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충주시

충주...수안보 탑동 삼층탑

임병기(선과) 2011. 4. 6.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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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촌,교동,교리의 지명이 예전에 향교가 있었거나 현재 향교가 위치한 곳임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탑동,탑골,탑리,대사리 한절골도 사찰 또는 탑이 있었던 지명임을 우리님들에게는 이제 익숙할 줄 안다. 하지만 수안보를 거쳐 미륵리 사지 빈신사지를 여러 차례 경유하면서도 탑동 지명을 간과 했으며 우리님들이 올린 탑사진을 보면서 나의 준비 부족과 의식을 미워하며 자학했었다.

 

 

삼층탑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탑동에 위치했던 대사리사지 유물로 전해운다. 비지정 문화재란 이유로 작은 설명문도 설치 하지 않은 지자체에 비해 우리 민초들은 안태 고향으로 귀환한 석탑을 위해 소박하게 안내문을 세웠다.

 

 

방형 지대석위에 통돌 기단면석을 올렷다 면석에는 얇게 양우주를 모각하였고 갑석, 초층 몸돌은 결실 되었다.  2.3층 몸돌과 옥개는 한 개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옥개받침은 위로부터 3*4*4이다.  기단면석을 초층 탑신으로 보면 오층탑이었을까?

 

 

옥개석은 두텁고 낙수면 물매는 깊다. 3층 옥개석과 노반은 한 개의 돌이다. 옥개 전각의 반전이 급격하며, 상륜에는 원래 부재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석조물을 올려 놓았다. 묘지 난간 둘래석 기둥 처럼 보이지만 정확한 용도를 모르겠다.

 

 

묘소에서 옮겨 온듯한 동자석이 원래의 목적을 벗어나 탑을 지키고 있다. 탑이 고려후기로 추정되는 반면 동자상은 조선시대에 조성되었을 것이지만. 이제는 석탑과 더불어 탑동 지키미로 주민들과 함께 영원히 살아 갈 것이다. 머리부분은 보수하였고 이목구비는 비교적 뚜렷하다.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있으며 입은 두드러지게 표현하였다. 귀는 전체적인 불상의 크기에 비해 길고 크게 보인다. 옷은 긴 두루마리를 입은 듯하고, 동자 형태의 석인상으로 머리 위에 두 개의 묶음이 있다. 옷주름은 거의 표현이 없고 손을 가슴 앞에 모아 홀(?)을 잡고 있다.

 

 

우주의 표현 기법이 간략화된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어, 형식화가 상당히 진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옥개석과 상층의 탑신석을 동일석으로 치석하는 등 고려시대에 조성된 소형 석탑으로 보인다.

 

 

탑동 회관에서 마을 안쪽으로 진입하면 구봉불사 맞은편 개울가에 서 있다. 주위에 새로 조성된 2기의 탑과 관련지어보면 사찰탑이라기 보다는 비보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는 이야기다.

 

 

지대석을 시멘트 놓고, 방형 기단을 올렸다. 기단면석 표면에 정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고, 깔끔하지 못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다. 기단 부재는 원래의 석탑 부재인지는 알 수 없다. 초층 탑신 마모가 심하며, 옥개석은 원래의 부재들이다. 두툼하고 낙수면이 완만한 옥개석은 하부에 3단의 받침을 각각 표현하였다. 

 

 

옥개석 상부에는 별도의 받침을 두어 탑신석을 받치도록 했다. 석탑은 많은 부재들이 새롭게 보강되었지만 원래부터 소규모의 석탑으로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고, 옥개석의 치석 수법이 둔중하여 고려 후기 이후 석탑으로 추정된다. 답사 동선에 포함했지만 미쳐 뵙지 못한  봉불사의 석조약사여래불이 보고 싶다. 훗날 우리님들의 도움을 받고 싶다.

 

201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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