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남원시

[스크랩] 남원...실상사(1)

임병기(선과) 2008. 6. 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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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처럼... 김 상훈

전라남도 승주군 조계산
선암사 어귀에 짝을 잃고 홀로 선
나무장승 보았는가.

전라북도 남원군 지리산 중턱
실상사 그 어귀 느티나무 아래
짝을 잃고 홀로 선
돌장승 보았는가.

그날 이후
나는
선암사 나무장승처럼 살고
실상사 돌장승처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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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입구의 장승은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사악한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구실을 한다. 경상도에는  창녕 관룡사, 상주 남장사, 의성 대곡사에만 석장승이 보이고 목장승으로 주로 세워지지만 호남지방에는 장승보다는 벅수라는 이름으로 석장승 사찰벅수로 널리 자리한다.

 

실상사 초입에도 3기의 벅수가 있다. 해탈교를 건너기 직전에 석장승은 원래 서로 마주보고 있는 장승이  있었지만 1963년 홍수로 떠내려갔다고 한다. 장승의 몸통에는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이라는 글씨가 희미하게 보이며, 수염을 땋아 왼쪽으로 구부리고 벙거지 모자를 썼다. 찌푸린 이맛살과 콧등, 튀어나온 두 눈에 주먹코는 벌름거리는 듯하며, 입술 밖으로 드러난 송곳니는 길게 튀어 나와 해학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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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교 건너 들판쪽 장승은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라는 이름과 ‘신해년오월(辛亥年五月)’이라는 각자가 있어 1731년(영조 7)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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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밑에 있는 석장승은 몸통에 ‘대장군(大將軍)’이라는 글씨와 받침돌에 ‘옹정삼년을사삼월입동변(雍正三年乙巳三月立東邊)’이라는 각자가 있어 1725년(영조 1)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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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인 남원시 산내면에 둥지를 튼 실상사(實相寺)는 신라 구산선문 중 처음으로 문을 연 사찰이다. 암자인 약수암과 백장암의 문화재를 포함하여 국보 1점과 보물 11점 등 넓은 경내가 비좁으리만큼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신라 흥덕왕 3년(828)에 홍척 증각대사(洪陟 證覺大師)가 창건하였는데, 홍척은 도의(道義)와 함께 당나라에 유학한 뒤 남원으로 들어와 이 절을 세우고 실상산문(實相山門)을 개산(開山)한 분이다. 이후 2대조 수철(秀徹, 817∼893)을 거쳐 3대조 편운(片雲)에 이르러 절이 중창되었으며, 선풍도 떨쳤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실상사도 불타버린 뒤 폐사되다 시피 하여 근 100년을 지내오다 숙종 16년(1690) 36동의 건물을 다시 세우는 등 크게 중창되었다. 이후 순조 21년(1821)에도 중건되었으나 고종 20년(1883) 함양 출신 양재묵, 민동혁 등이 불을 질러 아까운 사찰 건물들이 불타버리는 수난을 겪은 뒤 이듬해에 여러 승려들의 힘으로 10여 채의 건물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지리산 여러 봉우리를 꽃잎으로 삼은 꽃밥에 해당하는 자리에 앉은 실상사는 여느 지리산 자락의 산사와는 달리 평지에 들어서 있어 분위기가 색다르다. 사찰의 구역을 따라 담장을 낮게 두르고 담 안쪽으로 키 큰 나무들을 둘러 세운 풍광이 푸근하고 고즈넉하다. 반야봉·노고단·고리봉 등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인 만수천이 큰 냇물울 이루어 실상사 앞을 흐른다.

 

해탈교를 건너 논길을 200m 정도 걸어가면 산문인 천왕문(과거에는 만세루가 있었다고 한다)이 나온다. 해탈교가 들어서기 전에는 징검다리가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었는데 이 때에는 개울을 건너는 운치가 그윽했다고 한다...한국전통사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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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가람 실상사의 천왕문이다. 평지가람에서는 누대가 있을 경우도 낮게 조성하여 주출입선이 누하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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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 사천왕은 주지스님도 모른다고 했지만 실상사 천왕도 난이하다.그래서인지 이름표를 달고 계신다.

칼을 든 남방 증장천왕, 용을 잡고 계신 서방 광목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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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창을 든 북방 다문천, 비파를 든 동방 지국천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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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에서 바라본 보광전, 석등,쌍탑 신라 전형의 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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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내 발굴에서 수습한 기와 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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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장진숙-

둥그렇게
세상을 밀어 올리는
새벽 범종소리

물결처럼 번지는 공명의 열반에
열아흐레 새벽달도
그리움의 달무리
후광인 듯 말갛게 피워 올린
겨울 실상사에서

나, 문득
아득한 허공 끌어안고
소스라쳤어
어지러웠어

지리산 골짝마다
숱해 죽어간 영혼들을 어루는,
아주 깊은 곳에서 와서
깊숙이 나를 흔드는 소리

독버섯처럼 무수히 돋아난
온갖 것들이 모난 것들이 저마다
돌아앉아 고요히 상처를 깁는

엎드려 순하게
둥그렇게
둥그렇게
상처를 깁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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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동·서로 세워져 있는 쌍탑으로 신라 전형 1금당 쌍탑 구조에 충실한 배치이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져 통일신라시대의 정형을 보이며, 몸돌에는 우주가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이며, 옥개 받침은 4단이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반전되었고 상륜부는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통일신라 정형탑의 원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상륜부가 온전하게 남아 있어 경주 불국사 석가탑 상륜부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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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탑.상륜부에는 찰주를 중심으로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연, 용차, 보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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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탑. 수연을 제외한 상륜부는 동탑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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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후기의 고복형 석등, 백제계 유형의 고복형 석등 특징을 고루 구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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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부분의 아래 받침돌과 위 받침돌에는 8장의 꽃잎을 대칭적으로 새겼다. 화사석은 8면에 모두 창을 뚫었는데, 창 주위로 구멍들이 나 있어 창문을 달기 위해 뚫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가 모두 위로 치켜 올려진 상태로 돌출된 꽃 모양 조각을 얹었으며, 머리장식에는 화려한 무늬를 새겨 통일신라 후기의 뛰어난 장식성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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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은 규모가 커서 석등 앞에 불을 밝힐 때 쓰도록 돌사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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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가는 길·1

-김규진-

눈발에 가려
實相은 보이지 않고
지나온 발자욱 역시 눈에 가리웠으므로
나는 어디에 와 있는지 알지 못한다.

實相은 어디 있는가.

바람은 바삐바삐 지나가 버리고
눈을 쓴 댓잎의 손가락은 너무 많아
그 방향을 가늠할 수는 없다.

實相은 어디 있는가.

한 발 한 발 찍은 생각들은
거친 눈보라로 날려가 버리고
어쩌다 손바닥 위에 놓인 생각들은
눈처럼 녹아버려 그 온기를 잡을 수 없다.

實相은 정말 있는가.

눈발에 가려
實相은 보이지 않고
흰 눈에 갇혀
눈감은 것처럼 어두운 저녁.

마음의 집을 허물어 버리고
절 한 채를 들여놓는다.  

 

2008.04.13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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