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남원시

[스크랩] 남원...혼불 문학관. 노적봉(호성암) 마애불

임병기(선과) 2008. 6. 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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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역앞을 지나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거린다. 내게도 아직 이런 감정이 내재해 있었다니 나이를 헛먹었는지, 아직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졌는지, 억지로 감정을 추스리면서 사매면 서도리 최영희 혼불문학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하지만 오늘 나의 목적은 문학기행이 아니라 저멀리 보이는 노적봉 호성암 마애불이기에 마음만 급하다.

 

예전에 적을 두었던 문학카페 어느님은 늘 나에게 문화유산 답사 동선에 문학기행도 포함시켜보라고 권했지만 하나도 제대로 못한 인간이 언감생심 꿈꿀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답사를 좋아하고 우리문화에 관심을 둔 우리님들에게 필독서로 권하고픈 책이 최명희님의 혼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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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희 약력...출처/혼불문학관

 

최명희님은 1947년 음력 10월 10일 전북 전주시 경원동에서 아버지 崔成武(1922-67)씨와 어머니 許妙順 (1927-96) 씨의 2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최명희님은 자신의 소설에서 묘순이라는 실명의 주인공을 등장시키기도 하며 {혼불}의 효원 또한 허씨부인이다). 형제지간은 溶範(1949生), 仙姬(1956生), 大範(1958生), 恩榮(1960生), 敏榮(1965生)이다. 관향은 朔寧이며, 부친의 본향은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560번지(노봉마을)이다.

이 마을은 삭녕 최씨의 500년 世居地로, 入鄕祖 崔秀雄은 세조 때 명신 崔恒의 손자이며, 그의 5대손 崔蘊이 ‘貶齋'라는 호를 사용하여 그의 집안은 세칭 ‘貶齋집안'으로 불렸다. 최명희님은 최수웅의 17대손이며, 제적등본에는 이곳에서 출생한 것으로 기재되었으나, 가족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부친은 당시 전주로 분가하였고, 최명희님은 전주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일본 동경교대로 유학을 갔던 당대의 지식인이었고, 어머니는 전남 보성군(삭녕 최씨 종부와 동향) 득량면 출신으로 재야의 사상철학자이자 한학자인 許晥의 장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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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줄거리...출처/혼불문학관

 

1930년대 남원 매안 이씨 집안의 삼대 종부(宗婦)가 커다란 축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청상의 몸으로, 다 기울어져 가는 이씨 집안을 힘겹게 일으켜 세운 청암부인 그리고 허약하고 무책임하기가 이를 데 없는 종손 강모를 낳은 율촌댁, 그리고 그 종손과 결혼한 효원이 그네였다. 이들이 전통사회의 양반가로서 부덕을 지켜내는 보루로 서 있다면 그 반대편엔 치열하게 생을 부지하는 하층민의 '거멍굴 사람들'이 있다. 특히 양반계층을 향해 서슴없이 대거리하는 옹골네와 춘복이, 당골네인 백단이가 강력한 자기장으로 긴장감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런 갈등의 그물은 우선 효원과 혼례를 치른 강모와 사촌 여동생인 강실이 사이의 근친상간에서 시작된다 . 애틋하게 바라만 보아오던 두 사람이 마침내 건너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어 섬으로서 제각기 가파른 벼랑으로 내몰린다. 우유부단한 강모는 그를 따라나선 술집 기생 오유끼와 함께 머나먼 만주 봉천땅으로 도피를 해버리고, 강실이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홀로 삭이며 닥쳐오는 암운 앞에 무방비로 놓인다.

 

한편 상피에 대한 소문이 거멍굴로 전해지자 자기 자식만은 자신과 같은 운명에 놓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 춘복이가 양반댁 강실아씨를 탐내기 시작하고, 춘복이와 몰래 동거를 하고 있던 과수댁 옹구네도 양반에 대한 복수심 그리고 춘복이를 잃고 싶지 않은 집착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게 된다. 그 음모란 상피에 대한 소문을 퍼뜨려서 강실이를 내치게끔 하고 그때를 노려 춘복이가 강실이를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차츰 은밀히 옹구네가 퍼뜨린 소문은 그물처럼 강실이와 효원을 죄어들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춘복이는 강실이를 겁간해 임신을 시키게 된다 . 이후 이런 모든 정황을 알게 된 효원은 애증이 교차된 마음으로 강실이를 피접시키려고 하나 그만 옹구네가 중간에서 강실이를 납치함으로서 상황은 예기치 않은 국면으로 치닫는다.

 

여기에 이씨 문중의 노비인 침모 우례에게 상전의 피가 흐르는 아들 봉출이가 번득이는 비수처럼 성장해 가고 , 청암부인의 묘에 투장을 했다가 덕석말이를 당한 당골네의 원한도 무서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계급적 모순을 인식하고 그것을 타파하려는 강모의 사촌형들, 강호와 강태도 강력한 전운을 드리우며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이런 갈등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짜여서 이제 생생하게 날뛰는 인간군상들을 막 건져 올릴 찰나에 허망하게도 소설은 끝이 아닌 끝이 나버렸다.

 

이야기 사이사이 마다 , 아니 이야기보다도 더 정성스럽게 저자는 당시 시대의 풍속사를 깨알같이 묘사하고 있다. 첫 장면인 혼례의식을 비롯해서 연(鳶) 이야기며 청암부인의 장례절차 그리고 유자광이나 조광조, '새로 쓰는 백제사'의 이야기도 돋보인다. 여기에 조왕신의 습속이나 복식에 대한 묘사, 윷점이야기 같은 내방의 섬세한 면면들도 감탄 속에 눈길을 끌고, 봉천땅의 구체적인 지리묘사라든지 사천왕의 긴 이야기도 사물에 대한 안목을 키워주는 대목이다 .

 

도대체 이런 기술을 하려면 얼마나 많은 자료와 공부를 필요로 했을까 ? 독자들은 읽는 내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성이야말로 바로 '혼불'을 만들어낸 근원이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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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급했다. 왕복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길, 오감을 열고 봄날을 완상하며 오르면 좋으련만 마음의 여유는 일찌감치 아지랭이를 타고 흩어져버렸다. 진달래도 지천으로 만개해 있고, 오동통한 애기손 닮은 고사리도 손을 내밀지만 어느새 산길을 뛰고 있는 내모습이 서글프다.

 

완주 화암사 길처럼 개울이 길이요 길이 개울이다. 혼불 소설속 청암부인 장례식 꽃상여를 만들었던 호성암의 도환스님도 이 길을 수없이 오르내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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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마애불이 보인다. 구름을 타고 도솔천에서 이제막 내려오시는 모습의 미륵님이 손짓을 한다. 어여어여 올라오라고..., 일순간 청정한 기운이 마애불 앞 좁은 암자터에 깔린듯 땀으로 흥건한 몸이 한기를 느꼈다.

 

노적봉 정상 길 아래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연화좌대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활짝핀 연꽃을 다소곳히 받혀든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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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견의 천의는 산바람에 하늘하늘 춤추는 듯 하다, 육계는 보이지 않은 나발, 원만한 상호,두.신광은 둥글게 겹으로 둘렀다. 작가 이지누는 노적봉 마애불 순례기에서 이렇게 찬탄하고 있다. 

 

"손끝을 아래로 하고 가지런히 맞댄 두 손의 손목 위에 받들어진 연꽃 봉우리에 눈길이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것은 금세라도 벙긋벙긋 꽃잎을 열어 천년이나 묵은 향기를 뿜을 것만 같았다. 그뿐이랴. 양쪽 어깨 아래로 활짝 피어난 두 송이 연꽃이 법신을 장엄하고 양쪽 소매 아래로는 법의를 여몄을 긴 고름이 너울거리며 날리고 있으니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두툼한 연화대좌의 양쪽 끝에 또 다시 피고 지는 연꽃이 새겨졌으니 어쩌면 이토록 찬란하게 장엄할 수가 있단 말인가. 또한 넓게 표현된 두 겹의 두광 양쪽에는 한 무더기씩의 구름이 에워싸고 있으니 이는 분명 구름 너울 쓰고 용화회상(龍華會上)의 법석을 펼치려 도솔천(兜率天)에서 하강하는 미륵불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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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성암 옛절터로 알려진 이 곳에는 아름다운 창건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어느 도승이 이곳 골짜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 난데없이 호랑이가 나타나 도승 앞에 꿇어 엎드리는 것이었다. 도승은 깜짝 놀라며 호랑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이 나를 해치려 하는가?" 이 말을 들은 호랑이는 입을 크게 벌리며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도승은 호랑이가 자기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마지막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호랑이의 목구멍을 살펴 보았다. 그때 호랑이의 목구멍에 짐승뼈가 박혀 있었다. 도승은, “너 이 뼈를 빼달라는 것이구나" 하고 물으니 호랑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도승은 호랑이의 목구멍에 있는 뼈를 빼주었다. 그랬더니 호랑이는 비호같이 어디론가 가버렸다.

 

이튿날 밤이었다. 어제 만난 호랑이가 도승 앞에 나타나 큰 산돼지를 물고 있다가 도승 앞에다 놓고 마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산돼지 한 마리를 바치오니 걷우어 주소서''라고 하듯 고개를 숙여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승은 고개를 저으면서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호랑이도 미안하다는 듯이 또 머리를 숙이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호랑이는 가다가 혼자 생각하였다.

도승께서 거절하셨는데 가장 좋아하시는게 무엇일까, 그러다가 ‘옳지 도승님은 혼자 사시니까 여자를 잡아다드려야겠구나''하고 생각하며 며칠이 지났다. 다시 호랑이가 도승 앞에 나타나 무언가를 앞에다 놓았다. 도승은 살펴보니 이것은 여자가 아닌가? 이 여자는 기절해 있었다.


이에 도승은 우선 기절한 여자를 살려야겠다는 심정에서 여자를 안고 법당으로 들어가 여자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염불을 하였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서 여자는 소생하게 되었다. 도승은 여자를 돌려 보낼려고 호랑이에게 잡혀온 내력을 물었다.
그랬더니 여자는 자초지종을 말하였다. 영남 어느 고을에서 밤에 몰래 잡혀왔는데 처음에는 몰랐으나 조금 지나서야 호랑이에게 잡혀 온 것을 알았다고 한다. 처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스님의 은혜에 감사하다고 하였다. 다음날 스님은 처녀를 앞세우고 집을 향해 떠났다.

 

그 무렵 처녀집에서는 자기 외동딸이 없어졌으니 온 마을이 난리였으나 갑자기 어느 스님과 딸이 나타나니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부모들은 도승의 말을 듣고나서 다시 한 번 놀랐다. 부모는 도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가진 재산을 처분하여 스님에게 주니 도승은, “이것은 호랑이를 만나서 생긴 인연이니 그곳에 절을 세워 호성암이라고 부를까 하오" 그리하여 이룩된 절이 바로 호성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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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경이 너무 좋다. 내려다 보면 누구나 부처이기에... 

 

2008.04.12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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