골 답사시에도 가끔 접하는 막다른 길뒤로 산이 손짓한다.충주시 앙성면 모림리 동막 마을, 불현듯 6.25 전쟁 발발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피아의 군사들을 만나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휴머니즘을 그린 영화 동막골 사람들이 생각났다.

 

그런 느낌의 산골 마을이지만 낯선 이방객 출현을 경계하듯 한적한 분위기를 깨고 개소리가 온마을을 휘감고 있다. 악다구니를 부리는 놈들에게 크게 소리 한번 질렀더니 무리들이 순식간에 꼬리를 내린다. 요즘 보기 드문 시골개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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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갑사지 석불좌상

 

동막마을 개인주택 창고 앞에 위치한 불상은, 하기단에 복련, 팔각 간주석에는 우주가 보이고 상대에는 앙련을 새겼다.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으로  얼굴 일부,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광배는 멸실되었고, 목은 짧으며 두꺼운 우견편단의 법의 부드럽고, 하체는 안정감이 있다. 상체와 부조화며 수인은 확인할 수 없지만 항마촉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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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갑사지에서는 중국 금(金)나라 연호 '명창3년임자(明昌三年壬子)'와 '오갑사(烏岬寺)'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평와(平瓦)가 출토되어 고려 전기 불상으로 확인되었다.

 

마을 주민에 의하면 예전에는 탑도 있었다고 전해 오지만 현재는 소재지를 파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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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리 석불입상

 

강천리에 도착했지만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거름을 내고 있던 중년의 농부에게 물었더니 대답 대신 어디서 왔느냐? 목적은 무엇이냐고 경계의 빛이 역력한 표정과 말투로 심문하듯 꼬치꼬치 묻는다.

 

도리 없이 솔직하고 정중하게 답했더니 마을 뒷산을 가리키며 찾기 힘들거라고 한다.아울러 본래는 2기가 있었지만 갑술(?)년 홍수 때 1기는 떠내려 갔다고 한다. 주변환경이 좋지 않았고 잡초가 우거져 힘들게 만났다.

 

2기가 계셨다면 사찰에신 모신 불상이 아니라 당신앙, 풍수비보 목적, 또는 민간에서 미륵으로 모신 민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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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발, 불두는 수리(?)때문인지 삼도가 보이지 않고, 몸에 비해 작게 표현되고 상호는 도톰하나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다. 통견의 법의도 명확하지 않게 선각으로 처리하였고 대좌도 본디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어느 분의 현몽으로 하루빨리 잃어버린 짝을 찾아 영원히 오손도손 함께 손잡고 마을 사람들의 행복과 마을의 안녕, 풍년가 울려 퍼지는 들녘을 지켜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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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심을 가득 머금은 저들판 어디즈음에 1기의 석불이 계실지...

 

2008.08.08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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