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익산시

[스크랩] 익산...백지사(白紙死刑)터.여산동헌.척화비

임병기(선과) 2008. 7. 31.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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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사(白紙死)터. 여산 동헌 앞의 넓은 공터, 뭐눈엔 뭐 밖에 안보인다고 했던가? 동헌 앞에 동선에 없었던  폐사지로 생각 했다. 답사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중생, 무식도 이만하면 국보급이다. 순교자들과 천주교인들에게 용서를 빈다. 아픈 역사를 이제야 알았고 널리 우리 님들에게 공지하여 나같은 멍청한 답사객이 없길 간절히 바란다.

 

여산 주민자치센터 홈에서 자료를 가져왔다. "전주 교구의 '제2 성지'라 불리는 여산 성지는 1868년 무진박해 당시 여산군의 속읍지였던 고산, 금산, 진산 등의 심산 유곡(深山幽谷)에 숨어 살다 이곳 여산 관아로 잡혀 온 천주교 신자들이 모진 형벌과 굶주림의 고통을 당한 순교지이다.

 

충청도와 전라도, 즉 충남과 전북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는 여산 땅은 학문과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어 천주교 전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앞섰다. 일찍 복음을 전해 받은 반면 박해의 역사가 어느 지역보다 길었던 탓으로 일정한 형장이 없이 마구 처형이 자행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박해가 한창이던 조선 교구가 독립을 한 것은 1831년 9월 9일, 그 안에서도 조선인에 의한 자치가 최초로 실시된 곳은 1931년 전주 교구였다. 조선 교구 설정 1백주년을 맞아 전주 교구를 방인 자치 교구로 선물받았던 것이다. 이는 전주 지방의 신앙이 지닌 깊은 뿌리를 말해 주는 것이다. 호남 최대의 신앙 산맥을 이루는 것은 대둔산과 천호산을 기점으로 한다. 일찍이 복음은 이 두 산의 줄기인 금산(錦山), 진산(珍山), 고산(高山)에 전해져 수많은 교우촌들이 산골짜기마다 형성됐다.

 

 병인박해는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평화롭게 살았던 교우들을 혹독한 박해의 칼날 아래로 내몰았다. 비록 조그마한 고을이었지만 여산에는 사법권을 지닌 부사와 영장이 있었기 때문에 교우들을 마구잡이로 처형시킬 수 있었다. 「치명 일기」에 기록된 순교자만도 22명에 이르는 여산은 특히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가혹한 처형 방법으로 유명하다. 여산 동헌에 잡혀 온 신자들은 참수, 교수는 물론, 백지 사형(白紙死刑)으로도 죽임을 당했다.

 

백지 사형이란 교우들의 손을 뒤로 결박하고 상투를 풀어서 결박된 손에 묶어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한 다음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백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사 시키는 처형 방법이었다. 지금도 동헌 앞마당에 백지사 터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처형장에서는 얼굴에 달라붙은 백지로 인해 숨을 헐떡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천국 영복을 그리며 천주 신앙을 고백한 선조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 오는 듯하다.

 

여산이 품고 있는 성지는 동헌과 옥 터, 여산 숲정이와 배다리, 뒷말 치명 터 등 곳곳에 널려 있어 어찌 보면 여산 전체가 하나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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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동헌. 예상을 빗나가면 좋으련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문이 닫혔다. 전국 서원 향교 사당 객사 동헌은 늘 닫혀진 폐쇄공간이다. 누구를 위한 문화유산안지 모르겠다. 보호를 위해 시건장치가 되어 있더라도 문을 개방할 수 있는 사람 또는 관공서의 연락처를 남겨두면 좋겠다.

 

"조선시대 여산부의 관아건물로, 개조하여 여산 우체국으로 이용하다가 현재에는 경로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집이다. 낮은 기단 위에 앞면과 왼쪽에는 약 90㎝ 높이의 둥근 주춧돌을 놓고 뒷면과 오른쪽은 경사지를 이용하여 낮은 주춧돌을 놓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를 짜지 않고 소박한 민도리로 처리하였으며, 앞뒤에 퇴칸을 두었다. 오른쪽 2칸을 온돌방이고 나머지는 대청마루로 되었으며, 온돌방이 있는 부분은 주춧돌이 높아 마루바닥 밑으로 사람이 들어가 불을 땔 수 있도록 하였다. 벽체와 창호는 모두 유리창으로 개조되어 원형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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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동헌에는 동헌 앞쪽 담장 밖의 경사지를 따라 느티나무 4주, 팽나무 1주, 가죽나무 1주 등이 분포하고 있는데, 그 중 동헌 서쪽의 나무가 가장 크고 수관 생육상태가 가장 좋다.

느티나무의 수령은 600년, 흉고둘레는 4.2m, 수고는 26.8m, 수세는 원줄기에 4가지가 남동∼북서 방향으로 26.8m, 남서∼북동 방향으로 22.2m로 뻗어 있어 양호한 수관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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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발을 하고 담 너머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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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비와 척화비

 

척화. 이제는 누구를 위한 척화인지? 답사객의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문화유산 관리가 척화 아닌가? 

 

2008.07.06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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