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
죽령천(竹嶺川)이 북류(北流)하여 남한강(南漢江)에 흘러드는 서쪽 어귀에 있는 성산(城山)(성재산)의 정상부를 반달모양으로에워싼 석축(石築)의 테뫼식 산성(山城)이다.
적성
성벽은 대부분 무너지고 서단(西端)과 동단부(東端部)가 일부 자취가 완연하다. 성벽의 평면형태는 남서쪽의 가장 높은 곳에서 북동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외향서면(外向斜面)을 평평히한 북벽(北壁)이 거의 직선을 이루고, 남향서면(南向徐面)을 궁형(弓形)으로 에워싸고 있어서 넓은 성내대지(城內臺地)를 이룬다. 석회암(石灰巖)과 화강암(花崗巖) 등 여러종류의 석재(石材)를 납작하게 깨어낸 성석(城石)은 상하(上下)의 크기가 고르고, 성벽 위에는 인두대(人頭大)의 냇자갈을 올려놓았던 양상(樣相)이 엿보인다.
적성비각
단양신라적성비는 진흥왕이 고구려 영토를 점령하여 점령군으로 적성의 백성을 위무하며 공이 있는 적성사람을 표창하니 신라에 역심을 품지말고 충성을 하라는 내용의 글을 새긴 비 아닌가?
"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비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 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1978년에 30㎝ 정도가 땅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었는데, 비면이 깨끗하고 글자가 뚜렷하다.
적성비
비문에는 신라의 영토 확장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인의 공훈을 표창함과 동시에 장차 신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신라의 형벌 및 행정에 대한 법규인 율령제도 발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노역체제, 재산 분배에 관한 국법이 진흥왕 초반에 마련된 것과 적성 지방에 국한된 관습을 법으로 일반화하고 있는 사실 등이 그러하다.
비록 순수비(巡狩碑:왕이 직접 순행하며 민정을 살핀 기념으로 세우는 비)는 아니지만, 순수비의 정신을 담고 있는 척경비(拓境碑: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적성에서 바라본 중앙고속도로
멀리 죽령길이 보인다. 바로 아래가 중앙고속도로 단양 휴게소. 적성.적성비 답사를 원하시는 분은 단양휴게소에 주차하여 10여 분 발품을 팔면 된다. 인용 자료는 문화재청에서 가져왔다. 2008.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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